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배우 정순원, 박동욱, 이형훈 |
[뉴스핌=글 황수정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예민했던 사춘기를 함께 보내고, 영원히 친구들과 함께할 것만 같았던 학창시절. 시간이 흐르고 그 친구들과 여전히 연락이 되거나 아예 연락이 끊기는 일이 대부분이다.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은 그런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네 명의 친구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가장 밝고 장난기 많지만 비밀이 있는 친구 '지훈' 역의 세 배우를 만나봤다.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은 열정 가득했던 학창시절과 사회인이 되어버린 현재를 통해 변해버린 관계와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배우 박동욱(35), 이형훈(32), 정순원(31)은 '지훈' 역에 트리플 캐스팅 돼 열연을 펼치고 있다.
"두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참고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연기를 보면서 제 방식대로 바꿔서 하는 부분도 있고요. 잘 나가는 배우들이라 관객들이 많이 찾아와줘서 좋죠.(웃음) (정)순원이는 연극 '뜨거운 여름'도 같이 해서 잘 알았는데, (이)형훈이는 처음봤는데 좀 놀랐어요. 프로 같아 보였거든요.(웃음)" (박동욱)
"(박)동욱이 형은 사실 원작자인데다 형의 감성에서 나온 작품이고, (정)순원이도 지난해에 작품을 했었어요. 저 혼자 작품이 처음이고 트리플도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관객들도 보시면 알겠지만 대본이 많이 바뀐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가 첫 작업이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각각의 다른 색깔이 나오는 것 같아서, 그게 이번 공연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형훈)
"세 명이서 한 캐릭터를 하니까 저를 포함해 세 가지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요. 많이 의지가 되고 고맙죠. 왠지 모르게 든든한게 있어요. 누가 연습을 빠져도, 스케줄이 생겨도 보완이 되고요." (정순원)
배우 박동욱 |
사실 '밀레니엄 소년단'은 지난해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박동욱이 직접 극본에 참여해 500원만 빌리는 친구, 돼지껍데기 에피소드 등 모두 학창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지훈'이 추락한 결정적 사건이 첨가돼 스토리가 더욱 탄탄해졌다.
"작품을 대할 때 대본에 대한 의심을 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썼을 때는 우정과 슬픈 감정에만 치중했다면, 지금은 이야기 안에서 깊이 있는 부분이 있죠. 누군가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은 일상에서 많은 것 같아요. 사건의 크기는 다르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트라우마를 만들면서 오히려 훨씬 공감을 사게 됐다고 생각해요." (박동욱)
이들이 연기하는 '지훈'은 갑작스런 추락사고로 12년간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캐릭터. 학창시절 친구들을 리드하고 장난기 많은 활발한 친구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30대가 됐고 변해버린 친구들의 우정과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사실 저는 원작에 아직 갇혀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진심을 쏟고 싶은데, 이번에 바뀐 지훈이를 분석적으로만 보면 상당히 이기적이거든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바꿔서 적용시킬지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냥 나중에는 포기하고 최대한 따뜻한 지훈이를 그리려고 했어요. 친구들 얼굴도 더 쳐다보고, 더 따뜻하게 얘기했죠." (박동욱)
"작품을 하면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많이 떠올렸던 것 같아요. '우정을 빌미로 삼고, 인질로 삼았다'란 대사가 있는데, 그게 지훈이를 대변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을 대하고 우정을 대하는데 좀 강박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싶었어요. 그 전에 혼자였다가 어떤 사건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고 알아가면서 점점 더 집착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형훈)
"사람이 살다보면 늘 용서받아야 하는 일을 행하는 것 같아요. 그게 크든 작든. 연습을 하면서 지훈이 용서를 결국 못 받는게 공감이 됐어요. 제가 생각하는 지훈은 모순되는 인물이에요. 과거의 미안함에 도망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더 밝고, 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겉모습은 또 반대고. 끝까지 자기 마음을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 인물이에요." (정순원)
배우 이형훈 |
극중 '지훈'의 친구들은 '형석' '동우' '명구'다. 형석은 똑똑한데다 조용히 뒤에서 친구들을 챙기는 인물, 동우는 병원장 아들로 유복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있고, 명구는 가난한데다 사고로 축구까지 못하지만 항상 밝았던 친구다. 이들은 30대가 되면서 점점 변한다. 이들 가운데 박동욱과 정순원은 '명구'를, 이형훈은 '형석'을 가장 공감가는 인물로 꼽았다.
