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PGA 투어와 LIV 골프의 전격 합병이 불러온 후폭풍이 거세다. PGA는 '골프의 세계적 통합'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허울뿐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PGA와 LIV 골프를 후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DP월드투어가 합의한 공동 선언문을 보면 PGA가 '오일머니'앞에 굴복한 게 잘 나타난다. 새로운 공동 소유 영리 법인의 구성 및 운영은 PGA가 중심이지만 PIF가 독점적 투자자가 된다. 제이 모너핸 PGA 커미셔너가 새 법인의 최고 경영자를 맡고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가 회장에 오른다. PIF가 사실상 PGA를 인수합병하는 셈이다. 세 단체가 진행중인 소송은 모두 취하한다. LIV골프에 가담한 선수들은 PGA와 DP월드투어 복귀가 가능해진다.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 [사진 = PGA] |
날벼락같은 전격 합병의 최대 피해자는 PGA 선수들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뿌리치고 전통을 존중하고 의리를 지킨 선수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PGA 지키기에 앞장섰던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조차 합병 소식을 미리 전해받지 못했다. 야후스포츠는 "우즈는 8억 달러(약 1조404억원)의 제안을 거부했다. 우즈에게는 그 돈이 없어도 그만이지만 리키 파울러는 7500만 달러(약 975억원)의 기회를 사양했다"고 전했다.
콜린 모리카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고 토로했다. 교포 마이클 김은 "선수 회동을 생중계하는 건 어때? 농담이지만 난 심각해"라는 글을 올렸다. 안병훈 역시 "PGA를 옹호했던 선수들은 패배자가 됐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PGA선수 출신 골프 애널리스트 브랜던 챔플리는 "골프 역사상 가장 슬픈 날. PGA투어는 골프의 미래를 팔았다"라고 한탄했다.
RBC 캐나다오픈(8일 개막)이 열리는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한 제이 모너핸 커미셔너는 PGA선수들로부터 '위선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시 PGA선수들의 반발이 격해서 그 자리에 있던 호주 출신 골퍼 제프 오길비는 "내가 모너핸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 역시 들고 일어났다. LIV 골프의 자금줄인 사우디가 9·11 테러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미국 내 LIV 골프 개최를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유족 연합 회장은 "모너핸 등 PGA 리더들은 자신들의 위선과 탐욕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PGA에게 배신당했다"면서 "우리에게 보인 그들의 관심은 단순히 돈을 추구하는 겉치레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모너핸은 "위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겠다. 과거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잘 안다"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큰 그림을 본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모너핸의 신뢰 추락과 함께 LIV 골프 출범을 이끌었던 CEO 그렉 노먼 위상도 떨어졌다. 미국 매체는 "이번 합병에서 노먼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LIV 골프 출범을 이끌었던 CEO 그렉 노먼. [사진 = 게티 이미지] |
전격 합병에 표정관리하거나 반색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액을 받고 LIV로 옮긴 선수들은 목돈 챙기고 PGA 복귀 길이 열려 최종 승자가 됐다.
2억 달러(약 260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가장 먼저 LIV로 간 필 미켈슨은 행복한 얼굴 이모티콘과 함께 '멋진 오늘 하루'라고 글을 남겼다. 원로 골퍼 잭 니클라우스는 "모너핸 커미셔너는 최고의 선수들이 한 무대에서 경기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나도 골프 발전에 유익하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골프의 멋진 세계를 위한 크고 아름답고 멋진 계약이다.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라고 반색했다. 그가 소유한 골프장에서 LIV 대회를 다시 개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 발표가 나온 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미국 언론 등 일각에선 '사우디의 정치적 승리'라는 분석을 제기한다. 미국과 사우디간 정치적 이해관계와 화해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정가에선 막대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가 스포츠를 통해 인권 침해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는 '스포츠 워싱'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사우디가 하나로 통일된 골프 왕국을 돈으로 사들였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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