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7일부터 철거 개시·복구 돌입...주민, 빠르게 일상 회복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9박10일간 확산되면서 역대 최장 연소 기록을 남긴 '울진산불'이 발생한지 37일만인 10일, 예기치도 못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키면서 잿더미로 변한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마을'에 굴삭기와 집게차 등 중장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장비들이 화마에 흡사 종이상자처럼 구겨져 흉측한 몰골의 숯덩이로 남겨진 삶의 보금자리를 무너뜨리자 새카만 분진이 하늘로 솟는다. 금새 마을이 매캐한 탄 냄새로 뒤덮힌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역대 최장연소의 기록을 남긴 '울진산불' 화마가 남긴 생채기를 걷고 다시 일어서는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마을'에서 울진군과 피해주민들이 10일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2022.04.10 nulcheon@newspim.com |
산불 발생 당시 맨 몸으로 대피해 낯 선 임시거주시설에서 뜬 눈으로 지새다가 울진군과 경북도가 서둘러 조성한 임시주택으로 돌아 온 피해주민들이 철거되는 집을 바라보고 있다.
팔순의 고령의 할머니들 서넛이 새로 조성한 임시주택 한 켠에서 보행기를 잡고 새카만 분진을 일으키며 철거되는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울진산불' 화마를 피해 맨 몸으로 대피했다가 26일만에 마을의 임시주택으로 돌아 온 화동마을 이재민들이 잿더미로 변한 집을 철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2022.04.10 nulcheon@newspim.com |
"조상대대로 물려받아 조상 모시면서 자식을 키우던 집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 이렇게 중장비로 끌어내니 마음이 짠하니더."
엄섭 할머니(여, 83, 신화2리)가 연신 눈가를 훔친다.
"열여덟에 화동마을로 시집와 시부모들을 모시며 자식들을 키우던 집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잖니껴. 기자님 이런 모습 많이 찍어서 내중에 꼭 보내주시소."
화동마을 노인회장을 맡아 산불이 마을을 덮친 이후 이웃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챙기며 잠 한 숨 제대로 못이룬다는 주미자 할머니(여, 78)가 코로나19 방역마스크를 내리며 눈물을 훔친다.
한 할머니는 집이 철거되는 내내 눈길을 떼지 못한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산불로 잿더미로 변한 집이 마지막 철거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던 엄섭 할머니가 보행기에 그물망을 가득싣고 밭으로 향하고 있다. 2022.04.10 nulcheon@newspim.com |
엄섭할머니가 보행기에 망(網)을 한 가득 싣고 철거가 한창인 마을 고샅길을 따라 나선다.
"이제 내 살던 집이 철거되는 모습을 봤으니께 밭에 나가 양대도 심고, 망도 치고, 먹고 살아야되잖니껴. 그래도 울진군과 나라에서 이래 빨리 내 살던 마을에 임시주택을 지어주니 참말로 고맙니더."
엄섭 할머니 곁에 막내아들이 함께 따라나선다. 직장생활을 하는 막내아들은 휴일에 잠시 쉴 틈도 없이 고향으로 달려와 화마에 앗긴 아픈 생채기를 딛고 다시 밭으로 나가는 노모를 돕는다.
마을 고샅길을 지나 밭으로 가는 언덕에서 서서 엄섭할머니는 새카맣게 잿더미로 변해버린 마을을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용케도 화마를 피해 연분홍 속살을 연 돌복상나무가 불어오는 바람에 꽃이파리를 날린다.
엄섭할머니네 밭이 있는 구싯골로 가는 길을 덮던 울창했던 송림은 선 채로 숯덩이가 된 채 위태롭게 서 있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역대 최장 연소의 아픈 기록을 남긴 '울진산불' 잿더미를 뚫고 농촌마을을 지켜 온 어머니들의 속내를 닮은 현호색이 새 희망을 일구듯 남빛 속살을 열고 있다.2022.04.10 nulcheon@newspim.com |
엄섭 할머니가 끌고가던 보행기를 멈추고 새캐만 숯덩이로 변한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 둔덕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새색시때 여기에 참꽃이 참 흐드러지게 폈니더. 농새일을 앞두고 참꽃이 피면 동네 새각시들이 모여 저기 저 '거랑(개울)' 가에서 '지지미(부침)'부쳐먹고 솥단지 두들기며 노래부르고, '꽃놀이(화전놀이)'도 하고..."
