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상가, 교환·환불·카드·현금영수증 거부 여전
세금 탈루 우려...국세청 "단속 없지만 신고시 과태료"
교환·환불 불가는 관련법도 미비...소비자 불만 쏟아져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쇼핑 마니아인 A(29·마포구)씨는 이달 초 지하철 합정역 인근 상점가에서 마음에 드는 귀고리를 발견했다. 디자인과 가격 모두 괜찮았다. 지금 사면 깎아준다는 말도 솔깃했다. ‘땡 잡았다’는 생각에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냈다.
그 순간 밝게 웃던 가게 주인의 표정이 굳었다. “현금으로 하지 않으면 할인해줄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졸지에 세일은 없던 일이 됐다. 주인이 제시한 카드 가격은 현금가보다 5000원 비쌌다. A씨는 “아직도 카드 안 받는 곳이 있을 줄 몰랐다”며 “세금 덜 내려는 속셈 아니냐”고 혀를 찼다.
서울 도심 지하상가 영세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카드와 현금을 서로 차별대우하거나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실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 불만이 큰 것은 물론, 세금 탈루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역, 고속버스터미널역 일대 지하상가 모습 2018.08.18 [사진=박진범 기자] |
◆교환X 환불X 카드X 현금영수증X
지난 17일과 18일 의류·신발류·잡화·액세서리 상점이 몰려있는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실태를 직접 확인해봤다. 반나절을 돌아다닌 결과 가게 대부분이 현금가, 카드가를 따로 제시하고 있었다.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5000원가량 차이가 났다. 6000원짜리 스카프 한 장을 사려고 해도 카드는 웃돈을 줘야했다.
한 신발 상점 주인은 “카드로 하면 39000원인데 현금 주면 35000원까지 해주겠다”고 말했다. 현금영수증은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금이 없다고 했더니 계좌이체를 권유했다.
근처 옷가게 주인은 교환 가능 여부를 물었더니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카드)수수료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제품 택(tag)에는 ‘7일 이내 교환·환불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외국인 사이에서 유명관광지로 떠오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역 일대 지하상가는 더 노골적이었다. 상점 상당수가 ‘교환X’ ‘환불X’ 또는 ‘카드X’ 문구를 내걸고 영업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답을 피하거나 “결제 기계가 없어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유커(중국인관광객)를 잡기 위해 전자결제 플랫폼 알리페이(Alipay)가 가능하다면서 정작 내국인에게는 카드를 받지 않는 황당한 곳도 있었다.
서울 반포 지하상가 모습 2018.08.18 [사진=박진범 기자] |
◆탈세 우려에도 단속 없다시피
이런 식의 영업이 가능한 건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탓이다. 반포 지하상가를 관할하는 반포세무서 측에 단속 실태를 묻자, 관계자는 “단속에 관해 어떠한 답변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국세청은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인했다. 한 담당자는 인원 부족을 호소하며 “할 일이 많은데 단속을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한 뒤 먼저 시정요구하고 가산세 및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드 거부 실태에 대해서는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신용카드사 가맹점이 아닐 수도 있고 영세사업자에게 가맹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법이 아니니 단속도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1항에는 ‘신용카드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 한다’고 명시돼있다. 소득세법 제162조의2는 납세관리를 이유로 가맹점 가입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또한 명백한 위법이다. 현행법에 비춰봤을 때 해당 지하상가 영업행위는 불법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이나 현금 결제 유도는 ‘탈세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이에 관해서도 국세청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내놨다. 담당자는 “카드 거부는 탈루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차후 소득세 신고를 제대로 하면 탈세가 아니기 때문에 거부 자체를 탈세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세금 탈루 문제는 신고가 있지 않는 한 업주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어 보였다.
◆소비자는 '뿔났다'..."오프라인 교환·환불은 관련법 없어"
특히 교환·환불 거부는 소비자 불만이 끊이지 않는 문제다. 박모(30·중랑구)씨는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원피스를 잘못 샀다가 환불받지 못했다”며 “하얀 옷은 하얗다고 안 되고, 신발은 신발이라 안 되고 바지는 바지라고 안 된다는데 한국에선 옷을 안 사는 게 답”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마땅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제품에 손상이 없는 경우 7일 이내 교환 또는 환급이 가능하다’고 돼있다. 그러나 고시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온라인 거래는 전자상거래법에 의해 7일 이내 교환이나 환불받을 수 있다”면서도 “오프라인 거래는 관련법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강신업 변호사 역시 "소비자보호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교환·환불·카드가 안 된다고 사전 공지해놓은 경우라도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에 따라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은 무효”라고 지적했다.
be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