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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장 두번째 분단 ㉖ 이승만 대통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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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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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6월 말 전쟁 확대 속에서 대전을 사수하려 했다고 했다.
  • 무초 대사와 맥아더가 인사와 방어선을 조율하며 정일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했다.
  • 대통령은 7월 1일 목포로 피난해 부산행 함정에 올랐다고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충남도지사 관저에 주한 미국대사 존 무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을 마주한 그는 다짜고짜 고개를 숙였다. "각하, 꼴이 사나워 죄송합니다."

그의 몰골은 마치 쓰레기더미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 같았다. 양복은 흠뻑 젖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어진 데다 흙먼지와 진흙이 온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수원에서 지프를 타고 오는 동안 북한군 야크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서너 차례나 받았다. 총탄이 쏟아질 때마다 그는 논두렁과 배수로 속으로 몸을 던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진흙투성이가 된 그의 옷자락에는 총탄을 피해 몸을 던졌던 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무초는 품속에서 전문 한 장을 꺼내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맥아더 장군께서 오늘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기 위해 도쿄에서 오십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며칠째 굳어 있던 대통령의 얼굴에 모처럼 엷은 미소가 번졌다. "한 시간 뒤 비행장으로 나가겠소."

[AI이미지=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그날 수원 농과대학에 설치된 국군과 미군의 임시사령부에서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감격스럽게 맞이했다.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했다. 그러나 포옹이 끝나자 대통령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장군, 장군의 구두가 지금 막 자라고 있는 모를 밟고 있소." 맥아더는 얼른 발밑을 내려다보더니 한 걸음 물러섰다. "각하, 미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정중히 사과했다. 전선의 참담함 속에서도 못자리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노 대통령의 눈길이었다.

짧은 회동을 마친 뒤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귀로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북한군 야크기 두 대가 대통령 전용기를 추격해 왔다. 조종사는 산등성이를 스치듯 저공비행을 하며 계곡 사이를 누볐다. 기체가 좌우로 요동칠 때마다 좁은 기내에는 숨죽인 긴장만이 흘렀다. 가까스로 적기의 공격을 따돌린 끝에 비행기는 무사히 대전에 도착했다.

그날 밤 9시 무렵, 장택상과 신익희가 충남도지사 관저를 찾았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현 상황을 수습하려면 유격전의 명수인 이범석 장군을 국방부 장관으로 기용해야 합니다."

순간, 곁에 있던 무초 대사가 말을 받았다. "각하, 지금은 각료를 교체할 때가 아닙니다. 특히 국방부 장관을 바꾸면 군 지휘체계에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당시 정가에는 무초가 이범석 장군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은 대체로 자존심이 강하고 미국의 뜻에 쉽게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일제강점기 동안 비교적 무난한 경력을 가진 인사들을 더 신뢰한다는 풍문도 나돌았다.

그 소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쟁 초기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인사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그날 밤, 모두가 돌아간 뒤 대통령은 조용히 부인 프란체스카를 바라보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철기 이범석 장군 같은 파이터요. 그런데 무초 펠로(Muccio fellow)가 반대하는군."

말끝에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좀처럼 무초를'대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늘"무초 펠로", 곧"무초 녀석"이라고 불렀다.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만 드러나는 특유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다음 날인 1950년 6월 30일 아침. 무초 대사가 다시 대통령을 찾아왔다. "맥아더 장군께서는 지쳐 있는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을 정일권 장군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계십니다."

대통령 역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날 정오 무렵, 채병덕 총참모장을 정일권 장군으로 교체하는 인사명령서에 조용히 서명했다.

관저 밖에서는 매미가 한여름의 기세를 뽐내듯 쉼 없이 울어댔다. 손길이 닿지 않은 뜰의 꽃들은 제철을 맞아 향기를 한껏 품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풍경은 나라 전체를 뒤덮은 전쟁의 먹구름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대통령의 또 다른 고민은 국무총리 인선이었다.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총리를 겸임하고 있었지만, 국가적 위기를 수습할 새로운 지도력이 절실했다. 그때마다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고당 조만식. '조만식 선생만 곁에 있었다면….'

정부 수립 이전부터 대통령은 여러 차례 사람을 평양으로 보내 함께 나라를 세우자고 간청했다. 그러나 조만식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핍박받는 북한 주민을 두고 저 혼자 서울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때마다 대통령은 깊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함께할 수 있었던 인물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지금, 이 순간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전황이 악화될수록 대통령의 침실 풍경도 달라졌다. 머리맡에는 언제나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어느 날 밤, 대통령은 그 권총을 바라보다가 프란체스카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이 권총은 마지막 순간 공산당 서너 놈을 쏜 뒤, 우리 둘을 하나님 곁으로 데려다줄 티켓이오."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밤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길고도 혹독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1950년 7월 1일 새벽 3시. 황규면 비서가 다급히 대통령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북한군이 이미 수원을 돌파해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는 긴급 보고였다.

