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서 시공사 이주비 대출 법으로 금지
이주비대출 부담 커져…"정비사업 주택공급 차질"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에 '암초'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에 육박할 정도로 오른데다 정부가 시공사들의 이주비 대출을 법적으로 금지해 조합원들이 저금리에 대출받기 어려워졌다.
조합원들은 금융회사로부터 고금리에 이주비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높은 이자를 내기 어려울 경우 그만큼 이주에 시간이 걸린다. 조합원들 이주가 지연되면 일반분양을 통한 주택공급도 늦어진다. 게다가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건설사들의 공사비 부담도 높아져 주택공급이 전반적으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국토부, 재건축·재개발서 시공사 이주비 대출 법으로 금지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시공사의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을 법적으로 금지한데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치솟고 있어 서울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근간 법령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지난 10일 일부 개정됐다. 개정된 도정법 제132조 제2항에 따르면 건설업자와 등록사업자는 계약 체결과 관련해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으로서 다음에 해당하는 사항을 제안하면 안 된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32조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2022.06.16 sungsoo@newspim.com |
제안하면 안 되는 것은 ▲이사비, 이주비, 이주촉진비, 그 밖에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재건축부담금의 대납 등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을 위반하는 방법으로 정비사업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다.
국토부는 현재 도정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안을 준비하고 있다. 신설된 제132조 제2항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세부적인 금지 행위는 관계 기관과 업계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 시행 시점은 6개월 후인 오는 12월 10일이다.
조합원이 법 개정으로 이주비 대출을 시공사로부터 받지 못하면 금융회사로부터 받아야 한다. 금융회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역의 종전자산평가와 종후자산평가를 보고 그에 따라 이주비 대출을 해줄 수 있다. 입주권이 있는 '토지담보대출'인 셈이다.
◆ 주담대 금리 7%대로 '점프'…조합원들 이주비대출 부담 커져
문제는 이로 인해 조합원들의 이주비 대출 부담이 이전보다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국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치솟고 있어서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국고채 5년물 금리가 연 3.703%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번주 금리를 1.50~1.75% 수준으로 대폭 올린 것이 시장에 반영돼서다. 연준의 금리인상 폭은 75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포인트)로, 지난 28년 만에 최대폭이다.
시중은행들은 금융채 5년물 금리 변동을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에 반영한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시중금리도 연 7%에 육박한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비대면 주담대 상품인 '우리WON주택대출' 5년 고정형 최고금리는 연 7.08~7.10%로 전해졌다.
과거에는 시공사들이 보증을 서서 조합원들이 저금리에 이주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도정법 개정으로 조합원들이 시공사로부터 이주비 대출을 못 받게 되면 금융회사로부터 높은 금리에 대출을 받아야 한다. 서울 주요 재건축 아파트들은 대부분 시세가 15억원보다 높아서 조합원들이 개별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
금융회사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의 종전·종후자산평가를 보고 이주비 대출을 해줄 수 있지만 이 작업을 하려면 감정평가를 거쳐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조합원들이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그만큼 이주에 시간이 걸린다.
조합이 사업비를 마련할 재원은 일반분양밖에 없는데 일반분양은 이주가 마무리돼야 진행할 수 있다. 이주비 대출이 원활하지 않아서 조합원들 이주가 지연되면 일반분양을 비롯한 주택공급 진행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지게 된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김성수 기자] 2022.04.05 sungsoo@newspim.com |
◆ 자재비 인상에 공사비도 '껑충'…"정비사업 주택공급 차질"
게다가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건설사들의 공사비 부담도 높아져 주택공급이 더욱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 들어 철근, 레미콘, 시멘트 등 주요 건설자재들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철근·레미콘은 단일 재료비 기준 매출 대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자재다. 레미콘의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은 지난해 6월 이후 약 47%(시멘트 업체 고시가격 제시안 기준) 올랐다. 철근 역시 지난해 초 대비 약 47% 올랐다.
주택공급을 위한 건설원가 자체가 크게 올라버린 것이다. 건설원가 중 직접공사비의 구성항목은 자재비, 노무비, 외주비, 경비 등이다. 여기에 간접공사비, 일반관리비, 이윤 등을 합하면 견적가액(도급금액)이 나온다. 원가가 오른 탓에 전국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는 '공사비 인상'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250만가구 중에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비중이 적지 않다. 택지유형별로 나누면 ▲공공택지 142만가구(56.8%) ▲재건축·재개발 47만가구(18.8%) ▲도심·역세권 복합개발 20만가구(8.0%) ▲국공유지 및 차량기지 복합개발 18만가구(7.2%) ▲기타 13만가구(5.2%) ▲소규모 정비사업 10만가구(4.0%)로 이뤄진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2022.03.10 sungsoo@newspim.com |
금리 상승, 이주비 대출 지연, 공사비 인상 등으로 정비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 윤석열 정부의 주택공급 목표 달성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남 주요 재건축 아파트의 한 조합원들은 "이주비 대출을 못 받으면 조합원들은 어디서 살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시세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허가해주거나, 이주비 대출을 실행해주거나 둘 중 하나는 해줘야 한다"고 촉구한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원들은 대출금리가 올라서 이주비 대출 부담이 커지고, 건설사들은 원자재가격이 올라 시공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요소들이 쌓여서 정비사업에 여러 모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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