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낮은 가격으로 판다는 역설을 주장하는 것이 네트워크 마케팅인 바 그 비결은 중간 마진에 대한 처리 방식에 있다. 즉 일반 제품은 제품 가의 상당 부분이 중간 마진, 광고비에 들어가기 마련인 바 이것을 과감히 빼버린 것이다.
광고 등에 일절 투자하지 않고 그 돈을 제품을 직접 유통시키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인 요소에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결합된 묘한 형태인 셈이다. 시장이 무한대로 커질 잠재력이 있어 거기 뛰어든 사업자들 역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제품과 마케팅 모두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해외 마케팅도 가능하며 보상 플랜도 좋아 제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나로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화근의 시초였다.
내가 Q회사의 네트워크 마케팅에 뛰어들 땐 국내에 들어온지 초기여서 상당히 불이 붙어 있었다. 스폰서들은 하나같이 입에 거품을 물었고, 세미나실은 언제나 뜨거웠다. IMF로 들어서는 일년 전이었기에 음습한 불안 속에 출구가 막혀가던 상황이라 샐러리맨, 명퇴자, 주부, 상인들,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뜨겁게, 너무 빨리 타들어 간 것이었다. 더 이상 실패해선 안될 처지에 몰려 있었기에 관련 자료를 분석하는 등 충분한 검토를 마친 후이긴 했다. 하지만 내겐 경험이 없었다. 뜨거움 일변도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스폰서들도 문제가 있었고, 그 이면을 제대로 간파 못한 내게도 문제가 있었다.
소비자로선 아무 리스크가 없는데 사업자로 뛰게 되면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사업자가 되면 수익도 클 수 있는 반면 그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월 이백만 원 이상의 매출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다.
사업 초기엔 탄력이 붙어 그 이상의 매출 달성은 문제가 아니었다. 위기 속에 발견한 출구라 아내와 합심해 열심히, 신나게 뛰었다. 퇴근 후와 주말이 기분 좋게 그리로 바쳐졌고, 아내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활력으로 신바람 나게 매진했다.
열심히 뛴 결과 다운라인들도 많이 두게 되어 성공하는 라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사업성을 믿고 친구, 후배들도 뛰어들어 전국적인 라인을 깔아나갔고 태국, 필리핀까지 해외 마케팅을 밀고나갔다. 태국의 아름다운 비치 파타야. 다운으로 들어온 후배 녀석이 방콕까지 진출해 라인을 까는 바람에 휴가를 내어 방콕을 거쳐 거기까지 놀러갔었다.
파타야서의 꿈같은 일주일. 수영, 술, 야자수 그늘 아래 달콤한 낮잠, 성공을 위한 다짐, 전 세계로 진출하자는 포부와 야망, 터질 것 같은 행복감....아내와 나, 다운라인 모두 꿈에 부풀었고 커다란 성공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 즈음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은 것이 한 권 있다. 성공한 미국인에 대한 책으로 그의 인생목표는 딱 두가지였다. 사십대 이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갑부가 되는 것과, 그렇게 번 돈을 죽을 땐 제로로 만드는 것.
그런데 제로로 만드는 방식에 그의 위대함이 있었다. 흥청망청 쓰는 게 아니라 자선 사업, 난민 돕기, 아프리카 기금 설립 등을 위해 철저한 기획 하에 돈을 다 소모시켜야 했다. 둘 다를 성취하고 그는 죽었다. 철저한 기획과 추진으로 그는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고, 철저한 기획과 추진으로 세계적인 깨끗한 알거지로 그는 죽었다.
그 멋진 성공 신화가 내게는 무척 감동적이어서 나도 그렇게 크게 벌고 크게 써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다운들도 그러한 내 생각에 호의를 보여, 그렇게 함께 성공해 멋있게 살고 죽자고 세미나 후의 애프터 술집에서 나는 떠들어대곤 했다. 증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다 풀리고 시원스런 활주로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륙만 남아 있었다. 아내와 나, 우리 가족 모두 꿈에 부풀고 행복을 느끼던 짧은 한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