불과 20분 뒤인 새벽 3시 20분, 주한 미국 대사관 1등 서기관 헤럴드 노블이 숨을 몰아쉬며 관저에 도착했다. "각하, 대전 이남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곧이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정일권 육군 총참모장도 도착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짙은 침통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심은 완강했다. "차라리 대전에서 죽겠소.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 국민의 경멸을 받고 싶지는 않소." 그는 대전 사수를 고집했다. 모두를 물린 대통령은 침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피난길에 오른 국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잇따른 패배를 막지 못한 지도자로서의 분노와 자책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당장 전세를 뒤집을 묘책은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는 메모지 한 장을 꺼내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갔다. "죽음. 그 자체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제단에 나의 생명을 바치려 한다. 나의 사랑하는 국민 또한 끝까지 싸워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다만 후사 없이 죽는다면, 그것만이 조상께 죄를 짓는 불효일 뿐이다." 새벽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생사를 넘어, 나라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노블은 다시 대통령을 찾아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외교관다운 침착함보다 절박함이 먼저 배어 있었다. "각하, 정부의 계속성을 유지하려면 대전을 사수하는 것보다 남쪽으로 이동해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애원에 가까운 설득이었다.

곁에 있던 신성모 국방부 장관도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부디 남쪽으로 내려가십시오." 대통령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하늘은 이미 장맛비를 쏟아 붓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대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대통령 일행은 폭우를 뚫고 목포를 향해 길을 나섰다.
김장흥 총경이 대통령과 같은 차에 올랐다. 황규면 비서와 이철원 공보처장, 영부인 비서 김옥자는 다른 지프를 탔다. 경호 경찰 네 명이 마지막 차량에서 뒤를 따랐다.

민가에 쌓인 미군 비행연료탱크 / 광복~1950년대.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끝없이 이어지는 빗길은 피난길이라기보다 전쟁터를 빠져나오는 탈출로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로 목포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일행은 방향을 틀어 이리역으로 향했다. 황규면 비서가 역장에게 열차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객차는 모두 징발됐습니다. 교통부 장관의 명령 없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열차를 내드릴 수 없습니다." 황 비서는 곧장 철도 전화기를 붙들었다. 대전의 김석관 교통부 장관이 전화를 받았다. "곧 열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황 비서는 역 구내 매점을 돌아다니며 건빵을 있는 대로 사 모았다. 대통령은 건빵 봉지를 받아 들더니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어허, 별미네. 맛있는데." 순식간에 한 봉지를 비워 버렸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허기 앞에서는 건빵 한 봉지도 귀한 식사가 되었다.

오후 1시 40분. 열차는 마침내 목포역 구내로 들어왔다. 김장흥 총경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열차를 역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홀로 목포경비사령부를 찾아갔다.

며칠째 이어진 피난길 때문이었을까. 대통령의 바바리코트는 먼지와 때가 잔뜩 배어 있었고, 흰 파나마모자는 검게 얼룩져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행원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을 대한민국 대통령 일행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초라한 행색이었다.

김 총경은 그런 모습으로 대통령이 군인들 앞에 나타났다가 혹시라도 신원을 알아보지 못한 경비병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까 염려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사령부를 찾은 것이었다.

김 총경은 정극모 목포경비사령관에게 대통령을 극비리에 부산으로 모셔야 하니 함정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 대령은 쉽게 믿지 못했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던 탓이었다. "직접 대통령 각하를 뵙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김 총경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곧장 정 대령을 지프에 태우고 대통령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렸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색안경까지 낀 대통령을 바라보던 정 대령은 한참 만에야 그가 이승만 대통령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황급히 부동자세를 취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경례하며 신고했다. 대통령은 손짓으로 그를 가까이 불렀다. "내가 부산으로 조용히 가고 싶네. 자네가 수고를 좀 해주어야겠어." 정 대령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각하, 점심은 드셨습니까?" 대통령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판에 점심은 무슨 점심인가."

정 대령은 곧바로 지프를 몰아 역전 다방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그는 홍차와 토마토, 그리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들고 돌아왔다.

오후 4시. 대통령 일행은 마침내 함정을 타고 부산을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바다는 그들마저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풍랑이 거세게 일었다. 함정은 성난 파도 위를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수행원들은 하나둘 극심한 뱃멀미에 쓰러졌다. 누워 신음하는 사람도 있었고, 갑판 난간을 붙잡고 구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만은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파도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정에서의 식사도 병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꽁보리밥 한 그릇, 짠지 몇 조각, 그리고 된장 한 덩이가 전부였다. 멀미에 지친 사람들은 음식 냄새조차 맡기 싫어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그 모습은 피난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제와 의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 지도자로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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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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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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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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