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유단이 31일 횡성전투 전사자 김하동 일병을 확인했다
- 김 일병 유해는 지난해 횡성군 발굴 뒤 DNA로 판별했다
- 유가족은 75년 만의 귀환에 희생과 한을 함께 기렸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2023년 채취한 남동생 DNA와 대조해 형제 관계 판정
유해발굴사업 277번째 귀환…"부모님 한이 이제 내려앉는 듯"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6·25전쟁 당시 강원 횡성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김하동 일병의 유해가 전사 75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강원 횡성군에서 수습한 부분 유해의 DNA를 분석한 결과, 국군 제8사단 소속 김 일병으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김 일병은 올해 들어 신원이 확인된 아홉 번째 호국영웅이자,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뒤 가족에게 돌아간 277번째 국군 전사자다.
국유단은 이날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김 일병의 남동생 김하준옹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었다. 1939년생인 김옹은 "형님을 유전자 검사로 찾았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며 "형님이 돌아가신 뒤 부모님이 매일 장독대 뒤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에 함께 울었던 한이 이제 내려앉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일병의 유해 발굴은 한 주민의 오랜 기억에서 출발했다. 2024년 3월 국유단에 제보한 80대 주민은 어린 시절 국군 장병 7명이 중공군에 붙잡혀 밭에서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피란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시신을 인근 야산에 매장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유단은 제보자와 현장 조사를 벌이고 다른 주민들의 추가 증언을 확보한 뒤, 토지 소유주와 협의해 지난해 3월 전문 발굴팀을 투입했다.
발굴팀은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 일대에서 오른쪽 무릎뼈·정강뼈·발목뼈·발등뼈가 해부학적 연속성을 유지한 부분 유해를 수습했다. 이후 유전자 시료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2023년 10월 미리 채취해 둔 김옹의 DNA 자료와 일치했다. 국유단은 지난해 7월 수습 유해의 유전자 분석을 마친 뒤 1년이 지나지 않은 올해 4월 두 사람이 형제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
1932년 1월 경북 경주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김 일병은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학적부에는 경주중학교 1회 졸업생으로 기재됐지만, 실제로는 18세이던 1950년 학업을 마치기 전 자원입대했다. 그는 그해 11월 대구 육군 제1훈련소에 입소해 한 달간 훈련을 받은 뒤 국군 제8사단에 배치됐다.

김 일병은 이듬해 2월 5~15일 벌어진 횡성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군 기록에 남아 있다. 횡성전투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이른바 '2월 공세' 과정에서 국군 제3·5·8사단과 미 제10군단이 중공군 및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한 전투다. 당시 국군 8사단은 큰 피해를 입고 원주로 후퇴한 뒤 대구로 이동해 부대를 재편성했다. 김 일병의 유해가 발견된 횡성 일대는 이 격전의 상흔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전병희 국유단장은 이날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을 담은 '호국의 얼 함'을 전달했다. 전 단장은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한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남은 호국영웅의 유해를 끝까지 수습하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에도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