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기락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28일 전국 법관들이 건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선 법원행정처의 구성, 역할 및 기능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양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법관이 사용해온 컴퓨터를 조사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며 재조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양 대법원장 발표문 전문.
존경하는 법관 여러분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 나날이 복잡해지는 분쟁을 해결하느라 법관 여러분의 노고가 크실 줄로 압니다. 그 위에 최근에 불거진 법원 내 현안까지 더해져 마음이 한층 무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격동을 거쳐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이 시기에 우리 사법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면서 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뿌듯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로 불신과 논란에 휩싸여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까지 깊은 심려를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일이 사법행정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 최종 책임자로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뉴시스] |
저는 이번 일을 발전적으로 극복하고 사법행정의 방식을 환골탈태하려고 계획함에 앞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고자, 법관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자율적인 논의의 장을 열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법원 안팎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 및 방향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실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사법의 역할과 바람직한 사법행정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더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지난 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개최된 것은 안으로부터의 개혁 논의를 위한 뜻깊은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법제도도 끊임없이 개선되고 진화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그 점에서도 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법관 여러분의 열의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그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논의 결과를 적극 수용하고자 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에 관한 법관들의 참여 기구로서, 선출된 법관들로 구성되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결하였습니다.
저 역시 평소 법관들이 사법행정에 더욱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 왔습니다. 사법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고, 추진력도 배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향후 사법행정 전반에 대하여 법관들의 의사가 충실히 수렴·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하자는 결의를 적극 수용하여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설화된 법관회의의 모습에 관하여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고, 부분적으로 이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하여 널리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법관회의의 모습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세부적인 내용과 절차 등에 관하여는 앞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한편,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 동안 법관사회 내부에 법관인사를 비롯한 사법행정 전반에 관하여 불만이 누적되어 왔고 그에 대한 개선 요구 역시 높다는 점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과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법행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법원행정처의 구성, 역할 및 기능을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조직의 확대, 법관 수의 증가, 그 구성의 다양화 등 사법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1심 재판의 전면 단독화, 법관인사 이원화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법관 근무평정 및 연임제도, 법관 전보인사와 사무분담, 지역법관제, 사법행정권의 적절한 분산과 견제 등 사법조직의 모든 측면에서 기존의 관행 및 제도의 한계와 틀을 뛰어넘는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우리 모두 공감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하나 중요한 과제이고, 법조일원화와 평생법관제, 재판 제도 및 심급체계, 기타 법원 안팎의 정책적 변화 등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자칫 이해관계가 교차할 수도 있는 이러한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위·경력·세대의 법관들이 한 데 모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상호 입장의 차이를 줄여 중지를 모아 나가되, 재판의 수요자인 국민에게도 이해와 공감을 구하며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향후 사법행정 제도 전반에 관하여 많은 법관들의 적극적인 참여 아래 법관회의에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번 현안에 관한 추가 조사를 결의하면서, 소위원회에 조사권한을 위임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번 현안이 발생한 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원하는 법관들의 요청에 따라 전 대법관인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진상조사를 위임하였고,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의 관여 없이 전국 법관들의 추천 과정 등을 거쳐 자율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한 달 가까이 사법연수원에서 상근하면서 대면조사, 서면조사 및 관련 이메일, 카카오톡 메시지와 송수신 문자, 법원행정처 보관 문서, 녹음 파일 등 자료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현안에 관하여 면밀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천 쪽에 이르는 기록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진상조사위원회는 현안과 관련한 몇 가지 점에서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다만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해서는 조사위원회에 제출된 특정 문서 이외에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별도의 파일이 따로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을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의 중립성, 활동의 독립성, 조사위원들의 성실성과 신뢰성을 의심할 사람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구성된 조사기구가 독립적인 위치에서 자율적인 조사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면, 비록 그 결과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에 대해 다시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충분하고도 구체적인 법적·사실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해당 법관이 생성한 자료 외에 전임자 또는 다른 법관들이 작성한 문서가 있을 수 있고, 비록 후임자에게 업무상 인계하였더라도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자료도 있을 것이며, 개인적 아이디어 수준의 메모나 미완성 상태의 문서 등도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해당 컴퓨터를 관리하는 법관 외의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는 성격의 문서들이 상당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이제껏 각종 비위 혐의나 위법사실 등 어떤 잘못이 드러난 경우조차도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그의 동의 없이 조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법관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관하여, 자료 생성과 보관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 조사한다는 것도 용이하지 않고, 이를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자료의 생성이나 보관에 관여한 사람들의 동의 없이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조사한다면 그 자체로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법관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냉철한 판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진상조사위원회 조사결과 확인된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에 관여한 사법행정 담당자들을 문책하고 사법행정업무에서 배제할 것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사안에 대한 객관적인 책임 규명과 평가를 위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사안 전체를 부의하였고,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원행정처 소속 위원을 배제한 상태에서 수차례에 걸쳐 깊이 있는 심의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부적절한 사법행정권 행사가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그에 관여한 법관에 대한 징계청구 등 조치를 취할 것과,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들의 의사를 사법행정에 충실히 반영하고 사법행정권의 일탈·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이러한 평가와 권고를 존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이며, 조만간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하겠습니다.
저는 사법행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이번 일로 큰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하여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관을 비롯한 모든 사법부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국의 법관 여러분
동료 법관들 간의 상호 신뢰와 존경이야말로 우리가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의 가장 큰 원천입니다.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사법부가 더욱 발전해 나아가는 데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 역시 법관들 사이의 상호 신뢰와 존경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소중한 자산만은 굳건히 지켜 나갑시다.
항상 건강과 행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 6. 28.
대법원장 양 승 태 드림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