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올 때 우산을 뺐지 않는다” 되살려
[뉴스핌=한기진 기자] “비가 올 때 우산을 뺐지 않는다.”
고 강권석 기업은행장의 유지(遺志)와 같은 말로, 그의 추모식에서 조준희 현 행장의 입을 통해 되살아났다. 이는 중소기업이 어려울 때 금융지원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기업은행은 물론 금융당국 수장도 이 말을 자주 한다. 강 전 행장이 2004년 3월 취임식 때 처음으로 했고 ‘우산론’이라 불리기도 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가운데)이 28일 고 강권석 행장의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
지난 2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메모리얼파크에선 강 전 행장의 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조준희 행장을 비롯해 임직원 30여명이 참석했다.
세상을 떠난 지 5년이나 된 전 행장의 추모식에 현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이 참석하는 일은 드물다. 조 행장은 2년 전 취임 직후에도 강 전 행장의 묘소 참배를 첫 공식일정으로 삼았다. 조 행장은 “분당 묘소는 기업은행에 있어 국립현충원에 해당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강 전 행장은 조 행장을 특별히 아꼈다. 조 행장이 도쿄지점장이었을 당시 중책인 종합기획부장으로 발탁했고 은행의 전반적인 기획을 맡겼다. 국책은행으로 피할 수 없는 관(官)의 심한 질책도 막아줬다. 기업은행 공채 출신으로 관료사회에 배경이 전혀 없는 조 행장에게 큰 방패막이가 돼줬다.
두 사람 사이에 학연이나 지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조 행장은 경상북도 상주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기업은행 행원이 된 반면 강 전 행장은 서울출신으로 연세대를 나와 행정고시(14회)에 합격한 정통 관료다.
오직 실력만을 보고 믿음으로 지지해준 감사함이 조 행장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도 강 전 행장의 많은 유지가 조 행장의 경영스타일에 반영되고 있다.
강 전 행장은 우산론 외에 기업에 신뢰할 만한 예보를 전하겠다는 `일기예보론'이나 기업의 부실을 사전에 방지하는 주치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기업주치의론' 등의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에 못지않게 조 행장은 은행업계를 놀라게 한 중소기업 연체금리와 대출금리를 한자릿수로 내리는 결단을 보였다.
고졸 신입행원 채용의 문도 최초로 열었다. 조 행장은 “(강 전 행장이)생전 강조하셨던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진정한 중소기업의 동반자 IBK’라는 유지를 받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조 행장이 추모식에 참여하는 이유도 강 전 행장의 진정성을 잊지 않고 뚝심 있는 경영을 해나가기 위한 각오의 표시라고 분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 전 행장은 재무부 기획관리실, 대통령 비서실, 금감위 증선위원, 금감원 부원장 등을 거친 고위관료로 2004년에 이어 2007년에도 기업은행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재임 중 지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