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KBS 사극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 후 말이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며 동물학대논란으로 각계가 들끓었다. 문화계는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 드라마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학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KBS는 두 차례에 걸쳐 고개를 숙였다.
◆ '태종 이방원' 폐지 청원…문화계·외신·정치권까지 일파만파
지난 20일 동물자유연대의 촬영 영상 공개로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진 KBS 2TV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방영 중지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해당 게시판에는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24일 현재 약 14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
청원인은 이 글에서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1호에서는 도구를 이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다"면서 "태종 이방원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말 학대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촬영 후 말이 사망한 소식을 직접 알리고 잘못을 인정,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동물권 보호단체 '카라'는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며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면서 문제를 지적했다.
스타들 역시 나섰다. 배우 고소영은 해당 사건을 보고 "너무하다. 불쌍해"라며 안타까워했다. 성악가 조수미도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그 사람의 인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알 수 있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면서 "살면서 내가 경험했던 그대로를 반영한 명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이밖에도 배우 태연, 유연석, 배다해, 김효진, 공효진 등도 SNS를 통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동물자유연대] 2022.01.21 jyyang@newspim.com |
해당 소식은 외신에도 실렸다. CNN은 동물자유연대의 입장을 인용하며 "한국에는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지만, 동물권 단체는 오랜 시간 더 엄격한 시행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 중인 사실 역시 언급했다. 이밖에 로이터 통신, K팝 매체 '올케이팝' 역시 한국 드라마의 동물학대 논란을 논란을 다뤘다.
급기야 드라마 속 동물 학대 논란은 정치권에까지 번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 "과도한 관행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개선하고 선진화된 촬영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사람과 동물 모두가 안전한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에 공영방송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논란을 언급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동물은 소품이 아닌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 KBS 2차 사과→'조기진화' 총력…방송가 '동물권 침해' 관행 없어질까
결국 KBS는 한 차례 사과, 2주간 결방에 이어 24일 '생명 존중의 기본을 지키는 KBS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하며 재발방지를 굳게 약속했다. 이들은 "최근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KBS는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동물단체와 다수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촬영해야 할 장면은 없습니다. KBS는 이번 사고를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판단한다"고 이번 논란의 이유를 짚었다.
KBS는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며 "시청자 여러분과 관련 단체들의 고언과 질책을 무겁고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 자체적으로 이번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외부기관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재발 방지와 신뢰받는 공영 미디어로서의 자세도 다짐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사진=KBS 홈페이지] 2021.12.22 jyyang@newspim.com |
다행히 동물자유연대가 이번 논란과 관련해 KBS와 면담을 진행하며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이날 동물자유연대는 공식자료를 통해 "(KBS와의) 이번 면담에는 KBS 드라마 센터장, 책임 프로듀서, 드라마센터 기획운영팀장이 참석했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충분히 통감한다' '시대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촬영 방식에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KBS 관계자들의 입장을 알렸다.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부 논의 후 촬영현장에서 동물 복지를 보장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도 전했다.
이어 "동물자유연대는 면담 시 이번 사건에 대한 의견서와 미디어 상 동물 복지를 위한 지침, 말을 이용한 촬영 시 지켜야 할 규정 등에 대한 자료를 전달했다. 더불어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하여 ▲방송 가이드라인 상에 동물 복지에 관한 내용을 신설할 것 ▲동물단체 등 동물보호 전문가를 포함한 '동물촬영윤리위원회'를 구성할 것 ▲KBS '시청자위원회'에 동물복지 전문가 참여' 등을 요구했다"라고 설명했다.
KBS의 2차에 걸친 진화는 초반 분위기가 좋았던 '태종 이방원'의 악재를 넘어 혁신을 약속한 공영 미디어로서 매우 조속히 이루어진 조치라는 평가다. 방송가에선 이번 일로 수신료 인상 근거로 내세웠던 대하사극에서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되면서 국회 승인에도 악영향이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KBS에서는 지난 20일 동물자유연대의 문제 제기 이후 즉각 1차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오는 23일까지 2주간 결방을 결정하고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4일 만에 재차 고개를 숙였다. 논란이 된 해당 회차의 다시보기 서비스도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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