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권지언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의 3년 만기 장기저리대출(LTRO)이 오히려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8일자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슈분석 기사를 통해 LTRO가 최근 유로존 위기 불안을 다소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아 왔지만, 이 LTRO가 또 한번의 위기를 불러온다면 지난 몇 달 간 조용했던 글로벌 금융 시장은 다시 한번 요동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LTRO의 문제점으로 1) 대출을 받은 은행들이 자국 국채에 투자, 지나친 빚잔치로 이어질 수 있고, 2) 은행들과 국채 투자자들의 개혁 압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 3)대출 만기가 끝나는 3년 뒤 초래 가능한 시장 혼란 등을 제시했다.
첫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면 LTRO라는 값싼 대출 덕분에 은행들은 또 다른 빚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앞선 글로벌 금융 위기 상황과 다른 점이라면 그 투자 대상이 자국 국채라는 점이다.
◆ 저렴한 자금으로 빚잔치.. 개혁 압력도 줄어
유로존은행 신용의 선순위 변화 ※출처: 씨티그룹,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재인용 |
UBS 애널리스트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들은 LTRO에서 약 2600억 유로를 조달했을 뿐만 아니라 기타 유로존 회원국들의 중앙은행들로부터 유동성을 제공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스페인 은행들의 경우 LTRO로 2500억 유로를, 프랑스 은행은 1500억 유로를 각각 조달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들 은행들이 제공받은 자금이 부채 재융자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분명 국채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은행들의 경우 이들이 보유한 스페인 국채 비중은 지난 12월과 1월을 합쳐 총 29% 늘어난 2300억 유로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은행들 역시도 동기간 이탈리아 국채 매입을 13% 늘려 총 2800억 유로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효과는 극명했다. 1%짜리 저리 자금을 빌려서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단기국채를 매입하는 일종의 '캐리 트레이드'로 채권 가격이 급등하고 수익률은 급락했다. 최근 이탈리아 국채 2년물 수익률은 올 들어 4.6%에서 2.5%로, 스페인 역시도 동기간 수익률이 3.4%부터 2.5%까지 각각 하락했다.
양국 국채입찰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배경을 보면 국내 기관들의 수요가 자리했다. 스페인은 이미 올해 발행 목표의 44%를, 이탈리아도 20% 이상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입찰이나 이후 유통시장에서 매매는 주로 국내 기관이나 투자자들이 차지했으며 국제투자자들은 관망세를 유지했다.
이를 두고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BBH)의 마크 챈들러 외환전략가는 "폰지"라고 불렀다. 취약한 주변국 은행들이 자기네 나라의 취약한 국채를 매입하는 양상이 전개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 "폰지 게임".. 3년 뒤가 걱정이다
한편,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교한다면 스페인 상황이 더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스페인의 은행 시스템이 더욱 취약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달리 스페인은 상당한 주택 버블을 겪었고 상당수 투자자들은 스페인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청산 작업이 막 시작된 것으로 간주해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위험을 정책 관계자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ECB 관계자들은 LTRO에 리스크가 따른 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나치게 관대한 유동성 지원은 은행들로 하여금 투자 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은행들에게 더 큰 리스크를 안겨줄 수 있다”면서 결국은 금융 및 가격 안정세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LTRO가 안고 있는 두 번째 문제는 이로 인해 은행 및 국채 투자자들의 개혁 압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ECB 장기대출은 은행들이 스스로 개혁하고 남유럽 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재점화할 수 있게 3년 간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있어야 개혁이라는 진전이 있을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긴장감이 사라져 과연 개혁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FT는 또 은행들이 LTRO를 통해 제공받은 대출 만기가 동시에 도래하는 3년 후의 상황에 대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경제 성장세가 가속화 돼 3년 뒤 은행들이 스스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된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장은 남유럽 주변국 중 일부 은행들은 3년이 지나도 여건이 풀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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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