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바이오벤처, 대규모 자금 투입 임상시험 중단·연기
"특정한 수익모델 없어 소수 파이프라인에 집중하는 것"
"산업계 의견 담은 정부 차원 메가펀드 조성도 절실"
벤처 업계가 극심한 한파를 겪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사업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업계 전반으로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악재가 계속되면서 통상 창업 3~5년차에 찾아온다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 도래 시점도 짧아지고 있다. 닷페이스·라이픽·유저해빗 등의 유명 스타트업이 올해 폐업을 결정한데 이어 '부릉'의 운영사 메쉬코리아도 결국 이달 초 경영권 매각을 택했다. 뉴스핌은 한국의 신성장 엔진인 스타트업 업계의 위기와 대안을 살펴봤다.
[서울=뉴스핌] 이지민 기자 = 바이오벤처들이 투자 시장 위축으로 인한 자금 조달 지연으로 임상 계획 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과 바이오벤처 차원에서 스폰서 또는 협력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생사기로 벤처] 글싣는 순서
1. 빨리 찾아온 '죽음의 계곡'...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스타트업들
2. '증시→IPO→벤처'...도미노식 돈줄경색 심각
3. 자금난에 '임상 보류'...바이오, 성장 동력 타격
4. 위축된 벤처 투자 생존법…인센티브·해외 자금 유입 '방점'
5. '유동성 공급', 기업구조혁신펀드 지원에 그쳐
6.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 "규제완화·해외진출 정부 지원 절실"
◆ "현금이 안 돈다"...임상 철회·지연 나선 바이오벤처
1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다수의 바이오벤처들이 대규모 자금 투입하는 임상시험을 중단하거나 연기했다.
바이오벤처 중 하나인 메드팩토는 지난 5월 데스모이도 종양 임상 2상을 자진철회했다. 해당 임상은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2상을 승인받은 바 있다.
제넥신도 개발 중이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GX-19N'의 2·3상 임상시험을 자진 철회했고, 크리스탈지노믹스 역시 자체 개발한 물질 '아이발티노스타트'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2상 시험 계획을 자진 취하했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18세 이상 미접종자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노바백스 백신 접종이 시작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보건소에서 기저질환을 가진 한 시민이 노바백스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2022.02.14 kimkim@newspim.com |
이외에도 다수의 바이오벤처들이 '경영상의 판단'을 주된 이유로 임상 계획 수정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투자 상황과 재정 상태가 이들의 임상시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벤처들의 재정난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해 금리가 올라 바이오벤처 투자비용이 감소하는 건 일반적인 수순이다.
특히나 바이오 기업 특성상 상장기업보단 비상장 기업 비율이 높다. 때문에 자산가치가 낮아 파이프라인 하나를 가지고 임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투자 시장에서 현금이 돌지 않아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임상시험에 나서고, 이를 발판으로 상장에 야심차게 도전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면 요즘엔 임상비용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형국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현금 지출을 최소화하는 게 포인트이기 때문에 현금 지출과 파이프라인 개발 사이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고민이 깊다"고 설명했다.
◆ 파이프라인 다이어트 불가피..."업계 옥석가리기 계기될 듯"
[뉴스핌=김아랑 미술기자] |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전보다 더 많은 파이프라인들이 후보 물질 단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벤처들이 특정한 수익모델이 있는 게 아니라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밸류업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는 게 전략인데 지금은 전 세계가 다 어렵고 우리나라도 그 틀로 같이 가는 것 같다"며 "각 회사별로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축소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벤처들이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글로벌 스폰서를 찾고 제약회사와의 협업을 도모하는 것도 방법이며, 정부의 지원 역시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여러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력있는 글로벌 스폰서를 찾거나 국내 제약사들과 함께 임상을 진행하는 방법이 현재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정부에서 메가펀드를 만들어 글로벌 임상을 지원할 때 산업계 의견과 지금 상황을 여실히 반영해 전략적인 메가펀드를 만들어 바이오벤처들의 글로벌 임상 지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시장은 정부의 정책에 반응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좀 더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해 치밀하고 디테일한 전략들을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이어 "사업은 항상 사이클을 타게 돼 있고 지금은 좋지 않을 시기일 뿐"이라며 "길게 보면 지금은 (바이오벤처들이)위기 관리부터 전략적인 부분까지 다시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번 자금난을 계기로 업계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적 한도 내에서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바이오벤처들이 이런 시기를 거치며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다시 투자금 들어오고 현금이 유동되면 정말 가능성있는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던 기업들과 언론 홍보 등으로 가치를 띄우던 회사들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catchm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