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복지법 시행·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10주년
'예술활동증명제도' 법적 보호 대상에 예술인 포함
예술인 정의 자체가 모순…사회적 합의에 따라 바뀌어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 프로그램을 신청한 예술인이 자신의 자녀에게 '융자받은 돈 꼭 갚아라, 잘 쓰고 갚아야 다음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한 미담이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예술인 복지 사업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2012년 11월19일~) 설립 10주년을 맞아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영정(61)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최근 반가운 일이 있었다며 이 일화를 전했다.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예술인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 중 하나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융자 제도를 잘 활용한 어느 예술인의 이야기였다. 박 대표는 "재단에서도 이 사업을 키워나가고 발전시키고 싶다"며 "재단도 이 사업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예술인들과 함께 가면 좋을 것"이라며 기대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올해는 예술인복지법 시행(2012년 11월18일) 10주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설립 10주년이 된 해다. 복지법과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재단은 백서발간과 오는 23일 서울 중구 JCC 크리에이티브센터 3층 오디토리움에서 '예술인복지정책 10년, 성찰과 전망-달라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박 대표는 "10년 성과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과제를 도출한 부분도 있다"며 "10년의 성과와 과제, 전망을 다뤄보기 위해 포럼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재단의 10년 성과라고 하면 단연코 '예술활동증명'이다. 예술 활동을 통한 소득을 인정받은 예술인들이 융자, 보험, 창작활동 지원 등의 복지 제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내 예술활동증명 제도 신청자가 올해로 15만 명에 이른다. 박영정 대표는 "예술활동증명이라는 나름의 제도를 만들고 그에 따라 한국에서 직업적으로 예술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규모가 적어도 15만 명이 된다는 구체적인 규모를 확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술활동증명 제도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죠. 최근 3년간 코로나19로 예술인들의 활동이 축소되면서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예술인을 대상으로 1000억원의 생활지원금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예술활동증명' 신청이 된 예술인으로 한정됐죠. 예술활동증명제가 없었다면, 지원이 필요한 예술인을 선정하는 기준이 없어 그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을 겁니다. 예술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술을 업으로 삼는 예술인은 '예술인복지법'에 준하는 복지의 대상이 됐습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예술활동증명제도가 크게 주목받은 시점은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다. 2019년 이전만 해도 예술가들에게 복지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코로나19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행사가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이에 올해만 7만명의 예술가가 예술활동증명제를 신청했다.
재단의 인력은 그대로인데 예술활동증명제도의 신청 수요가 폭발한 거다. 이에 예술활동증명 신청이 완료되는데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가 돼 민원도 적지 않았다. 예술인복지재단 전체 인원은 정규직은 43명, 예술활동증명제 관련 담당 업무자는 7명 정도다. 올해 1000억원 추경 예산이 투입돼 더 많은 혜택이 예술인에게 지원됐으나 밀려오는 7만건 이상의 민원 신청 처리는 과포화 상태다. 앞서 김예지 의원도 재단의 인력 부족과 직원 처우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도 있다. 박 대표는 "우리 재단의 가장 큰 이슈이자 고정적인 문제가 '예술활동증명을 빨리 처리해달라'는 것"이라며 "코로나 이후 수요가 급증했다. 추후에 처리 문제가 신속히 해결되도록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 '예술인복지법' 초석 다진 박영정 대표…예술인 정의·규모 파악 강조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박영정 대표는 10년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과정에 참여했고, '예술인복지법'의 모태가 된 '예술인 정책 체계화 방안 연구'(2006)를 발표한 주인공이다. 2006년 만해도 예술인을 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었던 박영정 대표는 기획 연구를 통해 예술인의 정의를 내리고 규모를 파악해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논문은 현재 시행 중인 '예술인복지법'의 기반을 다지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2006년 연구의 핵심은 '예술인'이란 단어를 주목시키고 국가 정책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예술 생산자에 주목하고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엿한 직업군으로 생활과 활동을 갖춰갈 수 있도록 정책 모델을 구상한 것이죠. 예술인 정책이란 단어를 만들고 예술인의 범위를 두는 것에 골몰했어요. 그리고 법이 만들어졌죠. 모든 법의 1조는 법의 목적, 2조는 정의 조항을 포함합니다. 법을 통해 예술인을 정의하고 복지 대상으로서의 예술인을 확정한 것이죠. 법적으로 복지 대상이 되는 예술인은 예술 활동으로 인한 소득이 있고 전시 등 작품 행사 참여 이력입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다른 직업 활동도 가능합니다. 