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의 카슈미르. 인도에서도 오지에 속하며 분쟁의 요소가 잠복되어 있는 곳. 무슨 불길이 마음을 끌었는지 나는 이곳에 와 있다.
카슈미르의 주도인 스리나가르. 불안만 뻬놓는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니 어쩌면 불안으로 인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불안과 아름다움을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만한 것이지만 이곳은 그런 사유마저 허영으로 만들거나 무색케 할만큼 치명적인 곳이다. 가슴만 아플뿐이다. 도시 한 켠에 달 레이크(Dal lake)라고 불리는 넓은 호수가 있는데 스리나가르를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게 하는 장본인이자 중요한 시장이 형성되는 곳이다.
화사한 정적에 쌓인 호수엔 연꽃이 많이 피어 있다. 연꽃 경작은 관광 수입과 더불어 가난하지 그지없는 이 마을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이다. 관광이라는 것이 안보와 직결되는데 카슈미르에 분쟁이 곧잘 일어나다보니 관광수입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도 이 마을 사람들은 연꽃 경작에 매달린다. 연꽃의 뿌리를 식용으로 삼기도 하고 달레이크에 싣고와 다른 물건과 물물교환도 하고 팔기도 한다.
시카라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나룻배가 달레이크에서의 운송 수단이다.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시카라를 타고 있는 모습은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호숫가의 뭍에는 수상가옥들과 낡은 촌락들이 군집을 이룬다. 가난의 내음이 물씬하지만 고즈넉한 무슬림의 정취가 풍기는 이 마을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아늑한 서정을 품고 있다.
“수피라고 합니다.”
수피라는 이름의 사내가 젓는 시카라를 타고 나는 이 착잡한 호수를 투어하고 있다. 그는 시카라도 젓고 가죽옷도 판다고 하는데 무슬림 신자로서 무슬림의 풍습상 부모와 일곱 명의 자녀를 포한한 대가족을 부양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이 줄어들어 시카라 운행 뿐 아니라 가죽옷 판매가 적어 생계에 지장이 많다고 한숨을 쉰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호들을 뺀 카슈미르 주민들 대부분이 처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내가 투숙한 곳은 하우스보트(houseboat)인데 달레이크와 더불어 카슈미르의 명물로 꼽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호수에 띄운 보트 형의 호텔이다. 서양식의 호텔같은 화려와는 거리가 멀다. 단층의 선박 모양 모텔급으로 허름하면서도 풍취가 그득하다. 그곳의 주인은 그 호텔뿐 아니라 카펫 공장도 가지고 있는데 카슈미르 산 카펫은 터키 산 카펫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물이다. 그런 소수의 계층만이 이곳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결탁되어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다.
“카슈미르 인들은 대부분 인도로부터의 독립을 원하지요.”
수피의 말이 노 젓는 노곤을 타고 들려온다.
“저는 힌두교의 인도도 싫어하고 같은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에로의 합병도 원치 않아요. 우리들만의 독자적인 나라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들의 독립을 인정해 주지 않지요.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땅을 복속시키려 하고 인도는 뺏기지 않으려 하기에 분쟁이 끊이지 않지요.”
정치적인 암운이 이 마을을 덮고 있지만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종교적, 정치적 갈등들이 누적되어 있기에 그런 희망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 관할, 인도 관할, 중국 관할 세 지역으로 쪼개져 있는데다가 이곳 인도 관할 지역엔 분리주의를 펼치는 반군과 인도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일어나곤 한다. 무슬림과 힌두교의 종교 대립이 이면에 도사려 있어 갈등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외로움과 고통이 배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이는 풍경들은 처연함 속에 아름다워 보이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연꽃 뿌리를 따내는 농부들의 한적한 모습, 저쪽 뭍에서 크래커 놀이와 구슬치기에 열중해 있는 꾀죄죄한 꼬마들,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경건한 무슬림 곡...시카라에서 내리며 팁을 주었으나 수피는 받기를 거부하며 저녁 때 하우스보트로 놀러오겠다고 말한다. 팁 보다는 더 큰 거래를 원하는 사업수완이 읽혀졌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쌓인 친구 같은 마음 탓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스리나가르의 구월은 밤이 빨리 오는가 보다. 저녁 여섯시인데도 어둑해졌다. 되돌아와 하우스보트의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수피가 왔다고 알려준다. 홀에 나가니 그는 큼직한 박스를 대여섯 개나 들고와 있다. 가죽옷, 울, 쟈켓 등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나를 사주기로 맘 먹고 있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50 불짜리 가죽옷을 하나 골랐다. 그는 만족하지 않고 이것저것 팩키지로 사면 싸게 주겠다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이상은 내게 곤란이 생겨 막았다. 아쉬워 하며 그가 떠난 후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 있으니 가끔 멀리서 총소리도 들려온다. 공포가 엄습해 온다. 일과성인 내게도 섬뜩한데 이곳 주민들에겐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일 것이다. 경제난도 그렇고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안보 문제도 그렇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삶의 환경 말이다.
