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금융위기 극복 등 굵고 부드러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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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민정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뽑힌 여성 지도자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3선에 성공한 그는 이번 임기를 다 채우면 1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게 돼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를 제치고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통해 입증된 리더십과 과거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이 독일에 있다며 세계인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겸허함,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서 세운 공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메르켈 총리는 4선 연임까지 넘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로필<그래픽=송유미 미술기자> |
◆ 앙겔라 메르켈은 누구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메르켈 총리의 결혼 전 이름)는 1954년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54년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가 동독 크비초 소재 교회를 담당하게 되면서 메르켈은 가족과 함께 동독의 작은 도시 템플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다.
대부분의 동독인들처럼 메르켈은 고등학생 시절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지원을 받는 자유독일청년(FDJ)의 멤버였다. FDJ 가입은 대체로 개인의 의지에 달렸지만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선 가입이 필수적이었다.
1973년 라이프치히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1978년까지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1977년 물리학자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 1982년 이혼하고 1998년 베를린 출신의 화학 교수인 요하킴 자우어와 재혼했지만 현재까지도 전 남편의 성을 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0년까지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메르켈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민주화 흐름 속에서 민주약진(DA)에 입당했다. 1990년 3월 동독 자유 총선거에서 로타르 드 메지에르가 총리로 선출됐을 때 메르켈은 정부 대변인으로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DA와 기민당(CDU, 기독교민주연합)이 합당하면서 기민당원이 된 그는 1991년 헬무트 콜 총리의 신임을 얻어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올랐으며 1994~1998년엔 환경·자연보호·핵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1998년 총선에서 콜 총리 내각이 패배한 후 메르켈은 기민당 사무총장으로 지명됐다. 1999년 콜 전 총리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기민당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메르켈은 자신을 키워준 콜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기고문을 신문에 싣는 결단을 내려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00년 4월 메르켈은 기민당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으며 2002년 기민당 자매당인 기사당(CSU, 기독교사회연합)과의 연합 원내총무로 임명됐다. 이후 그는 차기 총리로 점쳐질 만큼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마침내 2005년 5월 메르켈은 사민당(SPD, 사회민주당) 소속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 맞설 CDU-CSU 연합 후보로 선출됐다. 그해 9월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뚜렷한 승자를 내지 못한 CDU-CSU와 사민당이 대연정과 총리직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메르켈이 총리직에 올랐다.
이후 메르켈은 2009년과 2013년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3선 총리가 됐다. 그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덕에 2013년 치러진 선거에선 CDU-CSU 연합이 압승을 거뒀고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지난해 말 치러진 기민당 전당대회에서도 메르켈은 96.7%라는 전폭적인 지지율로 당수직을 지켜 4선 총리의 길도 열어놨다.
지난 3일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인 바이에른주 다하우 포로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출처=AP/뉴시스> |
◆ 과거사에 통 큰 사과, 평범한 일상으로 화제
메르켈 총리는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 대규모 학살에 대해 기회가 될 때마다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세계에 책임감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며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후 2008년 이스라엘 의회 연설과 2013년 다우히우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 방문 연설을 통해서도 홀로코스트 등 과거 나치의 행동을 반성하며 사과했다.
최근 메르켈 총리는 4번째 사과를 했다. 그는 독일-이스라엘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아 베를린을 찾은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을 맞아 "독일이 이스라엘에 특별한 지원을 해야 한다"며 "나치의 600만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이 같은 판단의 근거"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휴전 합의 도출에도 메르켈 총리의 공이 컸다는 찬사가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독일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 워싱턴DC, 벨라루스 민스크까지 2만km(킬로미터)에 이르는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고 사태 해결을 주도했다.
그는 여장부의 모습과는 달리 동네 수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는 평범한 일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 언론은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메르켈 총리가 퇴근 후 동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은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7년에는 메르켈 총리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개봉한다. 시나리오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기자인 디크 쿠릅주바이트가 맡을 예정이다.
[뉴스핌 Newspim] 김민정 기자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