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전국 경북

속보

더보기

울진 하당마을 옥분할매의 '화전놀이'의 기억

기사입력 : 2023년04월01일 13:54

최종수정 : 2023년04월01일 13:54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울진지방 노년의 여성들에게 해마다 새 봄이면 지천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며 산천을 발갛게 달구는 참꽃은 매우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참꽃은 여성 해방의 꽃이다. 무슨 거창한 말이냐 하겠지만 참꽃은 60년대를 어렵게 헤쳐 나온 여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계화영농법이 보급되기 이전, 60년~70년대 농법은 오로지 인력과 축력(소)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새봄이 오고 청명( 淸明) 무렵이면 농촌의 가계는 한 해 농사 준비로 부산해진다.

청명과 곡우를 전후 해 못자리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못자리내기는 한 해 농사를 가늠하는 소중한 일이었다.

특히 못자리를 준비하는 곡우를 기점으로 농촌사회는 한참도 쉴 새 없는 노동의 세계로 몰입한다.

바로 이 곡진한 노동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귀에 '삼월삼짇날'이 자리하고 있다. 농촌의 아낙들이 일 년 중 가장 학수고대하는 '화전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삼짇날을 앞두면 농촌마을의 갓 시집 온 새댁들의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이 무렵이면 '꽃놀이' 생각에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 날이면 지겹도록 만지던 솥뚜껑과 냄비 뚜껑은 고된 시집살이를 훌훌 털어내고 신명을 열어젖히는 훌륭한 악기로 변신한다.

처녀 적 숨 죽여 부르던 노래가락도 이 날이면 목청껏 부를 수 있었다.

발 밑에는 참꽃이 흐드러지고 봄 햇살이 잔잔하게 내려 앉는 산 속 맑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면 온 몸을 휘감던 시집살이는 어느새 시냇물을 따라 저만치 흘러간다.

솥뚜껑을 두드리고 냄비두껑을 두들기며 한바탕 신명나게 놀다가 너럭바위에 누워 세상모르게 단잠도 즐겼다.

◇ "'소두배(솥뚜껑)'에 참꽃 지짐 굽고... 다라이 두드리며 신명나는 화전놀이"

울진 산중 당거리 마을 옥분할매는 아흔의 나이를 넘긴 지금도 만산에 흐드러진 참꽃을 보면 마음이 울렁거린단다. 열아홉에 산중마을로 시집와서 동네 아낙들과 즐긴 '화전놀이' 기억 때문이다.

당거리 마을 아낙들은 화전놀이를 '산놀이' 혹은 '참꽃놀이'라고 불렀다.

옥분할매는 타고난 천성이 쾌활해 봄이 오면 동네 화전놀이를 주도했다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을 아낙들 사이에서 옥분할매는 '명가수' '큰 싱겁이'로 불렸다. 키가 큰 데다 우스개소리며 노래 가락을 잘하기로 평이 났기 때문이다.

당거리 마을 아낙들은 삼월삼짓날 무렵 옥분할매의 주동으로 화전놀이 날을 잡았다.

이 때 마을 아낙들끼리 준비물을 각각 분담했다.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마친 뒤 아낙들은 화전놀이를 가는 날 아침 일찍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시어른들과 식구들의 아침밥을 챙겨드리고 점심식사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안방 찬장에 차려놓았다.

당거리 마을 아낙들은 화전놀이 날이 잡히면 미리 시아버지께 "언제 화전놀이 가니더"라고 말씀을 드린다. 그러면 시아버지들은 "그래 잘 놀다 와라" 고 수락하신다. 이때부터 아낙들의 마음은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아낙들은 화전놀이 당일 날, 미리 역할 분담을 한 대로 쌀, 밀가루, 고추장, 간장, 등 먹을거리를 챙긴 뒤, '지짐(부침개,전)'을 구을 '소두배(솥두껑)'와 찌그러진 냄비 등을 챙긴다.

솥뚜껑은 참꽃지짐을 부칠 판이며, 냄비는 한바탕 노래를 부르며 두들길 악기인 셈이다.

화전놀이는 주로 마을에서 오리쯤 떨어진 구수골 용소바위에서 질펀하게 펼쳐졌다.

집 채 만한 편편한 너럭바위가 있고,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무엇보다도 양지녘이어서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었다.

용소바위에 다다르면 옥분할매가 먼저 '다리이(대야)'와 냄비를 두들기며 '칭칭이'를 간들어지게 뽑았다.

아낙들 중 식사 당번들은 소두배를 걸고 참꽃 지짐을 지지고, 또 한 패는 '반두(반대)'로 계곡물에 들어가 꺽지, 돌무지, 피라미, 버들피리 따위를 잡아 올렸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로 '어죽'을 끓였다. 어죽에는 깻잎과 고추장을 풀었다. 막걸리도 한 잔씩 걸쳤다. 취기가 오르면 옥분할매가 등에 수건을 말아 넣고 '곱새춤'을 추었다. 아낙들은 옥분할매의 곱새춤에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울진지방의 대표적 여성 대동놀이인 '달넘세'. 울진 해촌 여성들이 '울진대게와붉은대게축제'장에서 달넘세놀이를 시연하고 있다. 2023.04.01 nulcheon@newspim.com

질펀하게 노래판이 무르익으면 아낙들은 '수건돌리기'나 '강강술래', '동에따기' 같은 놀이를 펼쳤다.

옥분할매가 꽃다운 새댁 시절 화전놀이에서 불렀던 노래 한 소절을 부르신다. 아들 딸 모두 시집 장가 보내고 대학을 나온 손주가 증손주를 둔 할매이지만 여전히 초성이 좋다..

