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경색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는 면했지만, 아직 이 불어난 유동성을 회수할 조짐은 없다. 2010년 전후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동성 회수, 혹은 '출구전략' 논의가 활발해지는 듯 했으나 유로존 채무 위기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선진국의 2차 완화정책과 추가 구제금융이 단행되었다. 위기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여전히 이 보조장치를 달고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의 원활한 배분 역할을 왜곡하고 상품시장의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망령이 등장하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유동성의 실체와 그 위험을 둘러싼 논쟁을 점검할 때다.<편집자 註>
[뉴스핌=권지언 기자] 글로벌 경기 둔화와 유럽발 부채위기 악화 가능성으로 인한 추가 하방 리스크로 인해 중앙 은행들의 통화 완화 움직임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유럽 국채 수익률도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매입 등으로 안정세를 찾았고, 중국과 이머징 경제는 둔화 조짐이기는 하지만 경착륙을 우려할 만큼은 아니어서 최근 글로벌 경기는 비교적 양호한 출발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회복 신호가 부재한 데다가 유럽 위기 역시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2012년 세계경제는 성장세가 2011년보다 둔화될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높은 실업률로 인한 소요사태 발생 가능성과 이란 핵 이슈 등 테일 리스크 가시화 공포도 여전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서부터 꺼내 들기 시작한 완화 카드를 올 한해도 계속해서 만지작거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시장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리가 이미 바닥 수준인데다 상품 가격을 비롯한 물가 상승 여파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적극적인 완화책을 펼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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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일단 관망
미국의 경우 지난 2008 년 금융위기 이후, 2008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QE1, 2010년11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QE2 를 통해 각각 1 조 7 천억 달러, 6 천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QE1 당시는 금융위기의 근원이었던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MBS를 매입하였고, QE2 는 당시 더블 딥 우려가 상존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했다.
그리고 지난 9 월에는 단기 국채를 팔고 장기 국채를 사서 장기 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4000억 달러 규모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통해 신용경색 해소를 꾀했다.
더불어 최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역시 연준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는 한편, 물가 목표를 2%로 설정하는 동시에 사실상 제로 금리는 2014년 말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 지표들이 개선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희망적 경기 신호(그린슈트)가 지속적으로 모멘텀을 얻을 수 있도록 연준이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 유로존: 3차 LTRO 나서나
부채 위기로 유동성 공급이 더욱 절실한 유럽의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이 초저금리 장기대출(LTRO) 실시를 통해 은행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ECB는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총 2회에 걸쳐 1%의 금리로 3년만기 무제한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키로 했고, 이를 통해 야 1조 유로가 넘는 돈이 풀렸다.
지난 1차 LTRO 실시 당시에는 유로지역 523개 은행들이 참가해 유로존 GDP의 5%에 해당하는 총 4890억 유로의 대출을 제공받았다. 당시 이탈리아 은행권에서 1160억 유로를 인출하는 등 스페인과 더불어 재정 위기국 은행들이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2차 LTRO에서는 1차 때보다 많은 800여개 은행들이 참여해 총 5295억 유로의 대출을 제공받았다.
지난 1차 LTRO가 기존 은행채의 차환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주고 신용경색 역시 완화시켰다는 평을 받은 반면 2차 때는 오히려 유럽은행들의 ECB 대출 의존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3년후 LTRO 만기 도래시 유럽 은행권의 유동성경색이 발생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같은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 유럽은행권의 기업 및 가계대출은 여전히 감소해 실물경제로 효과가 전이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최근에는 ECB가 ‘출구 전략’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분위기.
마리오 드라기 ECB총재 역시 8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하는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밝히는 한편, 인플레가 올해 2.4%로 ECB 목표치 2%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혀 물가 관리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 일본: 적극적 완화, 엔화 약세 유도
일본의 경우 지난해 3 월 대지진 이후 은행간 대출 규모를 늘리고, 외환시장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등 통화완화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달러/엔 환율이 80엔 아래로 내려가는 등 엔고 우려가 고조된 것과 맞물려 8 월과 10 월 두 차례에 걸쳐 추가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경기침체를 막고자 자산매입프로그램 규모를 기존의 20조 엔에서 30조 엔으로 확대해 10조 엔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추가 공급하기로 결정했었다.
지난 3월13일 진행된 통화정책회의에서 일본은행(BOJ)은 기준금리인 무담보 콜금리 유도목표를 현행 0~0.1% 수준으로 동결하고 자산매입 프로그램 규모를 예상대로 동결키로 했다. 대신 성장기반 지원용 대출 규모를 2조엔 정도 더 늘리는 한편 달러화 대출약정도 1조엔 신설하기로 했다.
한편 미국 경기 회복 조짐에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엔화는 상대적 약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엔화 환율은 도쿄 외환시장서 장중 한 때 84.12엔을 기록하며 엔화 가치는 지난해 4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달러/엔이 85엔 수준을 거뜬히 넘어 설 것으로 전망했고, 올해 안으로 90엔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신흥국: 성장세 ‘시들’, 완화카드 만지작?
글로벌 금융 위기 와중에도 견조한 성장세로 글로벌 경제 성장 불씨를 살릴 것으로 기대됐던 신흥국들은 최근 시원찮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통화 완화 실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최근 올 성장 목표치를 예년의 9∼10%에서 한참 후퇴한 7%로 제시했다. 더불어 2월 무역적자폭은 314억 달러로 199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되면서 성장 전망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 2월 적자폭은 당초 예상치 53억5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성장 불안에 중국 당국의 완화정책 시행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고유가 등으로 완전히 잡히지 않은 인플레 우려 등으로 인해 당국은 부양 카드 사용에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화와 같은 공격적 완화책이 나오기 보다는 은행의 지급준비율 인하 정도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인도 역시도 올 회계연도 성장률이 역시 예년의 9∼10% 실적보다 낮은 7%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이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은 지난 9일 예고에 없던 이메일 성명에서 은행 지급준비율을 5.5%에서 4.75%로 낮췄다. 15일 열린 RBI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8.50% 수준에 동결하기는 했지만 통화정책회의가 아닌 시점에 지준율을 낮춘 것은 2010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정책당국의 불안감을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브라질의 경우 갈 길이 더 바쁘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전망치에서 반토막 난 지난해 성장률에 따른 부담감으로 지난 7일 기준금리를 10.5%에서 9.75%로 75bp나 인하했다. 브라질 기준금리가 한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10년 4월의 9.5% 이후 거의 2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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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