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이화여대 서양화과 동창회가 19일부터 신금례 상수전을 연다.
- 100세 신금례는 격변기에도 작업을 이어온 국내 최장수 여성화가다.
- 신금례는 구상과 추상을 아우른 독자적 회화세계와 여성미술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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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올해 100세를 맞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의 화가 신금례가 상수(백세) 기념전을 연다.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동창회는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 전관에서 '신금례 상수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100세를 맞은 선배 화가의 상수를 축하하기 위해 후배들이 마련한 전시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신금례는 1945년 이화여대 미술학과에 입학해 1949년 봄 졸업했다. 졸업 후 6.25전쟁 등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작가의 길을 택해 최근까지도 작업을 이어간 국내 여성화가 중 최장수 화가다.
또한 신금례는 국내서 대학 미술교육을 수료한 첫 세대에 해당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신금례는 화업을 택한 이유에 대해 "그림을 그렸어. 그냥. 그 때서부터 신나게 하구 그랬지."라고 회고했다. 미술대학을 택한 이유도 선명했다. "망설임 없이 미술과로 택했지. 내 꿈이 그 거였으니깐."
신금례는 재불화가 남관(1911~1990)의 부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51년 6.25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스승이자 유명 화가인 남관과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산에서의 피난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남관을 찾아가 도와주던 것이 인연이 돼 혼례를 올린 것. 전쟁 중이었지만 두사람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꼽히는 고희동이 주례를 맡았고, 피난 내려왔던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참석해 축하를 건넸다.

그러나 남관과의 결혼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5살 연상의 남관은 일본 도쿄에서 미술전시를 보고 돌아온 뒤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도불전을 열었다. 그리곤 바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이후 귀국하지 않았고, 파리에서 시인 김광섭의 딸이자 소설가인 김진옥과 또다른 가정을 꾸렸다.
한국에 남은 신금례에게는 아들 남윤을 키우고,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일이 남았다. 이에 신금례는 당시 홍익공업전문대학(현 홍익대학교)에 출강하며 가정을 돌보는 틈틈이 붓을 놓지 않았다.
이후 신금례는 여성 화가들의 활동반경을 넓히는 데도 힘을 쏟았다. 이화여대 미대 출신그룹인 녹미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여류화가회 회장도 지냈다. 여성 미술가 최초로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신금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구체적인 대상을 표현하면서도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색채와 질감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미를 드러내려 했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은 "신금례의 작품은 단단한 구상에서 시작해 내적 상태를 작품에 투사하는 훈련과 자기수양으로서의 제작태도가 반영돼 있다"며 "추상과 구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한 작가"라고 평했다. 또 신금례가 '규수화가'에서 '여류화가'로, 다시 '여성화가'에서 '화가'에 이르는 길을 앞장 서 개척한 점도 높이 꼽았다. 여류화가라는 수식어를 딛고, 한 사람의 화가로 당당하게 서기까지 신금례가 살아낸 100년은 한국 여성미술사의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신금례의 상수 기념전은 이화여대 서양화과 동문 회원들이 기금을 마련하고, 후배들이 전시 실무에 힘을 보태 성사됐다. 전시는 한국 대학미술교육의 세례를 받은 1세대 화가를 기리는 자리이자, 한 세기를 치열하고 건강하게 살아낸 선배에게 후배들이 보내는 축하의 꽃다발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