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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정착스토리](20) "TV출연에 유튜버, 카페 사장까지 척척 해냅니다"...몰타서 일하다 탈북한 나민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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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 궁금해 해외 근로자로 파견
파리 유학생 남편과 내 집 마련해
북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 늘 마음에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평양이 고향인 나민희(33) 씨는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에서 일하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14년 현지 봉제공장에 노동자로 파견됐다가 이듬해 10월 동료 2명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다.

[서울=뉴스핌]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봉제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탈북한 나민희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도 일산 카페 앞에서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4.12.12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제 요리전문학교를 나와 식당 요리사로 일하던 민희 씨는 문득 세상 밖이 궁금해졌다. 마침 몰타 봉재 공장에서 일할 파견근로자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1년 넘게 준비해 합격했다.

해외 파견근로자 선발은 엄격한 심사 과정과 절차를 거친다. 우선 집안 토대가 좋아야 하며 조직 생활 등에서 모범적이어야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얀 구름 위를 날아 몰타에 도착했다.

현지 작업장에는 몰타 사람을 비롯해 중국과 태국, 베트남 근로자들이 있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대부분 영어로 소통하고 눈빛만으로도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루는 바로 뒷자리에서 일하시던 몰타 현지인분이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어요. 한 주일 지나서 그분이 현장에 나오셨는데 영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는 거예요. 분명히 우리와 한 공간에서 같이 봉재 일을 하지만, 이분들은 외국에 다녀올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유없는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 탈북"

보통 북한 해외 파견근로자들은 예정된 계약이 끝나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민희 씨의 고민은 깊어졌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자유 없이 예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고 한다.

북한을 포기하면 전 세계를 다 돌아볼 수 있고, 북한을 고집하면 전 세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에서 가장 비장한 결심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고 했다.

가장 빠른 시일 안에 몰타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북한 해외 파견근로자들은 현지에서 항상 보위원의 감시 속에 있으며, 직원들 간에도 보위부 스파이가 숨어 있다.

심지어 병원이나 생필품을 사러 도시에 나갈 때도 단독 외출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세 명이 함께 가야 한다.

드디어 운명이 날이 다가왔다. 민희 씨는 보위원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통역을 비롯해 세 명이 몰타 도시로 나왔다. 감시망에서 벗어난 뒤 배를 타고 몰타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 외곽 섬으로 이동했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까지 갔다.

[서울=뉴스핌] 나민희 씨가 파리에서 건축 공부를 하던 중 탈북한 남편과 함께 유튜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평양여자 나민희] 2024.12.12

작업 현장을 떠난 뒤 모든 행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지도를 보면서 탈출 경로를 미리 파악했고, 운 좋게 북한 보위부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독일에 도착한 후, 한국대사관에 연락해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남한에 입국할 수 있었다. 

2015년 10월 무사히 한국에 입국한 민희 씨는 하나원 수료 후 인천에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다. 정착 초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이었다.

"평양에 살면서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질문을 받고 나니, 소심해지고 주눅이 들었어요. 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괜히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거나, 약간 갸우뚱하면서 바라볼 것 같은 생각에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고 싫었어요."

◆TV 예능방송 출연한 뒤 적성맞는 일 찾았다는 생각에 자신감

당시에는 다른 탈북민들처럼 탈북 브로커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서 금전 여유도 있었다.

그때는 경제활동보다는 집에서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알고 싶은 것들을 검색하는 생활이 전부였다.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는 '집콕' 생활이 더 편하다 보니 스스로가 쌓아 올린 벽 속에 갇혀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스물네 살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혼자 대학입시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후 전산회계학원도 다니고, 휴대폰 조립회사에서 단순노동도 하면서 천천히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뉴스핌] 경기도 일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나민희 씨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4.12.12

"주변 고향분들을 보면 친척이나 지인들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배우고 공유했어요. 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누구에게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워 고향분들과 소통이나 교류할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그러다가 처음 TV 예능방송에 출연했는데,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찾아주고, 일이 많아지면서 점차 라디오방송 진행도 하고 평양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게 되었어요."

민희 씨는 방송 일을 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고 이어갔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익혔고,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계속한 이유는 방송 일은 고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싶어서다.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꾸준함은 막연했던 그녀의 계획을 실천으로 이어지게 만들었고, 지난해 8월 드디어 경기도 일산에 카페를 오픈했다. 

그녀는 5년 전, 프랑스 유학 중에 탈출해 남한에 입국한 평양 출신 남편을 만났다. 같은 고향내기로 일을 통해 우연히 만났지만, 상대를 배려해 주고 아끼는 마음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다.

"솔직히 연인 사이는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하지만 결혼은 달랐어요. 혼자일 때는 '나는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했다면, 결혼 후에는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고 바뀌면서 서로 의지가 되고 어떤 일도 두렵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탈북여성들에게 "반드시 결혼하되, 이왕이면 고향 사람과 함께해서 좋은 일 어려운 일을 극복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가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

3년 전 결혼한 그녀에게 남편은 매 순간 함께 있고,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존재다. 결혼 생활을 처음 시작한 임대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오순도순 미래를 그려나갔다.

지금은 임대아파트에서 벗어나 크지는 않지만 내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

그런데 민희 씨가 기억하는 행복은, 비록 작은 평수였지만 임대아파트에서 함께한 둘만의 따뜻했던 추억과 시간이다. 결혼으로 찾은 안정감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한없는 위안을 주었고, 내일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남한 사회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올바른 인간관계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좋은 영향을 받고, 한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소중한 것들을 뒤로한 채 희망과 꿈을 찾아 남한에 온 그에게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가슴 한편에 늘 아프게 남아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생각뿐이다. 아픔과 추억의 상처는 일상을 함께하는 남편과 좋은 사람들로부터 얻은 힘으로 아물고 있다.

샘물처럼 맑은 눈동자에 비친 10년 후 그녀가 그리는 미래는, 둘이 아닌 셋이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아울러 서로를 사랑하며 지혜를 합쳐 조급해하지 않고 정답게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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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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