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착공전-공사중 사업장 여건 달라 중재안도 차등 적용
착공 전 단지 시공자, 사업비 급등 현실화 우려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대조1구역 68%, 신반포4지구 25%, 노량진6구역 81%"
시공자(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로 갈등을 빚고 있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장에 대한 서울시 중재안이 사업장마다 달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이에 시는 사업장마다 상황이 다르며 특히 착공 여부가 중재안에서의 시공자 요구 금액 반영 비율을 크게 가른 것이란 설명을 내놓는다.
다만 착공 전 사업장에 대한 시공자 공사비 요구액이 서울시 중재안에서도 대부분 인정되고 있는 만큼 향후 원가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시공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중재에 더욱 힘이 실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3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최근 공사비 증액요구에 따라 갈등을 빚고 있는 재정비사업장에서 도출한 중재안의 시공자 요구액 반영 비율이 사업장마다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정비사업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조합과 시공자간 갈등에 대한 합의를 돕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의 공사 중단 사태 이후 정비사업 코디네이터를 적극적으로 파견하고 있다. 서울시가 시공자 증액 요구안을 분석해 중재안을 제시하면 조합과 시공자측은 이의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모두 15곳의 정비사업장에 코디네이터를 파견한 상태며 이중 8곳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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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재건축 공사현장 [사진=뉴스핌DB] |
서울시가 올들어 갈등을 빚고 있는 재정비사업장에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중재안을 도출해 합의가 이뤄진 곳은 모두 3곳이다. 먼저 지난해 공사비 갈등으로 반년간 공사가 중단됐다 재개된 은평구 대조1구역의 경우 시공자 현대건설의 증액 요구안은 설계변경·특화설계와 공사중단·공기연장 등 손실 비용과 물가변동을 포함해 3771억원이다. 이는 서울시 중재에 따라 2566억원 증액으로 합의됐다. 시공자 요구액에 대비한 합의금액은 68.0% 수준이다.
서초구 신반포4지구(메이플자이)에서는 물가상승, 금융비용 등에 따른 3082억원의 증액을 시공자 GS건설 측이 요구했고 이는 서울시 중재로 788억원으로 대폭 낮춰졌다. 시공자 요구액 대비 합의안은 25.6%다.
최근에는 동작구 노량진6구역에 대한 중재가 이뤄졌다. GS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은 2194억원과 함께 추가로 219억원을 합쳐 모두 2413억원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1976억원 규모의 중재안을 제시했고 결국 중재안이 합의됐다. 이는 시공자 요구액을 81.9% 반영한 것이다.
이같은 서울시 중재안의 시공자 요구액 반영 비율이 크게 다른 이유에 대해 서울시는 세부 항목에 대한 타당성 인정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급화 전략에 따른 마감재 상향 등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해 반영 비율이 높아진다. 반면 공사 중단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는 '원인 제공자'인 시공자측의 양보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단지에 대해서는 시공자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지만 착공 전 단지는 물가 및 원자잿값 인상 여부를 충분히 반영하기 때문에 시공자 요구액 반영 비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장 상황에 따라 중재안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원자잿값 인상은 중시해 판단하는 반면 시공자측에서 양보할 수 있는 금융비용 등은 반영 비율을 낮추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착공 전 단지의 경우 원가, 인건비 등을 반영할 수밖에 없어 시공자 요구안 반영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추세에 따라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의 공사비 인상폭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전 참여 시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사비를 대폭 낮췄다가 본계약시 공사비를 대폭 상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시공자 요구액이 68% 반영된 대조1구역에서 현대건설은 최초 계약 대비 40%를 증액했으며 노량진6구역은 당초 대비 55% 가량 공사비를 끌어올린 바 있다.
특히 최근 관리처분 인가 절차에 들어간 단지들의 경우 3~4년 전 맺은 시공자 계약에 따라 최초 공사비가 3.3㎡당 700만원 수준인 경우가 많다. 현 공사비 '시세'가 3.3㎡당 950만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중재 노력에도 재정비 사업장의 분담금 대폭 증가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더욱이 서울시 중재안에 따라 공사에 착공하더라도 공사 도중 추가 증액을 요구하며 공사 중단으로 '협박'할 수도 있다. 서울시의 중재안은 공사 중단에 대한 금지 조항이 없는데다 현행 제도상 공사 중단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시공자 측은 착공 전 얼마, 공사 중 얼마 하는 식으로 공사비 인상 '로드맵'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시공자로 선정되면 갑과 을이 바뀐다는 말이 있는데 둔촌주공재건축, 대조1구역 등에서 볼 수 있듯 시공자들에겐 공사 중단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중재를 해주면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기 어려운 만큼 서울시가 시공자 편이 아닌 조합원 편에서 좀 더 적극적인 개입과 분담금 하향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행 재개발·재건축 공사비 인상은 주택공급 확대 차원에서 이를 장려한 서울시의 책임도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 개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