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여가부 폐지'를 재고해달란 부탁에 "후보 공약 사항"이라며 에둘러 거절했다. 당장 여가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책이 부처가 폐지될 경우 어떻게 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이용수 할머니 부탁에 이준석 대표 "공약 변화 없어"…장혜영 의원 비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4) 할머니가 10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면서 해당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할머니는 이 대표를 만나 국회 차원의 '위안부 문제' 유엔 고문방지협약 회부 촉구 결의안 통과를 요청한 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며 "여가부 폐지하는 것, 그것(여가부)을 없앴으면 우리는 죽었다"고 공약 재고를 부탁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2022.02.10 leehs@newspim.com |
이 대표는 "공약이 나와서 대선 후보가 그렇게 정했다"며 '여가부 폐지'가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라고 설명하며 에둘러 거절했다. 이 할머니가 재차 "여가부 없으면 저희가 죽었다"고 부탁하자 이 대표는 "저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큰 예산과 더 큰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그는 여가부 폐지 반대 입장을 밝힌 이용수 할머니 의견에 대해 "그 부분은 공약화한 사안이고, 세밀한 검토를 해서 한 것이라 입장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못박았다.
다만 "할머니 말씀은 여가부에서 수행하던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 등이 전혀 차질 없기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실제로 위안부 문제 관련해서 저희가 개편하는 정부조직법 체계 하에서는 실무적이고 강한 협상력을 가진 부처들이 이 일을 맡아 처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등 부처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주인처럼 나서달라고도 언급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대표발의 의원으로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1.05 kilroy023@newspim.com |
이를 두고 장혜영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약자를 희생시켜 권력을 탐하는 잔인한 정치,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온 위안부 피해당사자 앞에서조차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눈 하나 깜짝 않고 여가부를 제물로 삼는 이준석 대표"라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장 의장은 "이 대표, 이용수 선생님 앞에서는 후보 공약이라 어쩔 수 없다고 뻔뻔하게 오리발 내미셨지만 당초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던 윤석열 후보 공약을 여가부 폐지 일곱글자로 후퇴시킨 장본인이 바로 본인 아니셨나"라고 일갈했다. 또 외교부가 위안부 문제를 맡으란 말에도 "정말 기가 막힌다"며 "외교부가 주도한 2015년 박근혜 정부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결과가 어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시 여성인권문제의 상징적 현안인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성평등 및 여성인권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여가부의 역할 강화는 필수적이다. 외교부가 제대로 피해자를 존중하는 관점에 입각해 일처리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렇다"면서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과 기념사업, 관련 조사 연구와 홍보를 두루 담당해왔다"고 그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 여가부 위안부 지원 정책 충분한가…위안부·여성단체 "할머니 입장 전적으로 동의"
여가부는 2021년 기준으로 15억 1800만원 대의 예산을 투입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나서왔다. 올해는 16억 8400만원 대로 10.9% 늘어난 예산이 책정됐다. 이 가운데 8억 3백여 만원이 위안부 할머니의 생활안정지원금으로 쓰이며 피해자 지원 사업에 1000만원, 기념사업에 7억 2000여 만원, 기타 경상경비로 1억5100여 만원이 사용될 예정이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위안부 지원을 위해 42억 4700여 만원대의 결산을 집행했으며 계속해서 소폭씩이나마 위안부 생존자 지원을 늘려나가는 정책을 제고해왔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던진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로 일으킨 파장이 정치권에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의 모습. 2022.01.11 yooksa@newspim.com |
특히 현재 여가부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일시금 4300만원과 월 지원금 154만8000원 대의 지원금을 전액 생활안정지원금으로 국비에서 지급해왔다. 지난해보다 2억 7200여 만원 증액된 올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지원하는 148억여 원의 예산 중에서도 22억여 원 이상을 할애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연구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지난 2021년 9월 이후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단 13명만 남은 상태다. 할머니들은 제대로 된 피해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기약없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여가부 없으면 저희는 죽었다"고 말한 것은 전체 예산의 0.2%에 불과한 예산으로도 최소한의 지원이나마 지속적으로 이어온 여가부의 역할이 드러나는 증거나 다름없다는 게 다수 여성단체 관계자의 의견이다.
실제로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위안부 할머니 지원 정책을 과연 어느 부처에서 일임할지, 이관될 시 불가피한 불편과 예산 축소 등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나온다. 위안부 정책과 지원을 맡아온 여가부와 함께 의견을 나누던 민간 단체들의 입장은 대체로 이용수 할머니와 같다. 다만 (재)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는 조심스러운 듯 "관련해서 공식 입장이 없다"고 짧게 답변했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친일 세력 청산을 주장하는 단체인 반일행동 회원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이날 제1527차 정기 수요시위는 반일행동 회원들의 자리 선점으로 인근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열렸다. 2022.01.12 kimkim@newspim.com |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안소정 사무국장은 "이용수 할머니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여가부가 폐지될 시 표류할 위안부 정책을 우려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대표가 이 할머니께 제대로 된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얼버무린 것 자체가 '여가부 폐지' 공약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안 사무국장은 "위안부 문제든 어느 것이든 그동안 여가부가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떤 게 한계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공약과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고 선동성 공약임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여성가족부가 어떤 역사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제대로 평가하는 것부터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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