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채용 모범규준으로 필기시험 부활
"또 다른 공시족 양산…인재채용 정형화" 우려도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필기시험 감이 안와서 공부를 안하게 됩니다. 인강(인터넷 강의)이나 교재 좀 추천해주세요.", "금공(금융공기업) 필기 학원 공유 부탁드립니다."
10년 만에 이른바 '은행고시'가 부활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각 은행들이 하반기 채용 공고를 내기 전이지만 학원가에는 필기시험을 준비하려는 취준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채용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지만, 취준생들의 부담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필기시험 도입, 임직원 추천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권 채용 모범규준을 시중은행 인사실무진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와 공유했다. 권고사항이지만 채용비리 의혹으로 후폭풍이 컸던 만큼 대부분의 은행이 이를 도입할 방침이다.
채용 윤곽이 드러나면서 취준생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하반기 채용 시즌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필기시험이 부활하자 분주해진 모습이다.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찾는 취준생들이 많아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은행권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A씨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체크했다가 검색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막막한 심정에 학원이나 스터디 그룹 등을 알아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구직자 B씨는 "은행만 노리는 취준생은 사실 적은데 은행쪽 필기시험만 따로 공부가기가 부담스럽다"며 "필기가 중요해지면 금융권을 오래 준비했던 사람들이 유리해져 또 하나의 공시(공무원시험)족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은 필기시험을 보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전형에 필기시험을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다른 은행들도 필기시험 도입할 방침인 가운데 자체 출제보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에 기반한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태도 등의 내용을 국가가 체계화한 시험이다. 상반기 공개채용을 진행한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모두 필기시험을 NCS로 출제했다.
금융권 취업 컨설턴트인 김정환 슈페리어뱅커스 대표는 "NCS에 대한 강의 문의가 상당히 늘었다"며 "은행은 사기업인데 국가가 정한 필기시험을 보는 게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고 전했다.
학원가 관계자는 "은행 영역만 따로 준비하기에는 취업 문이 좁기 때문에 공기업 NCS 강의를 학원에서 듣고, 금융 분야는 개별적으로 준비하거나 컨설턴트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오랫동안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거나 상경 계열 전공자가 유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필기시험 난이도도 취준생들의 관심사다. 필기시험의 중요도가 높아진 만큼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적성 검사 수준을 넘어 금융, 경제 분야의 깊이있는 지식을 출제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인사부 담당자는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논술, 약식 문제를 빼고 객관식으로 구성하는데 이 경우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치뤄지는 서류에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필기전형 기회를 준다는 방침이어서 필기에서 상당수가 걸러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선 정형화된 방식으로는 다양한 인재를 뽑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채용 모범규준 도입으로 채용비리 논란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융합형 인재를 채용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모범규준은 권고사항이지만 이를 권고로 받아들이는 은행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며 "디지털 뱅킹이다 글로벌이다 해서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뽑는 게 중요한데 필기시험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