"눈날(알)이 사탕 먹을 적에는 단맛으로 먹구요/ 몽침게 찜질을 나갈 때는/ 하늘이 삥삥 돌더라/ 어랑 어랑 어야디야/ 요것도 내 사랑이로구나"

◇ '화전놀이'...전통사회 농촌 여성 고된 일상 풀어내는 신명

봄날 햇살은 연기처럼 왜 이다지도 빨리 흩어지는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산 비얄길을 내려오면서 아낙들은 못내 아쉬워 연신 참꽃 무리를 뒤 돌아 본다.

해거름이 깔리고 어둑어둑해서야 죽을힘을 다해 집으로 내달으면 벌써 시아버지는 긴 곰방대를 들고 뒷짐을 쥔 채 사립문 앞을 돌고 있다.

며눌아기의 발자욱 소리가 가까워지면 시아버지는 곰방대를 물고 '어흠 어흠' 헛기침을 놓는다.

시어머니의 지청구를 미리 막기위한 속내임을 며느리는 금세 알아 채리고 후다닥 정지 칸으로 들어선다.

"청명무렵 농새일 시작되기 전에 '산놀이', '꽃놀이' 나가는데, 얼매나 좋아요. 해 지고 조금 늦게 들어가면 시아버지고 영감이고 얼매나 난리를 친다고. 보따리고 솥이고 뭐고 마당에다 다 팽개쳐버린다고.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지요. 시아버지가 며느리한테 야단은 몬 치고 아들래미한테 호랑이 맨쿠로 담뱃대를 두들기며 그래 뭐라 한다꼬. 그래 놓으면 아들래미(신랑)가 바짝 약이 올라가지고 보따리 집어다 내팽개치고 길길이 날뛰는데. 그래도 그 때가 제일 신나고 재밌었지요."

옥분할매가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시어머니의 곱지 않은 눈길을 피해 준비해 온 '솥뚜껑'에 밀가루 반죽을 올리고 지천으로 피어나는 참꽃이파리를 뜯어 노릿노릿하게 부쳐 낸 '참꽃지지미'를 놓고 한바탕 펼치는 춤판은 고된 시집살이와 힘든 농촌의 노동을 일거에 날려 보내는, '일상의 해방이자 삶의 재충전'이었다.

진달래가 붉은 꽃망울을 구름처럼 피워내는 산 계곡 너른 바위에 솥을 걸고, 아낙들은 냄비뚜껑과 양재기를 두들기며 시집살이와 노동의 껍질을 훌훌 벗어던졌다.

이들이 은밀하게, 그러나 신명으로 풀어내는 '화전놀이'는 울진지방 농촌사회의 소중한 여성 민속으로 남아있다.

nulcheon@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단독] 日 여행객 'K-쌀' 사간다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일본 여행객이 한국을 방문, 한국 쌀을 직접 구매해 들고 나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내 쌀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밥맛 좋은 한국 쌀'이 대체제로 급부상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3일 <뉴스핌>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 동안 일본 여행객이 한국에서 직접 구매해 일본으로 들고 간 국산 쌀은 3만3694kg로 집계됐다. 일본은 지난 2018년부터 휴대식물 반출 시 수출국 검역증을 의무화한 나라로, 병해충과 기생식물 등 식물위생 문제에 매우 엄격하다. 특히 쌀처럼 가공되지 않은 곡류는 검역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객들의 한국산 쌀 열풍은 지속됐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일본 여행객이 반출한 국산 쌀은 1310kg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25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2024년 1~6월)으로 비교하면 작년 106kg에서 올해 3만3694kg로 약 318배 증가한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여행객들의 '쌀 쇼핑'이 열풍을 불면서 관련 문의가 급증했다"며 "한국쌀이 일본쌀에 비해 맛과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반출되는 양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을 화물로 탁송하는 사례도 동반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화물검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된 국산 쌀은 43만1020kg에 달한다. 지난해 화물 검역 실적이 1.2kg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폭증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흐름이 국산 쌀에 대한 일시적 특수로 끝나지 않고 국내에서 정체된 쌀 소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쌀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으니 한국에 와서라도 쌀을 구매하는 여행객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다만 일본의 쌀 관세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 쌀의 가격만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국산 쌀의 품질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합격점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종도=뉴스핌] 윤창빈 기자 =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중국발 여행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2023.03.11 pangbin@newspim.com 정부 역시 이같은 수요에 대응해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검역제도 안내·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는 농림축산검역본부를 통한 사전신청, 수출검역, 식물검역증 발급, 일본 통관까지 최소 3단계 이상이 요구된다. 다만 한국 쌀을 일본으로 반출할 때 한국에서 식물검역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일본 관광객이 일본에 돌아가 쌀을 폐기하는 일이 생기면서 홍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오사카 엑스포 현장 방문을 계기로 일본 농림수산성과 예방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쌀 검역 문제가 논의됐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 여행객이 애써 한국 쌀을 구매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폐기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 홍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plum@newspim.com 2025-07-03 11:10
사진
내란특검, 尹재판 증인 72명 신청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사건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증인 72명을 추가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3일 내란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의 9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 [사진=뉴스핌DB] 특검 측은 앞서 1차로 38명의 증인을 신청한 데 이어 이날 재판부에 증인 72명을 추가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10일 열릴 10차 공판에서는 이날 증인신문을 마치지 못한 고 전 처장에 이어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준장), 김영권 방첩사 방첩부대장(대령)을 불러 신문할 예정이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선관위 전산실 통제와 서버 확보를 지시받은 인물이며 김 부대장은 비상계엄 당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을 당시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은 조은석 특검이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절차가 위법해 무효라고 주장했으나, 특검은 "법과 상식에 비춰봤을 때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sykim@newspim.com 2025-07-03 20:47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