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티코 "3,500억 달러 '선지급(upfront)' 투자" 두고 한미 팽팽한 줄다리기
소식통 "트럼프 행정부, 투자 조건 초기 요구 일부 완화하는 방안 검토 중"
블룸 "한미 회의, 미중 회의 전초전 성격"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9일 방한을 앞두고 주요 외신들은 미국과 한국 간 복잡한 무역 협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복잡한 양상을 띠는 한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다음 날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의는 물론 여타 국가들과의 세부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쉽지 않은 자리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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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로이터=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08.26 photo@newspim.com |
◆ 폴리티코 "3500억달러 현금 선지급 요구가 발목"
28일(현지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국이 3,500억 달러를 '선지급(upfront)' 형태로 미국 정부에 지불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한미 무역합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그런 요구가 한국 경제를 붕괴시키고 원화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투자 세부 내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서 "자금의 출처는 어디인지, 대출이나 보증이 포함되는지, 그리고 투자 프로젝트 선정 및 이익 분배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체는 이 사안이 트럼프 행정부가 화려한 외국 투자 약속들을 실제로 이행 가능한 결과로 전환하는 데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도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내놨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제시한 초기 조건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투자 이행 조건을 완화할 경우, 이는 앞으로 미국과 무역 협상을 추진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매체는 한미 협상에 정통한 세 명의 인사를 인용,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투자 조건에 대한 초기 요구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정부 재정에서 단번에 3,500억 달러를 지불하고, 투자 집행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백악관에 부여하라는 조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도 반대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또 해당 조건이 일본과 체결한 5,500억 달러 투자 협정과 유사한 구조이긴 하나,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이번 투자 약속이 일본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이라는 게 한국 측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무역 협상에 정통한 익명의 인사는 "한국은 약속을 이행하겠지만, 미국은 한국 경제가 일본보다 훨씬 작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원화 환율을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고도 감당 가능한 연간 선지급 한도를 약 200억 달러로 보고 있는데, 세 명의 관계자는 한국이 통화스와프 라인(currency swap line) 개설을 요청했지만 미 연준(Fed) 은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은 한국 원화로 투자금을 수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한국 정부는 이를 유연성 확보의 긍정적 신호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는 또 한국이 직접 투자, 대출, 보증, 기타 금융 안정장치를 결합해 지불을 장기 분할 방식으로 진행하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관계자는 "협상단은 점차 금융 구조에 대한 유연성 확대 쪽으로 수렴하고 있다"면서 "다만 프로젝트 선정 기준과 투자 일정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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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중국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블룸 "한미 회의, 시주석 만남 앞둔 '전초전'"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29일 회담이 30일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메인 이벤트' 격 정상회담을 앞둔 일종의 전초전 역할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백악관은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역내 주요 동맹국들과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여러 성과를 내도록 추진해왔는데, 한국과의 관계는 이러한 야심찬 구상을 구체적인 성과로 전환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미국과 한국이 주요 세부 조건에 대한 협상을 수개월째 이어가고 있다면서, 전날 미국이 일본과 일부 투자 프로젝트의 초기 세부 내용까지 공개한 상황은 한국이 일본보다 '소극적인 동맹국'처럼 보이게 했고, 자동차 관세 측면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자체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면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대미 수출 관세는 25%로 유지되어 일본 경쟁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협상 지연은 한국 측 합의안이 일본보다 훨씬 복잡하게 구성될 가능성을 시사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순방 중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여러 협정의 실제 이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며칠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과도 협정을 체결했지만, 관계자들은 여전히 구체적 세부 협상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양국은 한국 기업이 투자한 미국 내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필요한 고숙련 인력의 미국 입국 절차 및 비자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한다.
양측은 비자 발급 절차를 완화할 제도 마련에 합의했지만, 지난 9월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에서 불법 체류 단속이 벌어져 한국인 근로자들이 구금된 사건이 발생한 뒤로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에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DGA 그룹 정부관계 파트너 타미 오버비는 "한국 재벌들과 얘기해 보면, 그들은 '미국이 우리 자본과 투자를 원한다면, 우리 전문가들이 오가며 공장을 제대로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규정을 준수하며 열심히 일하던 한국인들이 체포되는 영상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월요일 이 같은 우려를 인정하면서 "외국 기술 인력을 위한 비자 제도 전면 개편 계획(a whole new plan)"을 약속했다.
하지만 익명의 한 관계자는 "한미 양국은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를 두 차례 가졌지만,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추가 회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