[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에이~ 실패다. 무서워 보여야 성공인데….”
영화에서 귀여웠다는 말을 인사로 건네자 대번에 입을 삐죽거리더니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물론 칭찬의 의미임을 알고 있지만,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배우 박보영(24)을 만나기로 한 날, 새벽까지 내린 눈으로 땅은 꽁꽁 얼어붙었고 날씨는 영하 7도까지 떨어졌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구두를 벗고 귀여운 털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있는 박보영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쥐고 있던 핫팩을 아래위로 열심히 흔들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이내 생긋 웃었다. 특유의 귀여운 외모와 미소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며칠 전 스크린에서 본 일진 언니는 오간 데 없었다.
박보영이 영화 ‘피끓는 청춘’을 선보였다. 1980년대 농촌 로맨스를 다룬 영화에서 그는 충청도를 접수한 일진 짱 영숙을 열연했다. 특유의 깡다구와 의리 덕에 따라다니는 똘마니가 수두룩하다. 짝사랑하는 남자 중길(이종석)을 위해서라면 제 몸을 던질 줄 아는, 사랑도 좀 아는 여자다. 영화 ‘과속스캔들’(2008)의 황정남, ‘늑대소년’(2012) 속 순이와 완전히 다르다.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항상 욕심이 있어요. 꾸준히 하면서도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에도 영숙이가 좋았던 게 대부분 영화와 달리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잖아요. 되게 멋졌어요. 약간의 욕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약간의 욕설이 걸렸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코웃음을 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크린 속 박보영은 화끈하고 차진 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어디 그뿐이랴. 수틀리면 남자고 여자고 상관치 않고 손부터 먼저 올라간다. 박보영에게 혹시 이 모든 게 경험에서 나온 리얼함이냐고 묻자 파안대소하며 손사래를 쳤다.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걸 본 적은 있어요. 그게 살면서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욕은 중학교 때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써본 게 다죠. 그래서 이번에 차 타고 혼자 엄청 돌아다녔었어요. 욕 배우기 제일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집에서 욕하면 가족들이 걱정하잖아요. 그래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제가 운전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욕도 많이 먹었어요. 답답해서 화도 많이 났죠. 그때 했던 욕을 녹음해 뒀는데 좀 괜찮더라고요(웃음). 물론 습관이 되지 않게 촬영 끝나고 바로 끊었어요.”
박보영은 올해로 이십 대 중반이 됐다. 그러나 영화 속 그는 여전히 열여덟 고등학생처럼 교복을 예쁘게도 소화한다. 물론 워낙에 손꼽히는 동안 배우 중 한 명이니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다만 동안을 유지하는 방법이 궁금해졌을 뿐. 혹시 혼자만의 비법이 있으면 같이 공유하자는 제안에 “동안이라고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에이~ 제가 동안은 아니죠. 그냥 작아서 그렇게 봐주시는 거예요. 키도 작고 팔다리도 길쭉길쭉하지 않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요즘엔 관리 엄청 해요. 피부과도 다니고 에스테틱 다니고 물도 많이 마시죠. 사실 예전에는 동안으로 봐주시는 게 속상했는데 이젠 좀 달라졌어요. 마냥 좋진 않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시간에 맡기기로 했죠. 그럼 서른이 될 테고 그즈음엔 ‘쟤도 나이를 먹었구나’ 해주시지 않을까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박보영은 유독 예쁘다, 귀엽다는 뉘앙스의 말에 머쓱해했다. 수없이 들어온 말일 텐데 아직도 낯 가려운지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동화 속 여주인공 캐릭터도 한번 해보자는 제안에 끝내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깔깔 웃기 시작한 그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동화 속 여주인공은 아니죠. 세련되고 도시적으로 생기지 않았잖아요. 출연작도 다 시골이 배경인 걸요. 그리고 요즘엔 예쁜 사람이 진짜 많아요. 특히 시상식 가면 한없이 작아져서 오죠. 다 예쁘고 키도 커요. 어쩜 그리 날씬한지 아예 안 먹나 봐요. 전 먹는 걸 좋아해서 팔뚝 살도 되게 많거든요. 이번에도 밥차가 맛있어서 엄청 먹었죠. 아니나 다를까 제작보고회 때 찍힌 사진을 보니 거대하게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 메인화면으로 해놓고 배고플 때마다 봐요. 이럼 안 된다고…. 운동도 하고는 있는데 살이 잘 안 빠져서 속상해요. 하긴, 얘들도 20년 넘게 저랑 같이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빠지겠어요?(웃음)”
어딘가 구수한 말투, 전혀 예상치 못한 능글거림까지. 인터뷰가 끝날 때쯤이 되니 마주한 박보영이 귀여운 동생이 아닌 젊고 예쁜 이모(?)로 보이기 시작했다. “박보영은 누나 같다”란 이종석의 말에 이제는 동의할 수 있을 듯했다. 올해 목표는 뭐냐는 질문에도 대뜸 “한 작품 더 하는 거”라며 중견 배우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돈은 열심히 일하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덧붙이면서.
“일하고 나서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조금 들어요. 뭔가 평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서 그런가 봐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고비도 많았고 역경도 많이 겪었죠. 그러다 보니 조금 어른이 된 듯해요.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성숙해지겠죠?(웃음) 앞으로 많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역할이나 장르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요. 그때 또 만나요.”
“술이요? 스물다섯 된 후로 늘었어요” 문득 모든 오빠의 워너비, 국민 여동생인 박보영도 술을 즐겨 마시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이렇게 귀여운 얼굴로 폭탄주 제조에 앞장서며(?) 부어라 마셔라 하진 않을까?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아메리카노도 못 마시고요. 아메리카노처럼 진한 커피를 먹으면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리더라고요. 시럽 들어간 거나 좀 단 거는 괜찮아요. 아~ 그래서 살이 찐 건가?(웃음) 아무튼 요즘엔 아메리카노에 도전하고 있어요. 물을 엄청 타면 괜찮더라고요. 근데 색이 연해져서 좀 부끄럽죠. 무슨 아이스티도 아니고….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