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라이프

속보

더보기

[이명훈의 4색 여행기] 천혜의 아름다움과 여유의 가치. 파묵칼레

기사입력 : 2015년05월15일 16:52

최종수정 : 2015년05월28일 14:33

파묵칼레(Pamukkale)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초저녁 무렵이었다. 엊저녁에 전화를 걸어놓은 모텔의 안주인이 버스 정류장에 마중나와 있었는데 소박한 미소 그대로 순정해 보였다. 수줍어 하는 그녀의 배려 있는 환대를 받으며 걷는 길가엔 멍석에 펼쳐놓은 빨간 고추며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들이며 어릴 적에 익히 보던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넓은 정원에 수수하게 꾸며진 모텔에 들어섰을 때는 이 마을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층 가옥인 모텔 주변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고 마을과 연결되었다. 객실에 짐을 꾸리고 편한 차림으로 갈아 입은 다음 마을을 산책하다가 젊은 커플을 만났다. 프랑스 사람들로서 알고 보니 같은 모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서로 반가와서 산책 후에 모텔의 정원에 놓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그들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들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식의 자기 소개는 처음 겪는 경험이라 무척 신선했다. 오래 전에 읽은 까뮈의 <이방인> 등등에 대해 즐겁게 주고받으며 맥주잔을 비워 나갔다. 

다음 날 일찍 파묵칼레 언덕을 올랐다. 흡사 죽처럼 녹아 흘러내리다가 굳어버린듯한 괴암들이 백색 일색으로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특이한 지형들을 꽤나 보아온 편이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었다. 

자그마한 분화구들이 연이어 퍼져있는 형상이기도 했다. 하얀빛의 웅덩이마다 푸르스름한 물이 찰랑이며 차 있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갔다. 물은 따스했고 뭉클한 질감의 석회먼지가 발바닥에 부드럽게 잡혔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다른 관광객들도 물에 발을 담근채 이 진귀한 모양의 온천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엊저녁에 자리를 함께 한 실존주의자 커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곳에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대화를 나눌까 상상만으로도 참신감이 몰려왔다. 

물 밖으로 나와 하얀 바닥에 눕자 돌이 지닌 냉기가 선선하게 등에 퍼져왔다. 터키어로 목화라는 뜻의 파묵과 성(城)이라는 뜻의 칼레. 그 둘의 합성어인 파묵칼레. 그러니까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이 천연 온천의 온천수가 류마티즘, 심장병, 피부병에 좋다고 이름나 고대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로마의 황제들도 즐겨 찾던 곳이다.  

쿤데라의 <느림>이나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여유의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졸속 문화가 우리 사회에 숱한 부작용을 일으켜온 것만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여유의 가치는 그 평가가 미뤄져서도 안 되며 소수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누릴 천부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공에 잠기면 그와 비슷하게 체험한 시공들이 가슴에 들어온다. 사회라는 것을 알기 이전,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갈증이나 강박이 생겨나기 이전의 원초적 감각도 피어오른다. 여유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나는 오늘은 하루 종일 그 선물의 풍요로움 속에서만 지내려 한다. 푸르스름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일, 목화처럼 하얀 석회암에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 있는 일, 하늘을 보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일상의 박스가 점점 조여오겠지만 말이다. 

언덕 저 위로는 히에라폴리스라고 하는 유명한 유적지가 있음을 가이드북에서 보아서 알고 있다. 기원전 2 세기 경에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세워져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번성했던 곳이다. 로마의 원형 극장, 신전, 공동묘지가 1354년의 대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된채 황폐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터키의 남부 데니즐리 주에 위치한 이 도시로 오기 전에는 당연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천혜의 아름다움 속에 나자신을 방기하듯 내맡기니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찬란한 자유의 포만감으로만 나의 가슴을 채우리라. 생각만으로도 행복의 빛이 돌았다. 실존주의자 커플이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모르긴 해도 그 로마의 유적지를 떠도는 모양이었다.  