"계원예고를 나왔는데 유복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유독 연극영화학과에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죠. 그때 저는 우리 집이 어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 친구들은 삶에 관해 생각하는게 달랐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빚을 지게 되고, 아버지가 택배차를 운전하는데 그제야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거에요. '명구'도 사실 밝지만 얼마나 힘든지, 좋아하는 축구까지 못하니까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더 마음이 가요." (박동욱)
"어렸을 때 꿈이 국방부 장관이었어요. '형석'도 꿈이 큰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만큼 자격지심도 크죠. 어른이 된 후 집에 오는 고지서를 걱정하고, 대출을 걱정하고 가정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평범한 한국 남자에요. 어렸을 땐 큰 꿈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점점 변해가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굉장히 평범해서 오히려 안타까워요." (이형훈)
"'명구' 같은 캐릭터는 여러 작품에 많이 나올 정도로 공감이 되는 매력있는 캐릭터에요. 어렸을 때 500원은 빌릴 지언정 만원은 안 받는 자존심이 있었는데, 살다보니 50만원, 500만원을 빌리게 되는 거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더 안타까워요.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살 수 있고, 또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정순원)
작품은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때문에 학창시절은 더욱 그리워지고 현재는 더욱 서글픈 감정을 자아낸다. 이에 배우들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정말 친한 친구가 스타크래프트를 하자고 전화가 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가 달라지니까 우정을 이어가자는 뜻으로 연락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전 학교가 달라지면 그게 끝인 줄 알고 게임하러 안 나갔죠.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어요. 너무 친한 애였는데, 그때로 돌아가서 게임하러 나가고 싶어요.(웃음)" (이형훈)
배우 정순원 |
"옛날로 돌아가면 외할머니를 더 자주 보고 싶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하숙을 하고 지금까지 독립해서 사니까 자연스럽게 일 년에 몇 번 안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는 소중한 줄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하루하루 부모님 늙어가는게 아쉽고, 동생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정순원)
"저는 2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할머니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는데 당뇨 때문에 다리가 불편하셨어요. 집에서 모시다가 당뇨합병증으로 더이상 치료가 소용 없다는 말에 요양원에 가셨어요. 그런데 일주일만에 뇌로 합병증이 온 거에요. 연습 도중에 연락을 받고 요양원으로 향하다가 갑자기 또 괜찮아지셨다고 연락이 와서 다시 연습하러 갔는데 다음날 바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제가 안 간게 너무 마음에 걸려요. 명절만 되면, 기일만 되면 계속 그때가 떠올라요." (박동욱)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7년, 참 바쁘고 다사다난 했던 한해다. 배우들은 올해를 돌아보며 소감을 전했다. 다가올 내년에는 더욱 바쁠 예정이다. 박동욱은 우란문화재단과 함께한 여행 연극 '라틴 아메리카 콰르텟'을 무대에 올리고, 이형훈은 1월 공연을 앞둔 '네버 더 시너'를 준비 중이다. 정순원은 독립 단편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올해는 경사가 많았어요. '쌈 마이웨이'도 하고 영화도 크고 작은 역할로 많이 찍었고, 덕분에 결혼에 관심도 많이 가져주셨죠. 연말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는게 감사해요. 더이상 무언가를 했다가는 터질 정도로 좋은 일들이 많았어요. 연극을 하다보니 무대에 서는게 정말 매력있어요. 공연을 계속 할 수 있는게 너무 좋아요. 나이 들수록 무대에 더 오르고 싶어요.(웃음)" (정순원)
"바빴지만 감사했던 한해였어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다 앞으로 제가 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도 만났고요. 남아있는 며칠 잘 마무리해서 새해를 잘 준비하고 싶네요." (이형훈)
"시간이 지나가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행동을 제약 받는 것 같아서 싫어요. 계속 어린애처럼 살고 싶어요.(웃음) 앞으로는 연극 환경이 더욱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너무나 하고 싶어하는 분야지만, 환경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워요. 많은 관객들이 찾았으면 좋겠고, 그런 공연이 제작됐으면 좋겠고, 그럼 저희도 딴 생각 안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박동욱)
왼쪽부터 배우 정순원, 박동욱, 이형훈 |
마지막으로 배우들은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의 관객들을 위한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은 오는 2018년 2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재미있게 만들었으니까 많이 보러와주시고 따뜻한 연말 보내셨으면 해요. 캐스트가 많아서 각각 가진 색깔이 다르니까 골라보는 재미,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하하." (이형훈)
"(강)홍석이 형이 '뮤지컬은 영웅이지'란 말을 달고 살았어요. 그런데 막상 '영웅'을 보지는 않았대요.(웃음) 저희도 '연극은 밀레니엄 소년단이지'란 말이 입버릇처럼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순원)
"남자 관객이 있으면 엄청 설레요. 작품 자체가 남자들의 우정 얘기니까 남자들이 오면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 친구들끼리 낯간지러워도 많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제 친구들이 아무리 재밌는 공연도 지루하다고 했었는데 이번 작품을 보고 '네가 왜 공연을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어요. 여성 분들도 많이 공감해주시지만, 남자들에게는 의미가 더 남다를 것 같아요." (박동욱)
[뉴스핌 Newspim] 글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