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2006년부터 인상 없던 사용료, 정률제로 개편
항공산업 활성화 등 종합 고려…인천공항 육성 측면도
국제기준 적용 선회한 국토부…기상정보료 인상과 맞물려 업계 불만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정부가 우리나라 영공을 통과하는 항공기에 부과하는 '항행안전시설 사용료'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인천국제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등이 맞물리며 수십년 간 유지됐던 기존 정액제의 사용료 부과방식을 정률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사용료 인상 가능성이 높아 항공업계가 우려하는 반면 정부는 국내 항공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 수십년 간 변동 없던 사용료, 정액제→정률제 개편…10% 내 인상 단계적 추진
7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오는 2024년부터 항행안전시설 사용료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할 계획이다. 제트항공기 기준 국제선 도착 23만원, 항로 통과 16만원 수준으로 일괄 부과하던 방식에서 항공기 중량과 운항 거리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항행안전시설 사용료는 비행정보구역(FIR) 내 항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항공사에 부과하는 요금이다. 이착륙은 물론 영공을 통과하는 경우에도 유·무선통신시설과 레이더 등 각종 장비와 인력이 사용되기 때문에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 요금을 받는다.
정부는 기존 정액 기준 사용료 대비 약 10% 이내로 인상한 뒤 단계적으로 인상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약 700억원 기준 사용료 징수 총액이 770억원 가량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다만 거리와 무게에 따라 요율이 결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줄어드는 항공사도 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한국은 수십년 간 항행안전시설 사용료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왔다. 착륙 기준 사용료는 1998년 이후 인상하지 않았고, 항로 통과 사용료는 2006년 한 차례 인상한 게 가장 최근의 변화다.
정부가 항행안전시설 사용료를 인상하지 않은 주요 이유로 국내 항공산업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 주변국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온 측면이 있다. 착륙 비용을 낮춰 주요 기착지로 삼도록 유도한 결과 인천공항은 국제 여객수송 세계 5위, 국제화물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저렴한 기착 비용으로 여객과 화물이 몰리며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다. 공항 처리 규모가 커지면 착륙료를 비롯해 공항 관련 각종 수입이 늘어나는 순기능도 있다.
◆ "항공산업 활성화" 외치던 국토부, 국제기준 따르기로…IATA 등 업계 반대 걸림돌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용료 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 기준을 준용한다는 취지에서다. 국제연합(UN) 산하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정부가 추진하는 무게·거리에 따른 사용료 부과를 권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관련 논의가 진행돼왔지만 인천공항 육성전략과 신생 항공사들의 부담 가중 등의 문제가 맞물리면서 협의가 지연된 셈이다.
반면 정부는 첨단 항행시스템 개발 등 항행안전시설 확충을 위한 비용 충당을 위한 체계 개편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항에 위탁해 받은 사용료는 국고로 들어가는데, 관련 예산계획에 따라 매년 500억원 안팎의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며 "이미 재원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항공업계가 사용료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항공업황이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3년보다 1년 지난 2024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지만 업계는 여전히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기상청의 항공기상정보 사용료 인상 추진과 맞물리면서 부담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다. 대한항공 등 일부 항공사들은 기상청을 대상으로 항공기상정보 사용료 인상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바 있다.
핵심은 국토부가 세부적인 사용료 체계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마다 정액제와 정률제를 혼합하거나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하는 등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우리나라에 맞는 사용료 체계를 마련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큰 틀에서 착륙 사용료보다 통과시 비용을 높여 국내 공항에 들어오는 항공기 규모를 최대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국내 항공사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 항공사 중 국내를 통과하기만 하는 항공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국적사와 외항사를 차별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려워 많은 나라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등 대형 항공기 비중이 높은 국내 항공사의 부담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기는 분리간격이 넓어 항로 효율이 떨어지는 등 항행시설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형기는 매출이 높아 효율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항행안전시설 사용료가 늘어나는 것은 항공사 입장에서 반길 일은 아니다"라며 "세부적으로 정부가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등을 보고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항공업계 모임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역시 사실상 이번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사용료 개편을 위해 IATA와 2~3차례 협의를 진행했고 올해도 추가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국내 항공사들과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협의를 시작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단순히 항행안전시설 사용료의 증감에 국한해서 볼 게 아니라 국내 항공시장 전체의 관점에서 효율을 따져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라며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서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unsa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