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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국인가, 선망국(先亡國)인가 (1) : 예지력 빛난 선진국 담론들

기사입력 : 2021년08월30일 14:54

최종수정 : 2021년09월01일 14:40

경제지표로 선진국 입증 전에 인문학계는 이미 선진국 담론 활발
대중문화 저변에서 일본 추월하고 세계를 리드한다는 자부심 넘쳐
이제는 선도형 사회 시스템에 주력해야 할 때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이번 아프간인 391명에 대한 구출은 작전명 그대로 '미라클'이었다. 신생아 3명을 포함해 5세 미만의 아가들이 무려 100여 명으로 전체 인원의 1/4을 차지하는데도,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아수라장 카불에서 인천공항까지 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진정 대한민국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기적의 구출작전'이었다.

거의 모든 서방 국가들이 구출인들을 공항에 직접 오도록하는 '판단 실수'로 수송기가 텅텅 빈채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비교할 때, 우리 작전은 기획부터 결과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실행력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자위대 수송기는 첫날 아무도 싣지 못하고 텅 빈채로 떠났다.

이 뉴스에 달린 댓글에는 '한국에 올거면 이슬람교부터 버리라'는 시대착오적 발언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대한민국의 국격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게 선진국이다'는 긍정적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분쟁 지역의 외국인을 대규모로 국내에 이송하는 것은 우리 외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렇게 성장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 뭉클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한국을 도운 이들에 대한 정부의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강조했다. 아프간 바그람에 우리가 세웠던 직업훈련원의 공덕수 전 원장도 "'한국은 결코 친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신의와 의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지난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 및 가족 들이 공군 수송기에 탑승해 있다. [사진=공군본부] 2021.08.26 photo@newspim.com

최근 우리 사회 저변에 도도하게 넘실대는 기류의 하나는 바로 선진국 담론이다.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된 발언이나 의견들을 들을 수 있다. 지난 23일 방송된  JTBC의 음악 경연프로그램 '수퍼밴드' 시즌2에서 음악 프로듀서 유희열은 심사평을 통해 "우리 때는 외국 것을 모방하느라 급급했다. 그러나 지금 세대 뮤지션들은 남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실력으로 성장했다. 분명 '콜드 플레이'(21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록밴드)와 같은 세계적인 밴드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퍼밴드'가 보여주는 경연 무대들은 하나하나가 거의 역대급이고, 그 기량 역시 최고 수준이다. 오스카나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무대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무대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들도 많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같은 세계 3대 기타리스트가 수퍼밴드에는 왜이렇게 많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뮤지션들이 즐비하다. 걸출한 실력을 뽐내는 여성 드러머와 보컬이 많다는 사실도 경탄할 대목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아, 우리나라가 정말 이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구나'라고 실감하게 된다. 결국 한 나라의 문화적 성숙도는 그 나라의 경제력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유희열과 비슷한 발언은 지난번 도쿄올림픽 폐막식 중계 때도 나왔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던 배우 겸 연출가 송승환은 지난 8일 폐회식을 해설하며 "저희 세대는 평생 일본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 와서 느낀 것은 이제 우리가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고, 문화와 예술 면에서는 이제 일본을 앞서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든다"면서 "우리의 젊은 세대는 일찌감치 일본을 추월하고 멀찌감치 앞서가는 그런 노력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는 평창 올림픽 때 많은 곡을 작곡해서 썼는데, 도쿄 올림픽은 기존곡을 편곡해서 많이 쓰는 것 같다"고도 평가했다.

이런 송승환의 발언이 나오고 며칠 뒤인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광복절을 앞두고 1990년 이후 한일 간 경제·경쟁력 격차 변화를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경련은 거시경제 등을 분석해 국가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순위를 살펴본 결과 1995년 각각 26위와 4위였던 한국과 일본의 순위가 2020년 23위, 34위로 바뀌며 한국이 역전했다고 밝혔다.

이미 부분적으로 알려진 것들을 종합한 내용이어서 새로운 사실은 없지만 이날 전경련 발표는 드디어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지위가 역전됐다는 사실을 전경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 됐음을 확인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날 전경련 발표를 종합하면 ▲물가와 환율 수준을 반영해 국민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1인당 경상 국내총생산(GDP)도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2018년 한국(4만3천1달러)이 일본(4만2천725달러) 추월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2단계 상위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에서 1990년 한국과 일본의 순위는 각각 17위, 2위였지만 2018년에는 한국이 3위, 일본이 5위로 역전 ▲수출액도 2020년 기준 5천130억 달러로 일본의 80% 수준까지 추격 등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지표로 우리가 선진국임을 확인하기 전에 인문학에서는 이미 선진국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됐다. <추월의 시대>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눈 떠보니 선진국> 같은 책들이 바로 선진국 담론의 증거들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경제지표로 선진국 진입을 증명하기 이전에 인문학계에서는 이미 선진국 담론이 한창 제기됐다. 2021.08.30 digibobos@newspim.com

