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셰프가 없는 곳이 대부분... 방글라데시 사람이 한식 주방장?
중국인 운영 한식당도 큰 증가세... 김치에 대한 중국 영향력 커져
인중제 같은 과도 규제 아닌 효과적 관리 방안 필요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지난 주 파리를 방문했을 때 파리에 거주하는 프랑스 전문가로 <시크릿 파리> 등을 펴낸 여행작가이자 국내 방송사들의 유럽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정기범씨에게 물어보았다. 파리의 한국 식당이 몇 곳이나 되냐고.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답을 들었다. "현재 약 250여 곳으로 추산됩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여 곳이 넘는 건 확실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파리에만 한식당이 200여 곳 넘게 있다니. 아무리 한류 열풍이 거세다고 하지만, 이른바 K-푸드에 대한 인기가 이렇게 높았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에 최근 한국어 단어 26개가 실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눈길을 끄는 건 음식 관련 단어들이다. 'banchan(반찬)', 'bulgogi(불고기)', 'kimbap(김밥)'에 'mukbang(먹방)'까지 등재됐다. 이는 한국 음식이 해외에서도 각별한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파리의 한식당이 200여 군데가 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K-푸드의 인기에는 BTS(방탄소년단)의 맹활약이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다. "기존 한류 열풍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의 <미나리>, 빌보드 차트를 연신 점령하고 있는 BTS의 활약까지 더해지면서 프랑스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번진 K-팝 열풍이 그대로 K-푸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거죠. 그래서 파리의 한식당도 최근 몇년새 급증한 겁니다." 정기범 작가의 말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파리의 한식당은 급속한 증가세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파리의 한국문화원에서 올해 펴낸 한국음식 소개 특집 간행물 캡쳐]. 2021.10.07 digibobos@newspim.com |
한식의 인기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 광주의 세계김치연구소(WIKIM)와 장 부스케 프랑스 몽펠리에대 폐의학과 명예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올해 3월 31일 "김치 재료인 배추, 고추, 마늘 등에 함유된 영양 성분이 인체 내 항산화 시스템을 조절해 코로나19 증상을 감지하는 신경 채널을 차단, 증상을 완화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김치였다는 분석이었다.
이와 함께 장 부스케 교수는 "김치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고 일시적 수용체 전위 활성을 낮출 수 있어 코로나19 증상 완화에 매우 효과적"이라며 "한국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낮고, 중증 환자가 적은 것은 김치 덕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부스케 교수는 또 "이전까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국가별 식생활 차이의 상관관계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식단을 바꾸는 건 코로나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자신도 이번 연구를 계기로 양배추 위주로 식단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흡기‧알레르기 분야의 석학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세계 만성 호흡기질환 퇴치 연맹(GARD)' 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연구 결과 발표 이전에 이미 영국에서는 김치가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좋은 건강음식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김치 열풍이 불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아이뉴스(i-news)>는 '소화 잘되는 한국 스낵 김치가 어떻게 봉쇄 중 영국에서 인기 음식이 됐나'라는 제목의 3월 3일자 기사에서 "김치가 속 편한 음식을 찾는 이들이나 음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관심을 받았지만 최근 건강한 생활과 전통적인 요리법에 관해 관심이 늘면서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영국인 팻 빙리가 운영하는 김치판매업체는 판매량이 지난해 첫 봉쇄 이후 '미사일 같은' 속도로 증가해서 11월에는 3월 대비 8배에 달했다"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영국에서는 올해초부터 코로나 팬데믹과 관련해 프랑스보다 먼저 김치 열풍이 불었다. [사진=지난 3월 영국의 김치 열풍의 소개한 영국 <아이뉴스> 화면 캡쳐]. 2021.10.07 digibobos@newspim.com |
이같은 김치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후 다른 매체들도 김치의 효능과 요리법 등에 관해 다양하게 소개했다. <BBC>는 홈페이지 요리 코너에 김치 담그는 법을 올려놨고, <더 타임스>는 길었던 봉쇄기간에 필진들이 만든 음식을 소개하면서 김치를 담그다 실패한 이야기도 담았다. <텔레그래프>도 김치볶음밥을, <가디언>은 김치 팬케이크를, <데일리 메일>은 김치 샌드위치를 소개했다. 유명 영화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코로나 극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김치를 꼽은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웃 영국의 이런 김치 인기에 프랑스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더해지면서 프랑스에서도 김치가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원래 젊은층보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되는 중산층 이상, 특히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 많았어요. 한국 음식이 건강식이라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인데 코로나에도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더 가속화된 거죠." 정기범 작가의 설명이다.
