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 회원국 사회적·지리적 결속 위해 마련된 기금
무기·장비 생산과 탱크 지나가는 도로·교량 만드는 데 쓸 수 있어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27개 회원국의 경제적·사회적·지리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편성해 놓은 '결속 기금(Cohesion Fund)' 3920억 유로(약 587조원)를 국방·안보 분야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향후 유럽에 대한 병력·무기 배치를 줄이고, 유럽이 러시아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아도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유럽이 자체 방위 능력을 키우는데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EU 집행위가 트럼프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 회원국에 대한 국방비 증액 압력과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에 따라 결속 기금을 국방·안보 분야에 전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회원국들은 앞으로 몇 주 안에 (특정 목적에 묶여 있던) 결속 기금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결속 기금은 EU가 운용하는 5개 투자 기금 중 하나로 회원국의 결속을 강화하는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로 회원국간 경제적 불균형 완화를 위한 각종 프로젝트에 사용된다. EU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7년 단위로 편성해 회원국에 배정한다. 현재는 2021~2027년 사이에 3920억 유로를 편성·배분하고 있다.
정책 변경에 따라 결속 기금은 무기와 탄약, 장비 등을 생산하는 방산 분야와 도로·철도·교량을 신설하거나 보수하는 데 사용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무기를 직접 구매하고 군을 지원하는데 사용되는 건 여전히 금지된다.
EU 집행위 대변인은 "군사적 이동성처럼 전반적으로 지역 발전을 가져오는 임무에 기여한다면 국방·안보 분야에도 결속 기금이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탱크가 이동할 수 있는 도로나 교량을 새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독일의 경우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유럽 군사 기동성의 핵심이지만 교통 인프라는 열악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22년 도로와 철도, 교량 등에 모두 1650억 유로(약 247조원)를 긴급 투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독일은 오는 2027년까지 390억 유로(약 58조원)의 결속 기금을 받을 예정이다.
EU 회원국은 그 동안 코로나 팬데믹 극복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결속 기금 지출은 소규모에 그쳤다. 기금 운용 기간이 절반 이상 지났지만 지금까지 사용된 돈은 약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EU 집행위의 정책 변경은 오는 2028년 시작되는 차기 EU 예산 편성을 앞두고 국방 분야에 더욱 중점을 두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