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라이프

속보

더보기

[이명훈의 4색 여행기] 기상천외의 괴암 군집 속의 애잔한 역사, 카파도키아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아쉬움 속에 파묵칼레 마을을 떠나 카파도키아 행 야간버스를 탔다. 자정 무렵에 휴게소에 정차했는데 그곳을 가득 채우며 울려퍼지던 무슬림 음악이 전혀 색다른 서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잠에서 막 깨어나 느낌이 강렬했는지도 모른다. 눈을 떠보니 몇 군데 불빛을 빼놓곤 캄캄한 가운데 코란의 정서가 진하게 배인 노래가 들려온 것이었다. 어둠은 역시 그윽한 맛을 담는 최고의 그릇인 것 같았다. 적당한 휴식을 취한 다음 버스에 다시 올라타 단잠에 빠졌다가 깨니 다음 날 새벽 7시경. 카파도키아의 작은 마을 괴레메의 풍경이 압도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파묵칼레도 절경이었지만 또다른 눈부신 절경이 황홀하게 드러난 것이다. 파묵칼레와 카파도키아가 터키 여행시 자연 풍광의 백미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그랬다. 단체 여행용 봉고가 대기하고 있어 순식간에 열댓 명으로 급조된 우리 일행은 그 차를 타고 놀라운 경치 속을 달려나갔다. 우르치사르라는 이름의 지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원추형의 거대 괴암들이 건조한 황갈색의 모래벌판 위에 군집을 이룬채 퍼져 있었다. 괴암마다 큰 구멍들이 파진 곳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내부의 동공으로 이어진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어느 괴암 앞에 가이드가 멈추고는 말했다.
“이 동굴 안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게 대략 기원전 사천년 전부터입니다. 히타이트 족들도 이 동굴에서 살곤 했지요.”

책에서나 보던 히타이트 족. 철기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강국인 이집트와도 서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제국. 그 고대 문명인들이 살았던 장소를 직접 보니 아찔해졌다. 나는 가이드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공간이 여섯 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사이를 오르내리도록 돌층계도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은 울퉁불퉁하고 바닥은 평평하게 다져져 카펫이 깔려 있었다. 실내 공기는 흙냄새가 배긴 했지만 바깥의 뜨겁고 건조한 공기보다는 훨씬 살만했다. 물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여건이다. 그러나 히타이트 인들이나 그들보다 먼저 존재했던 고대인들이 살던 공간의 구조만큼은 지금의 이 형태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의 지형이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니까 말이다. 

이 기상천외한 괴암군이 생긴 것이 약 삼백만 년 전의 격렬한 화산폭발과 지진활동 후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와 침식 때문이라고 한다. 히타이트와 그 후에 이곳에 살다가 사라진 고대 문명들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벅찬 내 가슴에 더 깊은 시원이 보여지자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주적 파노라마에 입이 벌어질 뿐이다. 점심을 먹은 후 가이드는 봉고를 좀 더 몰아 괴레메 야외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야외박물관이라고 해서 야외에 유적지들이 적당히 전시되어 있는 걸로 상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광대하게 펼쳐진 괴암의 지형 자체가 박물관이었다. 기묘하게 생긴 괴암들이 구멍들이 뚫린채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다녔는데 흡사 저 우주 속의 행성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말들이 절로 나왔다.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으로도 쓰여진 곳이란다.

“저 구멍 파인 곳들은 돌집들이지요.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의 지배에 이어 로마의 지배를 받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저 돌집에서도 살았지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돌집을 바라보는 마음에 스산하고 애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과거의 거대 문명들의 흔적이 느껴진데다가 에페소스에서 일어났던 전율이 뭉클 되살아나서였다. 

“이 괴레메 야외박물관엔 동굴 교회만 해도 수 백 개가 넘는답니다. 알다시피 로마가 분열되어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뉘어지게 되고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이 펼쳐지게 되지요. 이곳의 동굴 교회들은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집니다. ‘사과 교회’니 ‘뱀의 교회’니 괴암의 형상에 따라 동굴 교회의 이름도 붙게 되구요. 교회들의 암벽엔 예수나 사도들의 모습이 담긴 프레스코화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죠. 생성 시기에 따라 색상이나 문양이 물론 달라지지요.”
가이드를 따라 들어와 설명을 들으며 벽면의 프레스코화를 살펴보는 동안 가슴 속의 동요가 심화되어 나갔다. 

“그런데 잘 보시면 프레스코화에 훼손이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성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파손된 것도 있고 무슬림들에 의해 그렇게 된 것도 있지요.”
과연 훼손된 부분들이 있었다. 비잔틴과 무슬림까지 영역이 확장되니 역사 공부를 진짜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터키 여행이 줄 수 있는 진귀한 선물인데 이곳 괴레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프레스코화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벽면에는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변한 곳도 있었다. 기도 장소와 함께 생활 공간으로도 쓰여진 증거일 것이다. 아득한 시절의 생생한 증거들이 뿜어내는 내음에 내 마음엔 형언할 수 없는 무늬들이 계속 그려져 나갔다.

