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연순 이기석 기자] 정부의 선물환 규제가 외환시장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규제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는 전제 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급격한 외자유출로 IMF 이래 다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곳곳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G20 정상회의가 최상위 포럼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함께 글로벌 금융규제의 틀을 정비하려는 국제적 흐름에 적극 참여, 위기 시 신흥국의 급격한 자본이동에 대한 국제적 논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5월초 열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제43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출구전략과 더불어 아시아국가들의 최대 의제로 부상했으며, 오는 6월 4일부터 열리는 G20 부산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 신흥국의 급격한 자본유출이 신흥국 경제는 물론 선진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뜻을 피력해 왔다.
비록 국제적 논의가 아직 최종 수렴이 된 상태가 아닌 상황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도 지난해 이래 정부 및 통화신용, 그리고 금융감독 당국이 모여 국내에 어떠한 규제를 도입할 것인가를 논의해 왔고,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증으로 정부나 당국자들의 발언이 나오면서 규제를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규제안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정부는 최근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대해 ‘NDF거래 규제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한 바 없다’거나 ‘외은지점 규제를 정한 바 없다’거나 ‘은행 선물환 포지션 규제 여부와 규제수준에 대해 결정한 바 없다’는 등 공식해명 자료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이같은 해명은 최근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환율이 다시 150원 이상 폭등하자 잠시 주춤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천안함 사태나 유럽의 재정위기 속에서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유동성이 줄어들고 외자조달이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규제가 발표될 경우 금융시장이 다시 급격한 혼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부 은행 직접규제 하나? 외환시장 규제강도에 촉각
그럼에도 정부가 선물환 거래 규제에 착수한 것은 사실이고 특히 최근 금융감독원 김종창 원장의 외신기자 간담회 발언 이후 은행에 대한 시장을 통한 간접 규제와 더불어 직접 규제까지 도입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을 비롯한 국내은행은 물론 외국계은행 서울지점 등 금융권에서는 규제의 범위와 강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상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김종창 금감원장은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외화 유출입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선물환 거래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최근 선물환 거래 규제논의에 대해 다시 포문을 열었다.
이후 정부가 역내외 선물환 거래를 총괄 규제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그 방안으로 국내 은행과 외국계 은행의 국내지점(외은지점)에 대한 선물환 포지션 한도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 유력안으로 부각되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는 "김익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이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규제를 하기로 결정했고, 구체적으로 은행의 선물환포지션을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비율을 기준으로 국내은행은 50%, 외국은행 지점은 250%로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나 외환당국은 규제 범위와 수준이 일부 언론을 통해 언급되자 규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즉각 해명에 나서는 등 외환시장에 미칠 파장에 경계하는 모습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0일 "현 시점에서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규제를 하기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힌 데 이어, 31일에도 "선물환포지션 규제의 여부와 포지션 한도는 전혀 결정된 바 없다"고 재차 공식적으로 해명했다.
외환금융시장에서는 정부의 선물환 규제가 자칫 의도와는 달리 '시장왜곡'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규제의 범위와 수준에 대해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정부, 역외세력+외은지점 겨냥한 것인가?
일단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가 선물환 규제원칙에 합의한 가운데 큰 틀에서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규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급격한 해외 자본 유출입을 막고 대내외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역외 투기세력에 의해 국내 외환시장의 변동폭이 확대되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유로존 재정위기와 천안함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시에 고조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하루에 장중 60원이 넘는 폭등세를 연출했고 시장 급등락에 신경을 세우고 있는 정부로서는 고민이 한층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외환당국에서는 환율 급등락시 정상적인 수급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급등락 이유로 투기세력을 지목하면서 "투기세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경계감을 지속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외환시장에서도 이번 선물환 규제의 핵심 대상으로 역외세력과 외은지점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A은행의 딜러는 "이번 규제의 주된 타겟은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는 NDF시장 역외거래자와 외은지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당국에서 적극 해명에 나서기는 했지만 선물환 거래의 총량 규제안이 유력안으로 부각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외국환 거래규정의 외국환 포지션 한도와 관련,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자기자본의 일정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국내은행의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외은지점의 경우 기존 거래 규모의 급격한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규제대책에 대해 외은지점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외국계은행 서울지점 관계자는 "대부분의 경우 구체적인 규제대상이 외국계은행 서울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규제취지가 애초 목적과는 다르게 작용할 가능성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 선물환 규제, 소기 목적 달성 가능할까?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을 규제할 경우 역외시장 거래도 위축돼 최근 외환시장 변동폭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역외세력의 시장 흔들기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실제 은행의 포지션 규제가 신설되면 자동으로 차액결제선물환(NDF)과 옵션, 파생상품 등이 포함돼 총괄적으로 규제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아울러 정부는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거래를 제한함으로써 기조적으로 외화차입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조선중공업 등 글로벌 기업들의 과도한 선물환 매도 거래에 따라 선물환율을 사주는 은행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해외에서 달러유동성을 조달해야하고, 이는 단기외채 급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같은 단기외채 급증이 기업들의 선물환 매도로 인한 것이고 향후 결제자금이 유입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이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외화유동성이 급유출되며 국내금융시장도 위기에 몰리자 국제투자자들한테 이런 설명들이 크게 설득력이 갖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IMF 이후 이른바 ‘낙인효과’ 등까지 가세되자 ‘아차’ 하는 곤혹스러움에 빠진 바 있다.