다소 뒤척거림 속에 잠을 이룬 다음 날 구르마르그 산으로 향한다. 카슈미르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해발 2740 m 높이라고 한다. 하우스보이와 지프 기사 한 명이 나를 안내하고 있다. 지프가 달리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 1960, 70 년대의 정취 같았다. 누런 빛의 들판에 볏집을 터는 농부, 옥수수를 불에 구워 파는 장터, 도로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하나하나가 옛 추억을 반추시키고 있었다.
파키스탄과의 국경이 가까워지는 곳이기도 해서 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펴고 있는 것이 보였고 구르마르그에 진입하는 초소에선 패스포트를 검열했다. 도착한 구르마르그 산 역시 제한구역이라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노인 한 명이 지프에 탑승했는데 이곳 현지에 밝은 가이드라고 하우스보이가 말한다. 이곳 답사에 필수라며 하우스보트에서 미리 손을 썼다는 것이다. 믿어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우스보이와 지프 기사는 입구에서 쉬기로 하고 나는 노인과 단둘이 구르마르그 산길을 걷는다.
“카슈미르에서만 칠십 육년을 살았지요. 저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 세 시간만 걸으면 파키스탄이지요. 어렸을 때는 마음대로 가던 길인데 지금은 막혀있지요.”
국경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이 우리나라의 실향민처럼 깊은 우수에 젖어 있었다. 절망스런 현실 속에 아픈 갈망을 품고 오래 견뎌왔을 것이다. 짙은 슬픔의 수액이 그의 눈에 여리게 머금어 있었다. 둘레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동공처럼 비어있어 보였다.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던 호텔들이 비어 있었고 드넓은 아름다운 초원에 보이는 것이라곤 군인 막사와, 여행객을 태우려는 말 몇 마리와 마부들, 노인과 나뿐이었다.
“열두 명의 가족이 나의 불안정한 수입에 달랑 의존해 살고 있지요. 겨울의 빈궁기에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할 일이 없어 식량을 빌어 먹고 이듬해 봄여름에 갚아요. 그 악순환이 매년 되풀이되지요.”
그렇게 말하는 노인은 점심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뜨거운 짜이 몇 잔으로 매일 때운다고 했다.
“제 것 같이 드시죠.”
내 도시락을 꺼내 마주 앉은 초원 위에 펼쳤다. 하우스보트에서 싸 준 것으로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다. 이곳 부층의 착취가 이런데서도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다. 하우스보이와 지프 기사에게도 그저께 보니 점심이 없었다. 그들 역시 짜이 몇 잔에 때론 비스켓 몇 조각을 얹어 먹는 것이 점심으로선 고작이었다. 노인은 점심을 나누어 주어 고맙다며 알라 신의 은총을 빌어준다. 그러면서 넌지시 팁을 요구해 왔다.
“이곳은 여행객이 드물어 가난한 가이드들이 공동 수입으로 먹고 살도록 가이드 조합이 구성되어 있답니다. 기본적으로 이백 루피는 조합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저의 가족을 도와줄 용의가 있으면 최소한 그 이상은 주셔야죠.”
나로선 전혀 사전 정보가 없던 말이다. 하우스보트의 사장에게 여기에 머무는 동안의 비용은 이미 다 지불한 상태였다. 노인의 출현도 상상 밖의 일인데다가 그가 말하는 것의 진위를 알 길이 없었다. 조합비니 하는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그의 딱한 처지로 인해 나는 경제 감각을 잃고 있었다. 더우기 이 외진 산중턱에서 그와 단둘이 있기에 얼마를 줘야 적당한지 판단 자체가 공허했다. 그렇다고 눈물까지 비치며 하소연하는 노인의 손길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기본 이백 루피에 오십 루피를 얹어 주었더니 적다고 해서 총 삼백 루피를 주었다.
구르마르그 산 투어는 좋았다. 풍경도 멋지지만 파키스탄과의 경계 부근이라 카슈미르의 비극과 그 원인이 현실적으로 더욱 가깝게 와닿는 듯한 저밈이 있었다. 산을 빠져니와 노인과 헤어진 다음 기다리던 지프에 다시 올랐다. 하우스보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제가 이미 노인에게 이백 루피를 지불했는데요. 선생님은 아무 것도 줄 필요가 없었어요.”
노인의 능청스런 지혜에 당한 것이다. 기분은 안 좋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비굴 외에는 생존 수단이 차단된 곳에서 그 비굴을 비난할 자격이 내겐 없었다. 그런 정보는 나에게 미리 얘기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가볍게 톡 쏘긴 했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카슈미르의 현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퀭하니 바라보는 눈빛들. 어쩌다 눈에 띄는 관광객들은 공통의 표적이 되어버리는 곳. 삶의 벼랑 속에서 어쩔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아름답지는 않은 모습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선하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