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유리한 때 기다리며 '기싸움'
신입생 모집요강 발표하면 협의 못해
막판엔 건설적 논의해야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정부와 의료계 모두 꼴 보기 싫다. 솔직히 이제 왜 싸우는지도 모르겠다."
의정갈등에 대한 생각을 지인들에게 묻다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느덧 8주 차에 접어든 의정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선거철 정치판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노연경 사회부 기자 |
선거철만 되면 되풀이 되는 '막말 논란'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이다. 상대 후보 흠집 내기에 불과한 막말 논란에 정작 논의해야 할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다.
장기화로 접어든 의정갈등도 어느 순간부터 정부와 의료계의 기싸움으로 번졌다. '우선 의료현장에 복귀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논의하자'는 정부의 대화 전제 조건에 의료계는 '의대 증원에 대한 원점 재논의 혹은 감축 없이는 대화의 장에 설수 없다'고 맞섰다.
어렵게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됐지만 의미있는 결과물은 남기지 못했다. 정부와 의료계 단체 모두 '물꼬를 텄다'는데 의의를 뒀지만 득보단 실이 많다.
정부를 '일진' 혹은 '조폭'에 비유하며 전공의 지키기에 나선 의대 교수들의 행동은 윤 대통령과 박 비대위원장의 만남만큼 주목을 받으며 만남의 의미를 찾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박 비대위원장만큼 전공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자신을 제외한 두 사람의 만남을 '밀실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역술인 천공에게 공개 만남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이 천공의 이름인 '이천(2000)공'에서 나왔다는 온라인상 의혹을 밝히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만남은 천공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거친 언사와 근거 없는 의혹에 초점이 맞춰지는 동안 정작 논의가 필요한 주제들은 뒤로 밀렸다. 당장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병원비와 연관된 의료수가나 '기피과'로 낙인찍혀 붕괴하고 있는 필수의료가 그렇다.
유례없이 길어지고 있는 이번 의정갈등 사태에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를 수정할 수 있는 최종 기한을 남겨두고 증원 규모 수정 가능성에 대해 애매하게 여지를 남겼다. 대표성을 띨 수 있을 만한 대화협의체를 구성해오라고 하며 의료계로 사태 해결의 공을 넘겨 사태를 장기화 시키기도 했다.
의료계는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 정부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며 총선 이후에 싸우자는 식으로 사태 해결 시점을 미뤘다. 의료계는 총선 이후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뭉쳐 통일된 안을 내놓겠단 계획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서로에게 '유리한 시점'을 기다리는 동안 건설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던 환자와 국민의 피로만 쌓였다.
총선 투표는 이틀 뒤고, 의대 정원을 수정할 수 있는 최종 기한인 신입생 모집요강은 다음 달 마무리된다. 이젠 정말 논의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기간이라도 정부와 의료계가 건설적인 논의를 하길 바란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