놀라운 보물들로 가슴을 채우고 호텔에 도착하니 일몰이 지고 있었다. 자연으로만 거의 채워져 오염이라곤 없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석양빛이건 그에 물들어가는 괴암들의 아름다움은 상상 초월이었다. 나는 호텔에 들어서려다가 미의 여신에 눈길을 빼앗기듯 바위 언덕을 올랐다. 광야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장쾌하게 불어왔다. 온몸으로 맞고 싶어 망설이다가 웃통을 벗었다. 런닝까지. 붉게 물들어가는 장엄한 자연과 나뿐이었다. 바람은 갈수록 세지더니 괴암의 모래가루를 끌어다가 내 맨몸에 뿌려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수평으로 강하게 때려오는 모래 바람을 맞아 맨살이 아팠다. 하지만 시원하고 후련했다. 몰아쳐라. 강풍이여. 카파도키아의 괴암들을 신비하게 빚은 예술의 손, 삶의 혹독한 채찍이여. 나는 두 팔마저 양쪽으로 펼친채 한참이나 그러고 서 있었다. 붉은 노을이 검정빛으로 변할 때까지.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위약금 면제… KT, 하루새 1만명 이탈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KT의 한시적 위약금 면제 조치가 시작되자 가입자 이동이 본격화됐다. 면제 적용 첫날 KT 망 이탈자는 1만명을 넘어섰고, 전체 번호이동 규모도 평소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권희근 Customer 부문 마케팅혁신본부장이 KT침해사고 관련 대고객 사과와 정보보안 혁신방안 기자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9 gdlee@newspim.com 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전날 KT 망에서 이탈한 가입자는 총 1만14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784명은 SK텔레콤으로, 1880명은 LG유플러스로 이동했다. 알뜰폰 사업자로 옮긴 가입자는 2478명이었다. 알뜰폰을 제외하고 이동통신 3사 간 번호이동만 보면 같은 날 KT를 떠난 가입자는 5886명이다. 이 중 4661명이 SK텔레콤으로, 1225명이 LG유플러스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전체로 보면 번호이동 규모도 크게 늘었다. 알뜰폰을 포함한 전체 번호이동 건수는 3만5595건으로, 평소 하루 평균 1만5000여 건 수준과 비교해 두 배를 훌쩍 넘었다. 업계는 KT의 위약금 면제 조치로 해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데다 연말·연초를 앞두고 유통망을 중심으로 마케팅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동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KT는 지난 12월 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달 13일까지 이동통신 서비스 계약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환급 방식으로 위약금을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 1일부터 이미 해지한 고객도 소급 적용된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1-01 12:00
사진
'누적수익률 610만%' 버핏 바통 넘겨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CEO에서 공식 퇴임하며 60년 경영의 막을 내렸다. 버핏은 회장직을 유지하며 새 CEO 체제를 지원할 예정이다. 워런 버핏 [사진=블룸버그] 1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워런 버핏이 60년간 이끌어온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버핏이 후계자로 지목한 그레그 에이블(63) 부회장이 새해부터 버크셔 CEO로 취임했다. 버핏은 CEO직에서는 내려왔지만 회장직은 유지하며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본사에 출근해 에이블 CEO의 경영을 도울 계획이다. 에이블 신임 CEO는 2000년 버크셔가 당시 미드아메리칸 에너지(현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를 인수할 당시 회사에 합류했다. 이후 2018년부터 버크셔의 비(非)보험 사업을 총괄하는 부회장을 맡아왔다. 버핏은 지난해 5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2025년 말 은퇴 계획을 전격 발표한 바 있다. 그의 CEO 재임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버크셔 A주 주가는 75만4800달러, B주는 502.65달러로 각각 소폭 하락 마감했다. 버핏이 회사를 인수한 1965년 이후 버크셔 주식을 보유해온 투자자들은 약 60년간 누적 수익률 610만%에 이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배당 포함 수익률 약 4만600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버크셔는 보험사 가이코, 철도회사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 외식·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9월 30일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817억달러(한화 약 552조원), 주식 자산은 2832억달러(약 410조원)에 달한다. 주요 투자 종목으로는 애플,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코카콜라, 셰브런 등이 꼽힌다. 버크셔 측은 포트폴리오 운용을 총괄할 투자 책임자 인선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버핏의 자산은 약 1500억달러(약 217조원)로, 그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해 왔다. 버핏의 퇴임과 함께 매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연례 주주서한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주주서한은 오랜 기간 비즈니스와 투자 철학을 담은 지침서로 평가돼 왔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1-01 13:44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