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한국 국민의 북한 개별관광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놨다.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과 비영리 사회단체 중심의 개성·금강산 방문, 중국 등 제3국 여행사를 이용한 평양, 양덕, 원산·갈마·삼지연 등 북한 관광 프로그램 참여, 해외 관광객의 제3국 여행사를 통한 남북관광과 연계하는 등 3가지 방안이 그것이다. 북한과 금강산관광 합작사업의 하나인 단체관광이 아니어서 유엔의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세컨더리 보이콧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한국 국민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를 하면서도 아직 북측과 협의를 거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북한과 협의도 거치지 않은 설익은 계획을 발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독자적으로 남북 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 일대의 국제 평화지대화, 남북 접경지역 협력, 스포츠 교류 등 5대 남북 협력 사업을 제안했으며 이중 가장 부담이 덜한 관광 분야부터 물꼬를 트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과의 협의도 선행돼야 한다. 미국은 통일부가 이날 발표한 개별관광 3가지 방안에 대해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 추진에 대해 "남북 간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남북 협력이 반드시 비핵화에 대한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개별관광은 미국과의 협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 "주권 침해"라며 오히려 공격함으로써 한미간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자초했다.
남북 평화정착을 집권의 핵심 과제로 정한 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해 돌파구를 마련해 보겠다는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독자적인 남북 관계 개선 시도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기조를 흔들거나, 국제간 동조체제에 균열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비핵화 없이는 대북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할 경우 국제무대에서 고립무원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권이 대북 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내는 것은 4월 총선 전에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이른바 '북풍'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 국민의 북한 개별 관광이 성사된다 해도 철저한 안전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과 미국인 관광객 오토 웜비어 사망 사고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된다. 박왕자 씨 사망사고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예전에 언급한 '통과의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는 가당치 않다. 무엇보다 북한은 박왕자 씨 사망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약속도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이미 관광사업 법규나 제도적 안전장치를 정비해 외국인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한 당국자의 말처럼 북한의 무한한 선의를 믿는 듯한 태도도 위험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 온 "국민의 안전은 정부의 핵심 목표"라는 말어 빈 말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