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임선빈과 변호사 손훈모가 26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예술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단 하나의 기준, 프로그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뉴스핌=양진영 기자] 문화예술계 '미투(#ME TOO)' 물결 속 뮤지컬 업계가 숨 죽이고 있다. 일파만파로 번지는 성폭력 폭로와 그 여파를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최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최근 문화예술계 성추문 관련 인사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 중에서도 뮤지컬 업계는 연극, 방송, 연예 등 다른 곳에 비해 아직까지 그 실체가 밝혀진 일이 드물다. 현재 변희석 음악감독과 윤호진 연출 정도만 언급된 상황. 그래서인지 뮤지컬 제작사나 관계자들 역시 몸을 낮추고 이 폭로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 쏟아지는 '미투', 대응하는 연극계와 숨 죽인 뮤지컬 업계
연극계에서 '미투' 폭로가 시작된 후, 변희석 음악감독을 필두로 뮤지컬계 미투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극 뮤지컬 갤러리에 올라온 글에서 피해자의 친구라고 자신을 밝힌 글쓴이는 변희석 음악감독의 성추행 및 성희롱을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변희석은 19일 개인 SNS를 통해 그간의 언행에 대해 사과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제작사 에이콤 윤호진 대표가 그 뒤를 이었다. 익명의 '미투' 폭로로 의심에 눈초리를 받아온 그는 24일 사과문을 내고 그간의 잘못된 행동을 사과했다. 이와 함께 그의 신작 뮤지컬 '웬즈데이'는 28일 제작발표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뮤지컬 배우 서범석의 성추행을 지목한 익명의 폭로도 있었으나 본인은 "사실무근"이라고 의혹을 부인한 상태다. 현재 그가 출연 중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정상적으로 공연 중이다.
변희석 음악감독이 성추행 논란으로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진=뉴시스> |
활발한 미투 운동과 그에 대한 피드백이 오가는 연극계에 비해, 뮤지컬 업계는 한층 몸을 낮추고 숨 죽이고 있다. 아직까지 피해 사례가 많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있으나, 대체로 현장 관계자들 사이 '들추느니 덮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관련 언급을 최소화하는가 하면, 혐의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하차도, 배제도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연극열전, 국립극장 등 몇몇 단체들이 '미투'에 관해 입장을 낸 것과 달리, 공연 업계 전반적으론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캐스팅을 할 때 역할에 잘 맞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생활까지 알 수 없다. 솔직히 캐묻기도 힘든 부분이다. 앞으로 계약할 때는 그런 것까지 다 물어야 하나 걱정이다. 최근에 미투 운동과 위드유 운동이 거세지면서 몇몇 극단이나 제작사가 입장을 밝힌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미투'와 '위드유'의 거대한 물결, 미온적 대처는 관객 이탈만 부추길 뿐
그럼에도 뮤지컬을 직접 관람하는 팬들 사이 기류는 심상치 않다. 의혹만으로도 이미 '보이콧'을 선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 연극 뮤지컬 갤러리 이용자들은 '미투'와 관련해 이름이 언급되거나, 연희단 거리패에 몸 담고 성추행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는단 이유로 해당 배우 작품을 보지 않겠다거나, 공연 환불 및 취소를 했다는 글들을 다수 올렸다.
'미투(Me Too)' 열풍과 함께 각계 각층에서 성폭력 피해 사례가 쏟아지고 있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대교육장에서 '젠더기반폭력에 맞선 우리의 외침-더 많은, 더 큰 #Me Too를 위하여' 제2회 이후포럼이 열리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미투'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공연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미투' 당사자들을 지지하는 관객들이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지난 25일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연대했다.
이같은 연극, 뮤지컬 팬들의 보이콧, 성추행 관련 배우 출연극 불매 운동은 꽤 긴 시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 관계자는 "사실상 뮤지컬, 연극의 티켓을 구매하는 주 소비층이 20-30대 여성이다 보니, '위드유'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목소리가 높다"면서도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만난 현장에서는 서로 대단히 조심스럽고,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없는 분위기나 상황이 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작 주체들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