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3인전서 회화·조각·설치 총 36점 전시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학고재가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을 통해 더 나은 내일로 가고자 하는 세 작가의 마음을 '함(咸)'으로 담아냈다.
이진명 학고재 이사는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학고재에서 열린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 기자간담회에서 "'주역(周易)'의 서른한 번째 괘인 '함'을 통해 세 작가의 세계를 그려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백남준 작가의 'W3' [사진=학고재] 2024.03.13 alice09@newspim.com |
이번 전시는 우리의 영원한 고전 '주역'의 서른한 번째 괘인 '함'에서 출발한다. '주역'에서 서른 번째의 괘까지는 하늘의 도리, 즉 천도에 관한 것을, 서른한 번째 괘부터는 사람의 일, 즉 인사에 관련한 괘라고 말한다.
함괘는 예술의 괘이며, 남녀 사랑의 괘이자, 결혼의 괘를 의미한다. 함괘의 아래는 태소남을 상징하는 간괘, 위로는 태소녀를 상징하는 태괘로 구성돼 만물의 화평을 상징한다. 여기서 '간'은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태'는 서구 사회를 상징한다.
따라서 '함' 전시는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우리의 사유가 현대미술과 만나 창조할 수 있는 상승효과를 의미한다.
이날 이진명 이사는 "'함'의 영어 제목인 '센티엔트 비잉(Sentient Being)'은 중생(衆生)이라는 뜻도 있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 선생의 작품인 'w3'와 이어져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비디오아트 장면은 인간사의 모든 이야기이자 화합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백남준 작가의 '인터넷 드웰러' [사진=학고재] 2024.03.13 alice09@newspim.com |
이어 "'w3'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는 뜻인데 정보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굵은 전선으로 정보를 공유해 모든 사람이 소외받지 않고 획득한 정보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백남준 선생의 1970년대 작품은 명상적 체험이 중심이 됐다가 1990년대부터 세계화와 정보화가 주축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 "윤석남 선생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남녀차별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셨다가 동물권으로 이어진 분"이라며 "모든 존재자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으로 나아간 작품이 이번 전시에 소개된다"고 말했다.
이진명 이사는 김길후 작가에 대해 "윤진섭 미술평론가가 꼽은 '최고의 작가'로, 모든 문학과 회화에서는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주제가 많은데 김길후 작가의 작품은 빛이 어둠을 잡아먹는다. 그 최초의 순간을 그리며 현자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한다. 이렇게 '함'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잡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백남준 작가의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사진=학고재] 2024.03.13 alice09@newspim.com |
이번 3인전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를 포함해 총 36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먼저 백남준 작가의 경우 'W3',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인터넷 드웰러'가 있고 윤석남 작가는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김길후 작가는 '사유의 손'과 '무제' 등이 있다.
여기서 백남준 작가의 'W3'는 64개의 TV모니터로 구성돼 있으며, 이는 64비트를 상징한다. 즉, 컴퓨터와 인터넷, 디지털의 세계를 상징한다. 디지털은 0과 1의 이진법으로 구성되는데 동양의 '주역' 역시 '음'과 '양' 이진법으로 구성된다.
또 '구-일렉트로닉 포인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최를 축하하는 작품으로, 1989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기로 지구촌이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구공은 '지구'를 의미하는 한편 창조적 행위와 예술의 샘터로서의 유희를 상징하기도 한다.
윤석남 작가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는 버려진 나무를 수집해 버려진 유기견의 형상을 깎아 만들고 그 위에 먹으로 유기견을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윤석남 작가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사진=학고재] 2024.03.13 alice09@newspim.com |
이에 대해 윤 작가는 "이 작품은 유기견을 보살피고 있는 이애신 할머니를 뵙고 영감을 얻어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분을 뵙고 사람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할머니를 만난 그 날로 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5년에 걸쳐 작업을 끝냈다. 유기견의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개를 처음 그려봤기 때문에 연필로 드로잉만 2년간 작업했고, 나무 작업은 3년이 걸렸다"라며 "이 작업을 하면서 개를 버린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 사람 중 한 명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을 하며 잘못에 대해 사죄를 받고 싶은 심정도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길후 작가는 2000년대 들어 불학에 정진했다. 그의 '사유의 손' 작품에서 사유는 정각을 가리키며 작품에서 90도로 기울인 얼굴이 정각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손은 바르고 원만한 행위, 즉 정행을 상징한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김길후 작가의 '무제' [사진=학고재] 2024.03.13 alice09@newspim.com |
김 작가는 "지금까지 표현주의를 통해 사람의 깊은 내면을 담아내려고 했다. 표현주의는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한, 변하지 않는다"라며 "회화에 나의 표현성을 담으려고 여러 연구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 중국으로 갔는데 그때 시작한 작품이 물성이 강한 작업들이었다. 육중한 크기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회화를 창출하려고 노력했고, 작업을 통해 자아의 상실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작업을 통해 김길후의 자아가 아닌, 보편적인 자아를 그려내려고 했으며, 빠른 작업 속에서 육중한 일획의 붓질을 통해 느낌과 깊이를 담아내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학고재는 백남준의 우리가 세계(우주)와 함께 한다는 작업의 뜻을, 윤석남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뜻을, 김길후의 회화 세계에서 뜻하는 현자(부처)와 함께 한다는 뜻을 내포한 작업을 통해 '함께 더 나은 내일로 가자'라는 의미를 드러낸다.
이번 백남준·윤석남·김길후의 3인전은 오는 4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학교재 본관, 신관 지하 2층, 학고재 오름 등에서 관람 가능하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