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분화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손톱 만한 칩에 수천만개 트랜지스터 새기는 나노 기술
매년 '목숨을 건 도약'을 감행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들
[편집자주] 기업들의 신기술 개발은 지속가능한 경영의 핵심입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들은 신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습니다. 기술 진화는 결국 인간 삶을 바꿀 혁신적인 제품 탄생을 의미합니다. 기술을 알면 우리 일상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습니다.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지만 독자들에게 아직은 낯선 기술 용어들. 그래서 뉴스핌에서는 'Tech 스토리'라는 고정 꼭지를 만들었습니다. 산업부 기자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기업들의 '힙(hip)' 한 기술 이야기를 술술~ 풀어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7나노의 벽' 앞에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이 갈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인텔이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7나노(nm·나노미터) 기반의 반도체 (미티어 레이크) 출시 시기를 기존 대비 6개월 가량 늦춘 오는 2022년 말 또는 2023년 초로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TSMC·삼성전자 등 외부 제3자 파운드리 업체에 위탁생산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인텔의 발표에 60달러를 넘나들던 주가는 40달러 후반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도체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제창하며 반도체 제국을 건설했던 인텔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인텔의 7나노 프로세서는 2018년에 나왔어야 했습니다. 빈번한 연기 발표에 시장의 신뢰가 제대로 꺾인 것입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로이터 뉴스핌] |
반면 인텔과 CPU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AMD 주가는 60달러 선에서 한 달도 안 돼 8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인텔의 외주 물량을 독점할 것으로 전망되는 TSMC 주가도 대만 주식시장에서 한 달 새 30% 가량 상승, 시총이 400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인텔의 2배이자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1위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 시총은 2900억달러입니다.
◆ 메모리와 비메모리 그리고 팹리스와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와 비(非)메모리 시장으로 나눠집니다. 메모리는 말 그대로 '기억'을 담당하는 반도체 부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D램이 대표적입니다. 메모리 시장 또 하나의 축은 과거 하드디스크를 밀어낸 낸드플래시입니다. D램은 용량이 작고 속도가 빠르지만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소실되는 휘발성 메모리고 낸드는 용량이 크고 느린 대신에 비휘발성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생산 라인을 살펴봤다. [사진=삼성전자] |
아시다시피 메모리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기업이 절대 강자입니다. D램과 낸드 모두 지난 10년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수요도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가깝게는 올 상반기 코로나 쇼크로 클라우드 서버 수요가 는 것이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을 상승시켰습니다.
하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70%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메모리는 연산을 담당하는 CPU와 AP 그리고 GPU 등 메모리 이외 모든 반도체를 지칭합니다. 스마트폰, 서버, 자동차,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도체가 널리 활용되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메모리가 규격화된 아파트라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교량, 댐, 항만, 도로, 주택 등 아파트 이외의 모든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설계가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인텔을 포함해 대부분 반도체 회사들이 직접 설계부터 반도체 생산 및 판매까지 직접 했습니다. 하지만 제조공정이 복잡해지고 첨단 장비 도입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선진국 기업들이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고 가동시키는 것을 점차 기피하게 됐습니다.
대만 TSMC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에 반도체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업체와 팹리스 업체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 업체로 산업적 분화가 일어납니다.
대만 TSMC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고 TSMC의 핵심 고객인 미국 애플이 팹리스 업체입니다. 인텔과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설계하고 양산과 판매도 함께 하는 대표적인 종합반도체 기업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인텔과 달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도 함께 합니다.
◆ 나노가 뭐길래...손톱 만한 칩 안에 수천만개 트랜지스터를 새긴다
인텔은 어쩌다 7나노 공정 돌입에 실패한 것일까요. 일단 '실패'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가 7나노 공정에 성공하긴 했지만 인텔이 목표로 하는 7나노에 비해서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못 미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인텔의 저력을 무시할 수도 없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마침 인텔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인텔 아키텍처 데이' 행사를 통해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인 '슈퍼핀'(SuperFIN)을 공개했습니다. 기존 10나노 공정을 유지하면서 인텔 고유의 핀펫 구조를 업그레이드 한 것인데 향후 출시될 프로세서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64K DRAM. 이 손톱 만한 칩 안에는 수만 개에서 수십 억 개 이상의 전자부품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2020.08.15 sunup@newspim.com |
10나노냐, 7나노냐! 파운드리 업체들이 나노 경쟁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선폭이 좁아질수록 저전력 ·고효율 반도체 칩 생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TV에 반도체 뉴스가 나올 때면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가 쟁반 같은 원판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반도체 웨이퍼입니다.
웨이퍼 위에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PR)라 불리는 화학 물질을 얇게 바른 후, 레이저를 이용하여 미리 설계 해 놓은 전자 회로를 웨이퍼 위에 그립니다. 이것이 반도체 핵심 공정입니다. 아날로그 사진기의 사진 인화 과정과 원리가 같아, 포토 공정이라고도 불립니다. 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긴 후 집적회로(IC)를 각각 절단하면 반도체 칩이 됩니다.
얼마나 많은 회로를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현재 반도체 생산 회사들의 경쟁력입니다. 웨이퍼에 얇게 바르는 PR과 레이저의 성능이 최소 선폭의 두께를 좌우합니다. 참고로 PR은 불화소수, 폴리이미드와 함께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입니다.
◆ '목숨을 건 도약' 감행해야 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손톱만한 칩 한 개 안에는 수만 개에서 수십 억 개 이상의 전자부품들(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캐패시터)이 들어있습니다.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넣어야 소비전력은 감소하고 속도는 향상됩니다. 당연히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또 회로 폭이 좁아지면 칩 크기가 줄어 웨이퍼당 칩 생산량은 증가하고 원가 경쟁력이 향상됩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입니다. 선폭을 줄이려면 빛의 파장을 좁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반도체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경쟁을 펼쳐왔습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용 레이저 장비로 10나노까지는 불화아르곤 장비를 사용했으나 7나노부터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도입했습니다. EUV 장비는 대당 1500억~2000억원인데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고 있습니다. 소위 '슈퍼을'이라 불리는 회사입니다.
[서울=뉴스핌] 심지혜 기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2020.05.21 sjh@newspim.com |
반도체 공장에는 EUV 장비가 수십대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붓이 얇을수록 미세공정에 유리하지만 그만큼 공정이 어려워지고 불량 위험도 커집니다. 또한 초정밀 공정 장비, 자동화 물류 장비, 클린룸 비용 어마어마한 비용 증가를 감수해야 합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데 수십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공장을 3년에 한 번씩 새로 올려야 합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캠퍼스에 P1을 가동하면서 P2 가동을 준비 중이고 2023년 말 가동을 목표로 내달 P3 착공에 나섭니다. 공장마다 약 30조원의 투자금이 들어갑니다.
삼성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만 133조원(R&D 73조원, 시설 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수주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은 투자를 멈출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건 도약', 반도체 기업의 운명입니다.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