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인 “법원이 피해자 인적사항 보호도 없이 가해자에 송달했다”
법조계 “인적사항 적은 고소장이 같이 동봉되는 것... 법적 문제 없어”
피해자 정보 가리고 송달... ‘민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낮잠’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 유서도 미리 써놨습니다. 피해자가 왜 이리 두려움에 떨어야 할까요.”
‘성범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보호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5일 현재(9시 기준) 22만명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의 답변을 받게 됐다.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모일 경우 장관과 수석비서관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의 공식 답변을 30일내 들을 수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국민청원에서 자신을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힌 A(24·여)씨는 “가해자는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작년에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판결도 나왔다”며 “민사 판결문에 제 연락처와 집주소 등 인적사항이 그대로 기재된 채 단 1의 보호도 없이 가해자에게 송달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형사소송에서는 피해자 인적사항 보호가 됐기에 민사 또한 그럴 줄 알고 소송한 것”이라며 “무서운 마음에 연락처도 열 번 넘게 바꾸고 개명도 했지만 이사할 형편이 안 돼 가해자가 출소할 내년 8월이 두렵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신상 기록을 모두 적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복을 우려한 성범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해자가 집 앞으로 찾아오지는 않을지, SNS 프로필 등을 염탐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법원에서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고 한다”며 “법률구조재단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접근금지도 눈앞에 나타나야 가능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판결문에 기재되는 개인정보는 청원내용과 달리 이름과 주소지가 전부다. 한 지방 법원 판사는 “보통 원고의 신원정보가 노출됐다면 판결문이 아니라 이행권고 결정이나 지급명령 당시 같이 붙여서 보내는 고소장 때문”이라며 “본인이 쓴 개인정보대로 피고(형법상 가해자)에게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사소송 판결문 예시(본 사건과 직접 관계 없음) |
성범죄 뿐 아니라 모든 범죄 관련 민사소송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사소송은 형사소송과 달리 대등한 당사자 간의 법적 분쟁을 다툰다. A씨와 같은 원고의 고소장은 그대로 피고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수진 변호사는 “대리인이 있는 경우는 굳이 피해자 정보를 안 적어도 되지만 보통 민원실에서는 원고의 인적사항을 다 쓰라고 한다”며 “신상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피해자는 사정을 설명하고 자세한 주소는 법원에만 알리는 식으로 소장을 제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국회에는 범죄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에는 피해자의 신상 노출을 막는 내용을 포함됐다.
법안에 따르면 보복 범죄의 우려가 있는 경우 소송기록을 열람·복사하기 전에 법원이 직권이나 신청에 따라 범죄 피해자의 성명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다.
또 소장과 준비서면 부본 등 소송서류를 송달할 때도 범죄 피해자인 원고의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가리고 송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법사위 전체위에 상정됐다가 고유법을 심사하는 제1소위에 회부된 상태”라며 “법안을 다 뜯어고쳐야 할 소위원회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폭력을 포함한 흉악범죄가 증가 추세인 만큼, 법안 개정이 시급해보인다.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17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전체 강력범죄(흉악)는 52.4% 늘고, 성폭력은 105%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성폭력은 2007년 1만4344건에서 2015년 3만1063건으로 1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강도 73.6%, 살인 15.7%, 방화 12.8%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