엄섭 할머니가 앉은 자리 곁 화마가 할퀴고 간 새카만 숯덩이 위에서 현호색이 남색 꽃봉오리를 열고 있다.
새 희망을 일구듯 남빛 속살을 여는 현호색의 꽃봉오리가 평생 농촌과 자식을 지키며 거두어 온 우리네 어머니의 속내를 닮았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그래도 살아야되잖니껴. 농새철인데 때맞춰 종자를 심거야 조상 제사도 모시고, 객지나간 자식새끼들 철마다 나는 곡식도 노놔주고. 그래 마을로 돌아온 다음날부터 밭에나가 일하니더." 엄섭할머니가 고라니 방어 그물망을 치며 환하게 웃는다.2022.04.10 nulcheon@newspim.com |
"산불이 나던 날 허겁지겁 맨 몸으로 쫒겨 임시거주시설에서 뜬 눈으로 지새다가 26일만에 울진군에서 마을에 지어준 임시주택에 들와 잿더미로 변한 집과 마을을 보니까 눈물밖에 안나디더. 그래도 살아야되잖니껴. 농새철인데 때맞춰 종자를 심거야 조상 제사도 모시고, 객지나간 자식새끼들 철마다 나는 곡식도 노놔주고. 그래 마을로 돌아온 다음날부터 밭에나가 일하니더."
엄섭할머니와 막내아들이 준비해 온 그물망을 익숙한 솜씨로 둘러친다.
"산불로 동네에 그 많던 대나무도 전부 타버려 며칠전 울진장에 가서 지줏대를 새로 사왔니더. 새집 짓고 살라면 열심히 해야지요. 자식들이 돈을 모아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하니께 뭐던 열심히 해서 다시 잘살아야지요."
엄섭할머니가 그물망을 지줏대로 단단히 옭아 매며 환하게 웃는다.
"산불에 쫒겨 덕구호텔에 임시로 살 때는 잠 한 숨도 못잤는데, 스물엿새만에 마을에 만든 임시주택에 들어오니까, 내 살던 집만큼은 못해도 그래도 두 발뻗고 잤니더."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엄섭할머니네 밭과 나란히 붙은 밭에서 도라지를 심던 심분섭 할머니가 "산불로 쫒겨같던 이웃들이 다시 마을로 들어온게 제일 좋니더"하며 활짝 웃는다. 2022.04.10 nulcheon@newspim.com |
"평생 이웃끼리 도와가며 살던 이웃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오니 이제 살 것같니더."
엄섭할머니 밭과 둔덕을 나란히 한 이웃 밭에서 도라지를 심던 심분섭 할머니가 '마을사람들이 다시 돌아온게 젤루 좋다"며 활짝 웃는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울진산불'로 잿더미로 변한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마을'에 빠르게 조성된 임시주택의 한 켠에 세간살이가 하나 둘 갖춰지면서 주민들이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2022.04.10 nulcheon@newspim.com |
마을전체가 잿더미로 변한 화동마을은 지난 7일부터 복구를 위한 철거에 들어갔다.
'화동마을'은 산불에 쫒겨 낯 선 임시거주시설에서 마을에 조성된 임시주택으로 돌아 온 지난 달 29일 다음 날에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지킴이인 성황제사와 지신고사를 지냈다.
임시주택 한 켠에는 화마를 용케 견뎌낸 장독들이 가지런하게 자리잡고 바깥 화덕도 새로 마련하는 등 세간살이가 하나 둘 갖춰지면서 주민들도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이다.
전호동 화동마을 이장은 "이번 산불로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살 길이 막막하지만 다시 마을을 꾸리고 주민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울진군과 군민들의 노력을 모아 마을을 다시 일으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신의 일처럼 마음과 정성을 모아 준 군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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