그런데 파리 한식당의 폭발적인 증가세는 매우 치명적인 위험 요소도 가지고 있다. 정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파리 한식당에서 한국인이 주방장으로 일하는 곳은 열 군데도 안된다고 한다. 그나마 조선족이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곳은 매우 다행한 일인데, 놀랍게도 주방장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취업한 경험이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다수 파리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주방장이 만드는 '국적 불명의(?)' 한식을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우리 교포가 아닌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엄청 많아졌다는 사실도 위험 요소의 하나다. 정작가는 "한식당이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중국인들이 대거 한식당을 열었어요. 과거 일본 버블경제 시절 해외 일식당들이 영업이 잘될 때 많은 중국인들이 일식당을 차려서 큰 문제가 됐는데, 한식당도 그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노르망디에 중국인이 엄청 큰 김치공장을 만들었을 정도로 김치와 한식당에 대한 중국인의 영향력이 세지고 있다고 염려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김치는 급속도로 세계화돼가는 추세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도 여전하다. [사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펴낸 한국음식 소개 특집 간행물 캡쳐]. 2021.10.07 digibobos@newspim.com |
한식당의 급증세와 더불어 함께 노출되고 있는 이런 위험성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난 2006년 일본의 사례가 있다. 당시 일본 농수산부 마쯔오카 장관은 미국 방문 길에 우연히 들른 미국 일식당에서 스시와 불고기가 나란히 차림표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그는 "이 식당은 일식당이 아니다. 일본 음식은 고도로 발달한 아름다운 예술이다. 원 재료를 가지고 고도로 훈련된 주방장이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들은 해외에서도 (진정한) 일본 음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당시 해외에 약 2만~3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음식점에 대한 인증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인증제 도입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일본 농수산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최근 일본 음식이 세계화되면서,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일본 음식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본래의 일본 음식과는 다른 일종의 가짜 일본 음식이 늘어나면서 본래의 일본 음식을 훼손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일본 문화 그 자체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외 일본 음식점의 신뢰성을 높이고 농수산물의 수출 촉진을 꾀하며 일본 식문화의 올바른 보급과 일본 식품관련 산업의 해외진출을 후원하기 위해 해외 일본 음식점에 대한 인증 제도를 창설하겠다."
그러자 미국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국수주의의 부활"이라고 비판했고, <미국의 소리(VOA)>는 "일본이 스시 폴리스(Sushi Police)를 파견하려 한다"며 조롱했다. 일본 자민당 내에서도 해외 일식당에 문제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일본 내에 있는 스파게티 식당이나 중국 음식점 등이 '본토 음식'과 다르다고 해서 본국 정부가 이들 식당에 대해서 인증제를 도입하게 되면 이들 식당 경영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라는 비판론도 쏟아졌다.
결국 이런 반발에 부딪쳐 일본 정부는 인증제를 포기하고, 일본의 민간 식품업계가 일식당 해외보급추진위원회(JRO)를 설립, 이 기관이 해외 일본 음식점에 추천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후퇴했다.
일본의 이같은 사례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자장면에 중국 정부가 인증제를 실시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따라서 인증제같은 규제는 과도하지만, 그렇다고 '시장에 일임한다'는 식으로 그냥 손놓고 구경만 해도 곤란하다. 엉터리 한식의 범람은 한류와 K-푸드의 인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한국인 셰프가 주방을 맡고 있다'고 표시하는 인증마크만 붙여도 그 효과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일자리 찾기에 목마른 국내 요식업 관련 젊은이들을 해외 한식당과 긴밀히 연계하는 방법도 적극 고려할 만하다.
급속히 글로벌화된 요즘의 세상에서도 "음식은 국경을 넘지만, 미각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미각의 보수성은 여전할까? 아니면 더 이상 이런 이론은 버틸 수 없는 '혼혈의 시대'가 됐을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당국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digibobo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