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지진아에서 세계 B2B업계 황제로
[뉴스핌= 김영훈 기자] 마윈(馬雲ㆍ48) 알리바바 CEO 겸 회장이 CEO 자리를 내려 놓으며 중국 인터넷 업계에 또 다시 화제를 뿌리고 있다.
마윈 회장은 최근 자신의 후임으로 루자오시(陸兆禧ㆍ43) 부사장을 선임했다. 그 자신이 40대의 CEO 이지만 마윈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줘야 한다”며 후배 경영인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파격적 행보를 보여 업계에서는 '마윈은 역시 기인(奇人)’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있다.
마 회장은 지난 1월 사내 이메일을 통해 타오바오 창립 기념일인 오는 5월 10일에 CEO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인터넷 업계에서 48세의 나이는 이미 젊은 나이가 아니다”며 경영진을 모두 젊은 세대로 물갈이할 것을 예고했다.
이어 그는 “알리바바는 앞으로도 최소 102년은 가야 할 기업이므로 아직 88년이나 남았고 그때문에라도 조직의 신진대사가 원할해야한다”며 “알리바바 사람들이여, 떠나자”라고 호소했다.
160cm가 안되는 작은 키에 ET처럼 생긴 마윈은 외모 만큼이나 독특한 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한마디로 미래가 불투명한 싹수 안보이는 문제아였다. 성적도 안좋은데다 걸핏하면 싸우고 다녔다. 그런 가운데서도 영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영어 하나만 특출했다.
대입시에서 실패한 마윈은 삼륜차 끄는 일을 했는데 우연히 길에 떨어진 루야오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길이 비록 느리고 길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몇 걸음 만에 결판이 난다’는 문구에 감명을 받고 대학에 갈 결심을 한다.
항저우사범대 외국어과 보결로 합격한 그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특출한 영어실력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둔다. 성적이 좋아지면서 친구들과의 교제도 늘어나고 그런 덕분에 학생회 회장도 맡는다.
졸업 후에는 항저우 전자공업대의 영어 강사가 됐다. 1995년 마윈은 첫 미국 여행길에 인터넷을 처음 접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때까지 그는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중국에서도 인터넷은 불모지였다. 그는 귀국 후 1997년 중국외경무부에 들어가 정부사이트 및 온라인 거래 시장을 개설하는 일을 하다 결국 결국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1999년은 마윈에게 운명의 해였다. 마위은 그래 고향인 항저우에서 50만위안(약 8500만원)을 구해 지인들과 공동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이것이 중국의 첫 B2B사이트였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창립 14년 만에 직원 2만3000명, 분기당 약 2억7000만달러(약 2900억원)의 순수익을 내는 중국 최고의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했다.
알리바바의 인터넷 쇼핑몰 거래액은 지난해 11월 1조위안(173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중국 소비재 총 매출액의 5.4%,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규모다.
2000년 마윈은 중국 대륙 기업인 최초로 미국 포브스 잡지의 표지모델로 채택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2012년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중국의 영향력있는 기업가 8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윈은 성공한 젊은 기업가로서 그의 인생및 경영철학을 엿볼수 있는 많은 명언을 남겼다.
마회장은 언젠가 사업가로서 돈을 버는 이유에 대해 “사업에 있어 돈은 목표가 아니라 그냥 결과물일 뿐이다”라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오늘 너무 비참하고 내일은 더 비참할지라도 모레는 반드시 찬란한 날이 온다. 다만 많은 이들이 내일 밤에 포기해버려 모레의 태양을 보지 못할 뿐이다”는 말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달려갈 때는 너의 기회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을 때가 바로 너의 기회다”. 기회앞에서, 또는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마윈이 남긴 금언이다.
알리바바는 마윈의 인간적 매력과 또 작은 경영 천재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이끌려 중국 젊은이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