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진 날, 평소처럼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로 출근했다. 생각보다 조용했다. 청사도, 삼각지역 거리도, 취재원들도 예상보다 덤덤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때는 청와대 앞이 긴장감으로 가득했고 광화문과 여의도에는 술렁임이 있었다. 이번에는 '탄핵'이라는 단어조차 어디선가 익숙해져 있었다. 낮설어야 할 일이 너무 익숙해진 현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취재원 몇몇은 짧게 웃었고, 몇몇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공통된 정서는 '지쳤다'라는 말로 수렴됐다.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지기 전에 정치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진 장면이다.
대통령실을 취재하는 기자로서도 탄핵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정상적인 언론 대응이 어려울 때가 많았고, 해명은 납득보다 회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날 현장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건 한 시민의 말이었다. 대통령실 근처에서 만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탄핵은 됐지만...뭐가 달라지겠어요? 정치인 전부가 달라져야죠". 짧지만 선명한 질문이었다.
![]() |
박성준 정치부 기자 |
탄핵 인용 결정 이후 국민의힘은 빠르게 '대선 준비' 모드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도 정국 주도권을 움켜쥐려 했다. 수습과 반성보다 계산과 대응이 앞서는 모습이다.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우리는 탄핵 이후 어떤 정치를 준비하고 있나', '대통령이 바뀌면 정말 이 구조가 바뀔까'.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두 번이나 겪은 나라에서 아직도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탄핵 인용이 결정된 날 퇴근길. 대통령실 앞을 지나 삼각지역으로 향하며 시민들의 표정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대부분은 무표정이었다. 환호도 분노도 아닌 무덤덤함. 그 표정 속에 쌓인 피로와 허탈이 한국 정치가 마주한 진짜 위기일지도 모른다.
탄핵보다 어려운 건 그다음이다.
park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