법적으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인의 범위는 농업인 정의를 참고했습니다. 농업인은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할 수 있어요. 경작면적기준을 충족하고 경작일수가 90일 이상, 농업 수입이 120만원 이상을 충족하면 도시에서 가게를 운영해도 농업인으로서 자격 기준이 생깁니다. 그리고 출퇴근이 없다는 것도 프리랜서 형태인 예술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고요."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예술인들이 법적 권리 대상으로 인식되는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1972년에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돼 문화예술 분야의 창작 지원이 이뤄졌고 1980년대부터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이 예술계 내부에서 제기됐다.그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인 권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참여정부(2003~2008년) 당시 국정과제로 예술인 정책이 만들어졌고 이창동 문체부 장관 시절 '국가문화비전' 기획팀으로 박영정 대표가 당시 실무진으로 참여했다. 2003년 당시 구본주 조각가가 37세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됐는데 유족이 보험회사에 손해배상 항소를 제기하면서 예술가란 직업의 사회적 인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보험사는 구 작가의 보험금 산정 기준을 '일용 노동직'에 맞췄다. 이즈음 정부의 중요 과제 중 하나로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국가가 챙겨야 한다는 내용이 다뤄졌고 2004년에 선포됐다.
이후 MB정부(2008~2013년)에서는 전 정부의 국정 과제를 검토하고 문화예술인 공제회를 설립 추진과 연구도 진행했지만, 공제회 설립은 무산됐다. 그러던 중 2011년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생활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다.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현재는 예술인도 산재보험, 생활안정자금, 의료비 지원, 고용 보험 등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 혜택받을 수 있는 법적 대상에 포함됐다.
◆ "예술인 스스로 권리 강화"…공공시스템과 함께 나아가야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박 대표는 "2015년 즈음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될 거라 생각했는데 최고은 작가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법 제정이 빨리 진행됐다. 그리고 예술인 복지는 빠르게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고, 이제 제도적인 문제는 많이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어 " 예술인 복지가 지속되려면 예술인 집단 내부의 자율적인 운영과 공공자원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졌지만 무엇보다 예술인의 '권리'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021년 제정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탄생했지만, 무엇보다 예술계 내부에서 예술인들의 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거듭했다.
"정책에 빠르고 늦는 것이 없다곤 하지만, 국내 예술인복지법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요. 외국에서는 민간에서 이뤄질 복지 문제가 국내서는 공공자원으로 예술인 복지 자금이 투입됐는데, 취약한 예술생태계를 생각하면 필요하고 다행스러운 구조지만, 예술가나 예술계 종사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권리 의식, 자율적인 역량이 함께 가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힘듭니다.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표준계약서'에 따라 일을 했다고 한 것처럼 영화계에서는 이미 예술가의 권리 보장을 위한 운동과 혁신이 내부적으로 활발했습니다. 장기적인 각도에서 볼 때는 공공자원과 예술계 내부의 자율적인 흐름의 접점을 이루는 것이 지속 가능한 예술인 복지 정책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점이 큰 숙제입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7 kilroy023@newspim.com |
최근 예술인의 범위에 게임 분야도 포함됐다. 게임에 관련한 그래픽 디자이너, 스토리텔러, 사운드 디렉터 등이 예술가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박 대표는 시대에 따라 '예술가'의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인을 스포츠 선수와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예술가의 기준이 될만한 공표 활동은 저작권에 따른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라고 했다.
"예술활동증명 자체도 모든 예술인을 포함하는게 아니라 직업 예술인을 지원하는 겁니다. 예술 자체는 자율적인 영역이고 활동방식도 형태도 다양하죠. 그래서 제도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겁니다. 스포츠 선수와 비교해 예술인의 개념을 따져봤는데 스포츠는 반드시 공개적인 대회에 나가야하고, 프로든 아마추어든 게임의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수 등록제로 운영되고요. 하지만 예술인은 그렇지 않죠. 예술인은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것은 제도적인 것과 포섭할 수 없죠. 그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범주가 변화하는 거예요. 사실 예술인을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죠. 법적 예술인의 경우 저작권법과 같은 원리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농업인과 같은 원리를 준용해서 기준이 될만한 공표된 활동을 보는 것이죠. 게임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도 사회적 합의가 됐기 때문이에요. 올해 내에는 게임계의 예술가에 대한 정리가 될 예정입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