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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 진두지휘 중난산(鐘南山), 중국인의 든든한 '산'

기사입력 : 2020년04월24일 16:42

최종수정 : 2020년08월20일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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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리 주옥함 기자 = 그는 자신을 '보통 의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시세에 쫓기고 도덕심에 얽매여 늘 영웅의 역을 했다.

2020년 설날를 앞두고 코로나19가 우한(武漢)에서 발발하기 시작하여 점차 전국 각 성, 자치구, 직할시로 퍼졌다. 이런 비상시에는 중국공정원 원사인 중난산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급 전문가팀 팀장을 맡아 전염병 퇴치 행렬의 선두에 나섰다.

중난산 원사는 광저우의과대학(廣州醫科大學) 부속 제1병원의 진찰실에서 환자의 흉부 CT를 보고 있었다.[사진=금교]

1월 18일에 우한으로 떠날 때부터 2월 27일에 광저우(廣州) 기자 회견에 참가할 때까지, 40일 동안, 중난산은 바이러스와 싸우고, 연구하고, 병세를 검토하고, 원격 회진을 하면서 광둥(廣東)성 기자 회견에 여러 차례 참석하고, 언론 인터뷰도 잇따라 받으며 대중의 관심사를 풀었다. 그의 발언 하나 하나는 마치 정해신침(定海神針)처럼 당황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희망을 주었다.

중난산은 의술이 뛰어난 의사일 뿐만 아니라 '돌발 공중위생 사건 대변인'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떤 대체 불가능성은 천연적으로 갖추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의 공증이다.

'중난산'이라는 이름은 17년 전부터 이미 알려져 있다. 2003년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로 함)이 눈 깜짝할 새 없이 중국을 휩쓸었고 특히 광둥성이 가장 심각했다. 재난 앞에서, 당시 광저우호흡질환연구소 소장이던 중난산은 광둥성 '사스'의료구호 전문가팀의 팀장을 맡아 자신이 속한 호흡기 질환 연구소를 이끌고 전선에 나섰다. 그는 자진해서 "가장 위독한 '사스' 환자를 집중 입원시켜 저희한테 맡겨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당시 연구소 내에 여러 명의 의료진이 연이어 쓰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난산은 여전히 환자들에게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그 자신은 더구나 생명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고 38시간 동안 쉬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다 지쳐 일선에 쓰러지기도 했다. "환자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병원은 전쟁터인데 전사로서 우리가 돌진하지 않으면 누가 해야 합니까?"중난산의 마음속에는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언제나 제일 우선이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치료방안은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고, 그로 인해 광둥성도 전세계 '사스' 환자의 치유율이 가장 높고 사망률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이 '사스'라는 말을 듣고 긴장하는 시기에 중난산은 전세계에 '사스'가 무섭지 않고 예방도 치료도 모두 가능하다고 대담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3월 2일, 중난산 원사(앞 가운데)가 광저우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에서 열린 전염병 예방통제 일선 예비당원의 입당 선서식에서 대표선서를 하고 있었다.[사진=금교]

중난산은 수십 년 동안 의료를 하면서 가장 큰 행복은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 항상 앞장서는 것이라며 가장 큰 위안은 의사로서, 공산당원으로서 환자에 대해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어진 마음은 단지 직업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가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난산은 의학세가에서 태어나 부모는 모두 의덕이 높고 의술이 뛰어난 의사이다. 아버지 중스판(鐘世籓)은 중화인민중화국의 유명한 소아과 전문의로 바이러스 연구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어머니 랴오위에친(廖月琴)은 광둥성 종양병원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부모에게서 의사의 박애와 직업정신을 보고 중난산은 묵묵히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1955년, 그는 원하는 대로 베이징(北京)의학원에 진학해 이때부터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난산이 보기에 의사로서 환자에게 꽃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벼이삭도 주어야 한다. 벼이삭이 뭐냐면, 실재적인 것, 즉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중난산은 의사의 어진 마음 뿐만 아니라 순수한 애국심도 가지고 있다. 1978년, 그가 허우수(侯恕) 부교수와 공동으로 쓴 논문인 <중서의결합분형진단 및 만성기관염 치료(中西醫結合分型診斷和治療慢性氣管炎)>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전국과학대회 성과 1등상에 선정되었고, 이로 인해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 가서 깊이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영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중난산은 호흡기 질환에 대한 예방 치료 연구에서 6가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고, 7편의 학술 논문을 완성했으며, 이 중 4가지는 영국 의학연구학회, 마취학회 및 당뇨병학회 회의에서 발표되었다. 귀국 전, 에든버러대학교는 왕립병원에서 일하도록 극구 만류했지만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그는 결연히 귀국하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감정에서 비롯됐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깊은 문명 내포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귀국 후 중난산은 광저우의학원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냈고 의학논문 저서를 발표했으며 박사, 석사 대학원생도 많이 길러 내 중국 의학사업에 큰 기여를 했다.

2019년 5월 8일, 중난산 원사는 광저우위생직업기술대학에서 열린 5·12 국제 간호사의 날 축하식 및 졸업 모자 수여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에게 모자를 수여했다.[사진=금교]

송대(宋代) 이학가 주희(朱熹)는 "명위지존(命為志存)"이라 하는데 즉, 생존은 이상과 지향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중난산은 찬성하지만 한 글자를 더 붙이는 것, 즉, "장명위지존(長命為志存, 오래 살아남는 것은 이상과 지향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이라는 것이 더 포괄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연세가 여든이 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일터에서 학술연구를 하고, 병실을 돌며 회진하며 한몫하고자 한다. 그의 학술 연구 성과는 뛰어나 여러 해 동안 <란셋( The Lancet)> 등 국제 권위지에서 SCI 논문 100여 편을 잇따라 발표했고 각종 전문 저서가 20편 가까이 출판되었으며 신종플루, 만성해수 및 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진료지침을 마련했다. 이와 동시에, 바쁜 근무시간 외에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또래에 비해 더욱 젊어 보인다.

2019년 9월 25일, 중난산은 '가장 아름다운 분투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그는 20년 더 달려서 난치병에 대한 연구, 교육, 치료를 포함한 아시아 최대의 심폐호흡연구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조국을 위해 좀더 많은 공헌을 하고, 더 많은 과학 연구 성과를 실험실로 수출하여 생산력으로 전환시켜 인민을 행복하게 해주다"는 것은 그가 국가, 인민에 대한 보답이자 의료 종사자로서의 초심이다.

글/사오우(沙鸥)

[금교(金橋,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관 잡지)=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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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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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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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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