편하게 누워서 보는 언덕 아래의 파묵칼레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유유자적 하는 동안 밥 짓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고 일몰이 지려 하고 있었다. 마을의 아름다움이 한결 고조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엔 노을에 물들어 분홍빛을 띤 석회암이 가로지르고 역시 붉은 빛이 드리워진 물이 물살을 튀기며 흘러내린다. 그 너머 저 아래쪽에 연기를 몽실몽실 피워올리며 붉게 물들어가는 작고 평화로운 파묵칼레 마을. 물론 이런 외관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의 남모를 애환들이 저 노을빛에 다른 빛들을 투영시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尹 지지율, 2.6%p 오른 32.7% …김건희 논란 사과 긍정 영향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30%대 초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6일 발표됐다.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해 사과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종합뉴스통신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13~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32.7%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65.0%로 나타났다. '잘 모름'에 답한 비율은 2.3%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처음으로 사과하는 등 자세를 낮췄지만, 지지율은 2.6%p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부정평가는 1.7%p 하락했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간 격차는 32.3%포인트(p)다. 연령별로 보면 40대에서 긍·부정 평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만 18세~29세에서 '잘함'은 29.3% '잘 못함' 68.7%였고, 30대에서는 '잘함' 31.5% '잘 못함' 65.9%였다. 40대는 '잘함' 25.6% '잘 못함' 73.2%, 50대는 '잘함' 26.9% '잘 못함' 71.8%로 집계됐다. 60대는 '잘함' 34.9% '잘 못함' 62.5%였고, 70대 이상에서는 '잘함'이 51.8%로 '잘 못함'(43.7%)보다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 '잘함' 27.8%, '잘 못함'은 70.8%로 집계됐다. 경기·인천 '잘함' 32.6% '잘 못함' 65.9%, 대전·충청·세종 '잘함' 36.0% '잘 못함' 61.0%, 부산·울산·경남 '잘함' 40.3% '잘 못함' 58.0%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은 '잘함' 43.8% '잘 못함' 51.7%, 전남·광주·전북 '잘함' 16.0% '잘 못함' 82.2%로 나타났다. 강원·제주는 '잘함' 31.6% '잘 못함' 60.1%로 집계됐다. 성별로도 남녀 모두 부정평가가 우세했다. 남성은 '잘함' 28.8% '잘 못함' 68.9%, 여성은 '잘함' 36.5% '잘 못함' 61.3%였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 배경에 대해 "취임 2주년 기자회견과 김건희 여사 의혹 사과 이후 소폭 반등 했다"면서도 "향후 채상병 및 김 여사 특검, 의대정원 문제, 민생경제 등 현안에 대해 어떻게 풀어갈지에 따라 지지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수회담, 기자회견, 김 여사 논란 사과 등으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다"면서도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니라 국정운영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지율은 상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할당 추출 방식으로 추출된 표본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2.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통계보정은 2024년 1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 값을 부여(셀가중)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parksj@newspim.com 2024-05-16 06:00
사진
의대 증원 항고심 결정 초읽기…정부 의료개혁 분수령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법원이 16일 정부의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 집행정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1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 배상원·최다은 고법판사)는 전공의와 교수가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정책을 멈춰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결론을 16일 또는 17일 내릴 전망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법원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 인용 여부에 따라 2025학년 2000명 의대 증원 정책 추진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4.05.13 yooksa@newspim.com 이번 항고심의 쟁점은 '원고 적격성'이다. 1심은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적 상대방은 의대를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며 항고심을 제기한 의대생은 정부 정책에 다툴 자격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반면 2심은 '원고 적격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법원은 정부에 5월 중순까지 대학별 모집인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며 정부가 결정한 2025학년도 증원 규모에 대한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법원의 요청에 따라 의대 증원 결정에 대한 근거 자료 47개와 2개 참고 자료를 냈다. 의대 증원을 논의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보정심) 회의록,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을 제출했다. 반면 의료현안협의체와 의대정원배정위원회는 보정심과 의사인력전문위원회와 달리 '법정 협의체'가 아니라 회의록 기록 의무가 없다. 정부는 회의 결과를 정리한 문서와 관련 보도자료를 함께 제출했다. 법원은 정부의 자료를 근거로 2025학년도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한 객관성과 절차적 정당성 여부 등을 검토한다. 정부의 바람대로 법원이 각하 혹은 기각(원고의 소에 의한 청구나 상소인의 상소에 의한 불복신청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배척하는 판결) 결정을 내리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객관성을 인정받아 예정대로 추진된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다면 2025학년도 2000명 증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 재항고, 본안소송 등 추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재항고 소요 기간을 감안하면 대학별 입시요강이 확정 공시되는 이달 말까지 결론이 나오긴 힘들기 때문이다. 입시 일정 또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법원의 결론에 따른 의료계의 복귀 여부도 주목된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15일 법원이 의대 정원 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진료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인용 결정)이 않기를 희망하고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인용 결정이 나면 즉시 항고해 대법원판결을 신속히 구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dk1991@newspim.com 2024-05-16 06:0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