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 국민연금으로 변색 파행
[뉴스핌=김지유 기자] 드라마의 제목과 주인공 모두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 하지만 라스트신(Last Scene·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국민연금으로 바뀌었다. 급기야 이 드라마는 방송이 취소됐다. 제작진들은 조만간 방송 일정을 잡겠다고 하지만 앞뒤 정황으로 볼 때 쉽지 않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란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집어삼켰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 공무원단체 등이 처음으로 함께 기획한 드라마 1편이 여야의 마무리작업(국회 입법)에서 허무맹랑하게 끝났다.
지난 5개월여간 이 드라마 제작 현장을 지킨 기자로서 돌이켜보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주객전도'는 시작부터 예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무원연금 등 3대 직역연금 개혁 방침을 천명했다. 이 떄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은 박근혜정부 최대 과제로 자리잡았다.
같은해 12월에 마침내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특위와 국민대타협기구가 구성돼 본격 논의에 들어갔다. 100일 활동 끝에 국회는 특위 활동을 연장했고, 대타협기구의 활동 연장 대신 실무기구를 구성해 개혁안 마련에 집중했다.
국민대타협기구와 실무기구에 참여한 공무원단체가 요구한 조건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 방안도 함께 모색한다'였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이에 동조한 반면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먼저 처리하고 공적연금을 다룬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입장 차는 여야 합의시한(5월2일) 직전인 지난달 말까지 계속됐다.
여야는 합의시한을 지키기 위해 마라톤회의를 계속했다. 실무기구는 1주일에 3번, 7시간 넘게 했고 막판에는 주말에도 만나 접점을 모색했다. 실무기구에 참여한 여야, 전문가, 공무원단체는 개혁안의 큰 틀에 합의해놓고도 공적연금과의 연계 여부를 놓고 충돌했다.
몇 번의 파행에도 논의는 계속됐고 실무기구는 결국 여야에 공적연금 강화 문제를 위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2일 새벽까지 이어진 논의에서 실무기구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과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재정절감분 20%의 국민연금 사용'에 합의했다.
공무원단체 입장에서 보면 국민연금 강화는 자존심 회복을 위한 좋은 명분이었다. 훗날 공무원연금 개혁을 또다시 하게 될 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비교대상이기도 하다.
실무기구에 참여한 한 공무원단체 관계자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공무원들을 전국민적으로 세금 먹는 도둑으로 만들어놓았다"며 "국민연금 강화로 우리에게도 명분을 줘야 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다른 전문가도 "공무원연금을 다시 개혁할 수밖에 없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수령액의 간극이 크지 않다면 공무원연금 개혁만 물고늘어질 수 없게 된다"며 둘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이번 파국의 근본 원인은 정치권의 협상력 부족에 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국민대타협기구 및 실무기구의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존중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합의문에 서명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첫번째 책임이 있다. 합의시한을 맞추기 위해 재정절감효과가 떨어지는 개혁안을 받아들인 것도 모자라 당초 입장을 저버리고 국민연금과의 연계에 덜컥 합의한 책임이다.
새정치연합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당과 함께 시한을 함께 정해놓고도 '시한이 중요하지 않다'며 버티기 작전을 구사했다. '무조건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태도로 협상에 나섰다. 지난 2007년 참여정부 시절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던 당인가 싶다.
끝내 합의는 깨졌고 4월 임시국회 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는 물건너갔다. 이제 드라마 2편의 막이 올랐다. 드라마 2편의 라스트신은 어떤 모습일까. 1편의 잘못을 되풀이할 것인가,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뉴스핌 Newspim] 김지유 기자 (kimji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