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재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사 합의 또는 관행이 있느냐 여부가 향후 각 기업의 임금 산정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로서는 노사 협상에서 경영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노동계에게는 명분을 주고 재계는 손해를 줄이는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18일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대법원 판결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 합의 또는 관행이 있느냐의 여부가 법적 가산 수당의 소급 청구 여부에 당락을 가르게 될 전망이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 합의가 있었다면 향후에도 통상임금을 인정받기 힘들어질 것이고 노사 합의가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관행이 없었다면 통상임금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소송(갑을오토텍 사건)에 대한 판결 핵심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합의 또는 관행이 있으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서 근로자들의 연장근로수당 등 가산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임금지급실태, 노사합의, 관행, 통상임금 산입 시 법정수당의 인상범위 등을 추가로 심리하라는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오래 전부터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이미 노사 합의 또는 관행이 성립된 대기업의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노사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중소기업이나 노동조합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에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될 여지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각 지역별로 진행 중인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현재 180여개나 된다.
법무법인 화우의 박상훈 변호사(노동팀장)는 "대법원이 고심 끝에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며 "전체적으로는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노사 관행이 성립했는지 여부를 두고 앞으로도 치열한 법적 분쟁이 계속될 전망이므로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우에 따르면 이같은 판결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된 노사 합의는 무효이다'라는 근로자 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임금협상 과정의 노사간의 진정한 의사, 정기상여금이 그 동안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어 온 경위 등을 종합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온 노사의 합의 내지 관행을 적법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따라 전산업에 걸쳐 과거 3년간 소급지급분 약 38조원, 매년 8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부담을 지우게 된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화우는 해석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재계가 걱정하는 것만큼 부정적이지는 않은 판결"이라면서 "노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실리와 우려가 교차되는 기업과 근로자 입장을 적절하게 반영한 판단"이라고 견해를 나타냈다.
한편,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고용노동부는 내년 임금교섭이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안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 통상임금을 포함한 임금제도와 체계에 대한 규범을 정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