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 기업의 1분기 어닝 시즌이 본격화된 가운데 경제 셧다운에 따른 실적 악화와 함께 향후 전망의 실종이 투자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진화 시기를 점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경제 활동 재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앞세워 기업들이 일제히 향후 이익 전망치 제시를 철회하는 움직임이다.
가뜩이나 주가 널뛰기에 현기증을 느끼는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좌표를 상실한 셈이다.
월가 [사진=블룸버그] |
21일(현지시각) 더 스트리트에 따르면 1분기 주당 51센트의 순이익 달성을 발표한 코카콜라는 도쿄 올림픽을 포함한 각종 스포츠 행사 취소에 따라 2분기 매출이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한 한편 연간 실적 전망치를 철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충격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하반기 매출 추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회사 측의 입장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IT 업체 IBM도 전날 1분기 성적표를 공개했지만 올해 연간 실적 전망치를 내놓지 못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포함해 핵심 비즈니스가 팬데믹에 상대적인 저항력을 갖추고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담배 제조업체 필립 모리스와 보험사 유나이티드 헬스 등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2분기 이후 이익 전망을 취소했다.
크레디트 스위스(CS)에 따르면 20일까지 1분기 실적을 공개한 50여개 기업 가운데 연간 이익 전망치를 제시한 기업은 9개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9개 기업 가운데 3개 기업만이 지난해 말 제시한 전망치를 업데이트 했고, 나머지는 단순히 기존의 수치를 유지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은 전례 없는 상황에 혼란스럽다는 표정이다. 기업 분석부터 밸류에이션 평가와 목표주가 및 투자의견 제시까지 정상적인 투자은행(IB) 업계의 기능이 마비됐다는 지적이다.
TD아메리트레이드의 JJ키넌 수석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기업 경영자와 애널리스트 모두 '할 말이 없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펀드매니저들은 유동성 흐름과 레버리지 등 실적 전망치를 대체할 만한 잣대를 동원하고 있지만 종목 분석과 매매 결정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S&P500 지수가 여전히 연초 이후 13%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바이러스 확산의 정점과 경제 재개방에 대한 기대로 3월 저점 대비 28% 치솟은 상황.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어닝 시즌의 실적 전망 공백이 후폭풍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한편 또 한 차례 급락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CS의 조나단 골럽 주식 전략가는 투자 보고서에서 "월가가 눈을 감은 채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IB 업계의 이익 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일 가능성이 높고, 이는 향후 주식시장에 커다란 복병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P500 종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는 올해 매 분기마다 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가는 연간 기준으로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의 이익이 17% 급감하는 시나리오를 점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실제 어닝 침체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캔터 피츠제럴드의 피터 체치니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 시기에 기업 이익이 25~30% 줄어들었다"며 "기존에 제시된 월가의 데이터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증시의 정규 거래 마감 후 야간 선물 거래가 폭증했다고 보도해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따르면 전자거래시스템에서 이뤄지는 E-미니 S&P500 선물 거래가 일평균 50만계약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17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보다 두 배 높은 수치다.
전세계 주요 증시의 상호 연계성이 크게 높아진 데다 포트폴리오 헤지 거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결과라고 WSJ은 해석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