가장 먼저 나온 <초월의 시대>(메디치, 2020년 12월 30일)는 6장의 제목이 '추격의 시대에서 추월의 시대로'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객관적으로 '추격의 시대'를 지나 '추월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가 국가 역량을 발휘하자, 이제는 지구상의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신흥선진국의 '추월 데뷔전'을 관람해버린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올 6월이 되자 이 책의 예언대로 UN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고, G7 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을 G7처럼 대접했으며, GNI도 이탈리아를 추월해 실질적인 G7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서울셀렉션, 2021년 1월)의 주제는 책 표지의 부제에 잘 나타나 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시간이 오고 있다. 150년 가까이 기다려온 한일역전의 시간이!".  이 책의 저자인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과거 몇세기에 걸쳐 대다수 분야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최근 한국이 앞서 나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러한 역전 현상이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혐한을 부채질하고 있다"면서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은 '한일역전'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줄어든 일본과 국력 신장으로 자부심이 넘치는 한국, 양국간 힘의 균형이 크게 변한 것이 정체성 문제로 바뀌어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한빛비즈, 2021년 8월)의 저자인 IT전문가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선진국이 될때까지 한국은 지독하게 달려왔다. 바람처럼 내달린 몸이 뒤쫓아오는 영혼을 기다려줄 때다. 해결해야 할 '문화지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라면서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무엇이 문제이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다양한 통찰력으로 짚어낸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해보자. 세계에서 제조업에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 대부분 미국이나 독일, 혹은 일본 등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놀랍게도 한국이다. 국제로봇연맹(IFR)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이 1만명당 710대로 8년째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이어 싱가포르가 658대, 독일이 322대로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1만명당 308대로 4위를 차지한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이 2배 이상 높은 로봇 밀도다. 산업용 로봇 최대 생산국인 일본이 2016년 303대에서 308대로 로봇 밀도를 5대 높이는 동안 한국의 로봇 밀도 상승 폭은 631대에서 710대로 무려 79대에 달했다. 로봇 도입 속도에서 16배 차이가 난다. 미국은 200대로 7위였다.

로봇 투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로봇 도입을 통한 경비 절감은 기업엔 기회의 창출이지만 노동자에겐 기회의 박탈로 이어진다. 미국의 민간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로버트 앳킨슨 대표는 선진국의 실질 로봇 도입률이 낮은 것은, 로봇을 도입할 때 사람 대신 일 전체를 떠맡는 쪽보다는 노동자를 보조하는 데 주로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기업의 이익보다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 배려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이 분석대로라면 한국은 기업이 노동자의 이익을 가장 무시해온 나라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효율성 위주로 기업이 로봇부터 도입해온 것인데, 여기에서 또 역설이 발생한다. 여타 선진국에 비해 자동화를 먼저 도입한 결과,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가장 낮게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OECD 2016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자동화로 인한 위기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다. 한국은 자동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즉 매를 먼저 맞으면서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노동자는 이미 1987년부터 로봇과 싸워왔다.  6·10민주화항쟁이 있었던 1987년은 어느 때보다도 노동쟁의가 잦았던 시기였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기업들은 타협 대신 로봇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1982년 겨우 14대였던 산업용 로봇은 1989년에 약 1,4000여대로 늘어났다. 기업의 로봇투자금액도 1986년 51억원에 불과했으나 1989년에는 540억원까지 늘어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7년 3월에 발표한 <4차 산업혁명의 고용 효과> 보고서에서 "자동화에 대한 선행 투자와 근로자의 교육 수준 등이 향후 자동화 확률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즉, 자동화가 이미 많이 진행된만큼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에서 4차 산업혁명의 악영향을 받을 여지가 낮다는 얘기다.

이처럼  표준 문명의 우등생으로서, 그 가르침을 더욱 과격하게 실천해온 결과로 먼저 망하는 개념을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명예교수(연세대)는 '선망국(先亡國)'이라 표현한다. 글자 뜻대로만 보자면  '먼저 망해가는 나라'라는 비관적 의미로 들리지만,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문제를 겪는 만큼 선도적으로 해법을 찾는다면 인류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낙관론이기도 하다.

사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한국은 아주 빠르게 부강해져 많은 개발도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낮은 출산율, 가장 높은 우울지수를 기록하는 나라가 됐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는 고도 경제성장의 압축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국민이 자유와 정의를 질문하는 윤리적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출세와 돈벌이에 골몰하는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끊임없이 경제가 성장하고,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성장만 추구하다 보니 다들 지쳐서 서로에 대한 신뢰나 환대, 시민적 공공성이라는 게 없어졌다. 그래서 각자 결핍이나 상대적 박탈감만 가지고 있게 됐다. '누구는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횡재했다던데'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보편적인 인식이 돼버렸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그야말로 남보다 먼저 망할 수밖에 없는 선망국의 요건이다. 이런 부정적 선망국을 긍정적 의미의 선망국(羨望國)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편에 계속.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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