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대표자라고 나서면 나중에 무슨 책임을 지울지 모르는데 누가 나서겠냐."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정부가 고발과 동시에 대화에 나서자고 하는데 누가 그 협상 테이블에 나가겠냐며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노연경 사회부 기자 |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 테이블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대화 한번 없이 지난달 20일 오전 6시를 기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공의 집단 사직은 보름을 맞았다.
전공의 집단행동 교사 혐의를 받는 의료계 핵심 관계자에 대한 경찰 조사가 시작됐고,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법적 처분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 창구는 완전히 닫혔다.
의료계는 정부 대신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에 기대고 있다. 일부 의대 교수들은 '충분한 고려 없는 정책으로 한국 의료계와 환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해외 의사협회에 개인 명의 호소문을 보냈다.
박인숙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은 지난 5일 외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반인권적 조치만 반복하고 있다"며 "본인 의사대로 사직한 전공의가 업무복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아 면허가 취소된다면 그 법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서로를 등지고 불신을 키워가고 있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됐다.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인력의 40%가량을 전공의로 채우고 있는 기형적 구조다.
인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주요 종합병원은 중증도를 따져 환자를 가려 받기 시작했다. 신규 환자의 입원 문턱은 더 높아졌고, 일부 진료과는 외래 진료까지 임시 폐쇄했다. '그래도 위급, 중증 환자는 치료받고 있다'라는 말은 환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 뜻은 전달해달라는 정부의 요구는 전제부터가 무리했다. 전공의라는 하나의 집단도 진료과별로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른 게 현실이다.
1만명에 가까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무더기 행정처분도 여력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도 환자 피해를 수반한 의료개혁은 원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번 싸움이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