특히 국내은행보다는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외은지점들이 기업들과 선물환 거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외은지점의 차입금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과 선물환거래를 하려면 달러유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은행들보다는 아무래도 조달비용이 낮은 외국계은행 서울지점들이 선물환거래를 활발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은지점의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1/4분기 698억6000만 달러에서 올해 1/4분기에는 800억5700만 달러로 1년새 100억달러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거래를 규제함으로써 기업과 은행의 선물환거래를 줄여나가고 이에 더해 단기외채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 선물환 규제로 외화차입 규모 줄일 수 있나?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선물환 규제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선물환 포지션 규제로 외화차입 규모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체들 입장에서 선물환 매도거래를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선물환 매도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고 이에 선물환 공급 자체는 줄어들 가능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조선중공업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화됐으며 정부도 자랑하듯이 세계 1위부터 상위권에 있는 업체이기 때문에 이들의 해외수주를 막을 도리가 없으며, 막아서도 안된다.
더욱이 이들 기업들이 선물환 매도헤지를 하지 않을 경우 이들 기업이 위험에 노출됨에 따라 환율급변동시 기업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단기외채 규모는 특별히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스왑시장에서 가격왜곡 등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B국내은행의 딜러는 "선물환 공급 자체는 줄어들 가능성은 없는데, 외은지점 은행들의 선물환 매입 포지션이 줄어들게 된다"며 "국내은행이 받아주지 못할 경우 이는 해외 핫머니가 들어와서 재정거래 유인이 생길 때까지 선물환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실질적으로 외화차입은 줄이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딜러는 "선물환 포지션을 맞추기 위해 포지션을 해당은행 해외지점으로 이동시키면 국내 자금효과가 해외로 이전되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차입규모는 바뀐 것이 없는데 스왑포인트 하락은 물론 추가적으로 단기 차입 금리 상승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국내은행의 스왑딜러는 "지난해 규제안이 나온다는 했을 때 NDF곡선과 NDF 평가곡선이 다르게 움직였다"며 "국내시장과 역외시장에서 스왑가격이 괴리가 나타날 수 있어 가격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선물환 거래 규제방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까지 크지 않다.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언급이 돼왔던 이슈들이고 구체적인 규제범위와 수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제한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스왑딜러는 "과거에는 시장 영향이 컸는데 지금은 둔감해졌고 스왑시장에 개입성 비드가 나오면서 유동성 자체는 탄탄하게 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정부 역시 외화유동성 공급원이 줄어들지 않을까, 또 가격왜곡으로 국내 시장이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자유화 정책의 후퇴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에 섣불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김주현 사무처장은 지난 3월 한 정책포럼에서 “금융위기가 나더라도 금융기관이 단기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선물환, 헤지, NDF 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나 굉장히 조심스럽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녹록치 않다는 점도 시인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997년 IMF 당시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사태를 겪은 뒤 이를 사전예방하겠다며 나섰던 정부가 또다시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당국의 대응능력에 대해 회의하는 목소리를 내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위기는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이상, 위기가 다시 재연되지 않기 위한 예방조치들의 필요성은 절실해 보인다.
그렇지만 과연 정부가 외화유동성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외은지점을 어떻게 ‘글로벌 규제’ 흐름 속에 묶어두고,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980년대 이래 대외개방과 자본자유화 이후 점차 글로벌화되고 있는 한국금융시장의 미래가 달려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