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실명제 위헌…헌재 핑계만 급급
[뉴스핌=배군득 기자] “이번 인터넷실명제(본인확인제) 위헌으로 인터넷 상에서 익명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향후 대책은 헌재의 판결문이 도착하는대로 마련하겠습니다.”
지난 24일 박재문 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정책 국장은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 후 향후 대책마련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방통위가 이례적으로 이틀에 걸쳐 긴급 브리핑을 자청하고 나설 만큼 이번 인터넷실명제의 위헌 판결은 방통위에서도 당혹스런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인터넷실명제의 위헌 판결은 방통위 뿐만 아니라 관련 사업자나 인터넷 사용자 일부에서도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이미 수년 전부터 감시해왔다.
그만큼 헌재의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은 방통위에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박재문 네트워크정책 국장 역시 이날 브리핑에서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도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며 “기술적, 환경적 측면이 변화된 상황에서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필요성이 떨어진 셈”이라고 사실상 헌재의 위헌 판결이 정당함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였다. 방통위의 정책부재에 대해서는 ‘헌재의 판결문이 도착하는데로 대책마련을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수년 전부터 문제점이 제기돼 왔고, 헌재의 판결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대책을 논의한 적이 없었다.
고위 관계자는 향후 대책 마련에 대해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여러 가지 정황이란 오는 12월 치러질 대선과 인터넷실명제가 폐지될 경우 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의미한다.
브리핑 과정에서 은연중에 ‘방통위는 잘못이 없다’는 뜻도 내비쳤다. 오히려 열심히 일을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는데 관련 제도가 위헌 판결이 났다고 향후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것은 억지라는 입장이다.
일부 방통위 직원들은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이 ‘정치권 이슈’라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이틀간 브리핑에서 보인 방통위의 모습은 제도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정부의 무능력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어떤 상황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주변 눈치만 보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것이다.
비단 인터넷실명제 위헌에 대한 대책 마련이 부실했다는 점만 들어 무능력함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업계 이슈인 ‘접시없는 위성방송’ DCS나 통신업계 와이브로 전략, VoLTE 요금체계 등 산적한 현안도 여전히 답보 상태다.
요즘 방송통신 업계에서는 방통위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섞인 말들이 자주 목격된다. 방통위가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당당함을 보이기 위해서는 고유 권한인 중재기관의로서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
지금과 같이 현안에 대해 갈팡질팡하고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신뢰는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방통위의 4년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동안 유종의 미를 거둬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정부의 역할에 충실한 방통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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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배군득 기자 (lob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