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반대 후보 내세워 스스로 내란 프레임 갇혀
尹과 냉정하게 절연 못해 중도층 공략 한계 노정
후보 단일화 내홍에 실망한 보수층 결집에 급급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국민의힘이 주장한 골든 크로스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완패였다. 희망고문으로 막판 보수 지지층의 결집에는 성공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국민의힘의 선거 참패는 예고된 참사였다. 3년 만에 진보 진영에 정권을 내준 것이다.
이번 대선은 내란 종식 프레임이 모든 이슈를 덮은 선거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가장 전면에 내세운 내란 종식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맞불을 놓은 독재 저지를 압도했다. 선거 막판에 돌발한 커피 원가 120원, 호텔 경제학, 아들의 도덕적 문제, 진보 스피커 유시민 작가의 여성 혐오 발언 등 이 후보의 겹악재도 덮어버렸다. 국민의힘은 총공세를 벌였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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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스핌] 김학선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밤 인천 계양구 귤현동 자택을 나와 주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06.03 yooksa@newspim.com |
애당초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이에 따른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내란 프레임이 지배한 선거였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60%에 달했다. 헌법재판소는 결국 8대 0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선이 시작됐다.
이재명 후보가 시종 내란 종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내란 종식은 이 후보가 가진 사실상 유일한 무기였다. 게다가 이 후보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11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사법 리스크는 이 후보의 발목을 잡는 리스크였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애당초 힘든 싸움이었지만 내란 프레임만 무력화할 수 있다면 해볼만한 게임이었다.
그런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이재명 후보가 12.4%포인트(p) 앞선 것으로 나온 3일 방송 3사 출구 조사가 나온 뒤 "이재명이기 때문에 해볼 만했지만 잡동사니들이 분탕질을 쳐 망쳤다"고 했다. 기회가 있었지만 친윤(친윤석열)계의 무리수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며 자멸했다는 것이다. 대선 상황을 한마디로 잘 요약했다.
국민의힘의 대선 참패를 부른 세 가지 실책이 이어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탄핵에 반대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후보로 내세웠다. 내란 프레임을 무력화하기는커녕 스스로 갇혀 버린 것이다.
비상계엄 해제에 앞장 서고 탄핵에 찬성한 인사를 후보로 내세웠다면 적어도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 공세는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탄핵 선거에 탄핵에 반대한 인사를 내세우고 중도층에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보수가 막판에 총결집했지만 격차를 줄이지 못한 것은 중도층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다. 비상계엄을 앞장서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인사를 후보로 내세웠다면 중도층에 승부를 걸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국민 60%가 탄핵에 찬성해 파면당한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줬다. 파면 직후 탈당 또는 제명 조치를 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고 당이 새 출발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수 있다. 당내 주류인 친윤계가 버티고 있는 데다 핵심 지지기반인 강성 보수층이 반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뒤늦게 탈당 카드를 꺼냈으나 이마저도 김문수 후보는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기다렸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탈당했으나 이미 늦었다. 내란 프레임을 조금이나마 털어버릴 기회를 날렸다. 탈당 효과가 반감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도 결정적 패인이었다. 심야 막장 드라마는 합리적 보수층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 정당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하는 반민주적인 행태였다.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칙의 연속이었다. 보수의 결집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김문수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텃밭 지키기에 급급했다. 취약지와 중도층 공략에 힘을 쏟아야 할 판에 집토기 지키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텃밭이 흔들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후보 단일화 내홍이 부른 참사였다.
국민의힘이 선거 참패로 위기를 맞았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극우적 행태로 국민적 명분과 신뢰를 잃었다. 합리적 보수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도 멀어졌다. 전략과 열정, 파이팅을 찾아보기 어렵다. 웰빙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자성과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살 길이 없다.
선거 패배에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런 변명과 물타기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친윤계가 당권 사수 등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면 출구를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수도권이 다 무너진 마당에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럴 게 아니라면 차라리 당을 해산하고 합리적 보수가 헤처모여 하는 게 보수의 미래를 위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