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관련 증권사-보험사, 최초 협업
한화생명 자회사 통해 자사 금융 상품 판매
양사 간 구체적 협력방안 논의 예정
[서울=뉴스핌] 이석훈 기자 = 한국투자증권이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화생명과 손을 잡았다. 서로 다른 업종의 두 회사가 협업한 배경에는 퇴직연금시장 공략의 핵심 키가 상품판매경로 다각화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상품이 한화생명 판매자회사(GA)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플랫폼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한화생명금융서비스에 1000억원을 지분 투자하고 사업을 협력하기 위한 MOU(양해각서) 체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사진=한국투자증권] |
이번 한국투자증권과 한화생명의 MOU는 퇴직연금 상품 판매에 관한 타 금융회사 간의 첫 번째 연대 사례라는 점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증권사들은 경쟁사와의 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경제적 한계를 이유로 퇴직연금 판매 경로를 넓히지 못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금융기관의 밥그릇 싸움이 커지고 있다"며 "같은 그룹 내 보험사나 은행이라 하더라도 퇴직연금 관련 협업을 제안하는 게 여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 협업하더라도 당장 퇴직연금 실적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애초에 자사 퇴직연금 적립금이 높은 편도 아니라서 타 금융기관과 협업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투자증권과 한화생명이 업무협약이 체결될 수 있었던 건 각 사가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홍보·판매 경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가 직접 증권사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을 기업에 추천하는 방식으로 협업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며 "퇴직연금 적립금의 측면에서 금융기관 간 연대는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도 "한화생명과 함께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것은 양사가 경쟁 구도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서로가 더 좋은 상품을 소개하면서 판매 활로를 개척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 퇴직연금이 금융기관의 새 먹거리가 부상한 점도 양사 협력에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약 190조원 규모였던 퇴직연금 시장은 작년 335조 9000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5년 새 2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게다가 디폴트옵션이 시행되면서 기존 은행과 보험사 비중이 높았던 퇴직연금 시장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디폴트옵션이란 퇴직연금(DC·IRP) 가입자가 일정기간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금융상품을 매수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한 운용 방법으로 자동 운용되는 제도다.
이전에는 금융소비자가 퇴직연금을 은행의 예금성 상품으로 운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디폴트옵션 시행으로 증권사 운용 상품으로까지 고객 선택의 폭이 넓어질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상품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판매 채널에 탑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라며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tpoems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