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이란 연이은 악재를 만난 탓이다.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회복되는 상황과 반대로 생산 차질에 따른 신차 출고 지연이 발생하고, 이는 자동차 가격이 상승하는 일명 '카플레이션'(car+inflation)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자동차 시장 현황과 전망을 담아 총 4편의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신차 출고 지연 및 가격 상승은 상대적으로 중고차 시장에 활기를 가져왔다. 여기에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허위 매물 등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 병폐를 없애고 양질의 중고차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카플레이션으로 신차뿐만 아니라 중고차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향후 중고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2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중고차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중고차 시장 진출에는 현대차·기아가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28일 중기부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 의결에 따라 현대차·기아는 내년 5월부터 본격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 투명성·신뢰도 제고 기대되는데…중고차도 카플레이션
현대차와 기아는 이미 지난 1월 각각 경기 용인시와 전북 정읍시에 자동차 매매업 등록을 신청했다. 중고차 사업 방향도 공개했다. 인증중고차 중 5년·10만㎞ 미만의 차량을 제한적으로 거래한다고 밝혔다. 특히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을 위해 2024년까지 현대차는 5.1%, 기아는 3.7%까지 시장점유율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중고차매매단지의 모습. [사진=뉴스핌DB] |
업계 안팎에서도 완성차업체들이 인증중고차만 취급하고 시장점유율을 제한할 경우 실제 영향력이 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현재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중고차 시장 개방 시 2026년 현대차·기아와 한국지엠·쌍용차·르노코리아 등 국내 5사의 시장 점유율이 최소 7.5%~최대 12.9%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업체들도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 전반의 확대에 따른 먹거리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롯데렌탈은 올 하반기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하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렌터카 업계 1위인 롯데렌탈의 강점은 중고차 경매장 롯데오토옥션을 통한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있다는 것이다.
엔카닷컴은 비대면 구매 서비스인 홈서비스나 비교견적 서비스인 내차팔기 등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고객 신뢰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수익을 다각화하겠다는 목표다. 케이카는 기존 사업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한편, 온라인 지배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내차사기 홈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등 온라인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와 협업도 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중고차 시장 개방으로 허위·미끼 매물과 과도한 수수료 등 고질적 병폐를 없애고, 시장 전반의 신뢰도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소비자 선택권 확대는 물론이고, 시장 투명성 제고 및 잔존가치 평가 체계화 등을 통해 시장 전반에 걸친 신뢰도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아울러 중고차가 상품화 과정을 거치면서 부품 산업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 신차보다 비싼 가격 거래도…"향후 중고차 시장 구분될 것"
문제는 가격 인상 여부다. 최근 들어 카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중고차 가격도 급등하는 추세다. 일부 2019년, 2020년식 인기 차량들은 오히려 가격이 오르면서 4월 시세가 지난해 4월보다 높게 형성돼있다.
엔카닷컴에 따르면 2020년식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W213 E250 아방가르드는 5136만원에서 5261만원으로 100만원 이상 올랐다. 아우디 A6(C8) 40 TDI도 4487만원에서 4563만원으로 100만원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4월 4275만원이던 2019년식 BMW 5시리즈(G30) 520i 럭셔리는 현재 4303만원까지 상승했다.
특히 인기 SUV·전기차의 경우 중고차가 신차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배터리가 핵심인 전기차의 생산 차질에 따른 카플레이션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생산비용의 약 80%가 원자재다.
마포구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 모습. [사진=마포구] |
테슬라 모델Y는 8000만~9000만원의 가격으로 중고차 매물이 올라오고 있다. 모델Y 롱레인지 신차는 4월 기준 8649만원이다. 케이카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5 4월 시세는 3월에 비해 1.0% 오른 5006만원이다. 지난 1월 4706만원에 비해서는 무려 300만원이 올랐다. 아이오닉5 롱레인지 신차는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4000만원대 후반에 구매할 수 있다.
차를 사고 싶어도 없어서 사지 못하는 이들까지 겹치면서 일부 인기 차량의 경우 구매가격에 웃돈을 얹어서 판매하는 중고차 재테크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대기업이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경우 중고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신차 출고 지연으로 현재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대기업 진출 이후에는 지금이 좋았던 시기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섣부른 예측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글로벌 이슈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 등 중고차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 책임연구원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고차는 신차 가격을 뛰어넘는 현상이 발생하는 반면, 오래된 중고차는 가격이 아주 많이 오르지는 않고 있다"며 "중고차의 물량이라는게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격이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오히려 가격 정상화를 촉진하는 쪽이 맞지 않을까 한다. 현대차가 중고차 진출한 것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도 있지만 사실 브랜드 이미지 제고 측면이 강하다"며 "향후 중고차 시장은 구분될 것 같다. 돈을 더 주더라도 리스크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기업 인증중고차로, 가격이 싼 차를 찾는 사람들은 대기업과 관련 없는 중고차 딜러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jun89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