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소영 조윤선 기자] 중국 경제운영을 총괄하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취임 100일을 맞았다. 때마침 중국은 사상 초유의 유동성 경색으로 경제계 전반이 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 지도부의 경제운용과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대응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경제운용 전반을 관장하는 리커창 총리는 지난 3월 15일 취임 일성으로 경제구조의 개혁과 성장의 질 전환을 강조한 뒤, 취임 100일을 맞는 현시점까지 한번도 이 궤도에서 벗어난적이 없다. 시장 주체들 사이에 불안감이 높아지고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리 총리는 경제구조개혁과 금융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의 취임 100일간 정책을 중심으로 중국 경제의 주요 현안과 동향, 향후 전망을 진단해본다.
◇'리커창 경제학' 관점에선 '금융경색 ≠ 위기'
중국 경제계와 언론은 100일의 짧은 기간 동안 리커창 총리 체제는 개혁 추진의 경제운용 원칙을 확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19일 국무원 회의에서 리커창 총리는 금융자원 합리적 이용을 강조하며, '보유 자금의 효율적 활용(盤活存量資金)' 원칙을 다시금 천명했다. 리 총리는 최근 한 달 동안 공식석상에서 세 번이나 '보유 자금의 효율적 활용' 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보유 자금의 효율적 활용' 이란 추가적 유동성 방출은 지양하고, 시중의 자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금융체제의 개혁과 실물경제 활성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중앙은행의 적극 개입을 촉구하는 시중은행의 요구에 대해 거듭 '불가 입장'을 천명 한 것이다.
다음날인 20일 중국 은행 간 단기자금거래의 기준인 리포(REPO) 1일물 금리가 장중한 때 30%를 돌파하고, 7일물도 28%가까이 뛰며, 중국 은행권은 자금쟁탈을 위한 아비규환의 장이 돼버렸다.
지난 3월 15일 총리 취임식 기자회견에서 '개혁'과 균형 분배 등을 경제운영의 새로운 핵심 가치로 강조했던 리커창 총리는 3개월 동안 행정제도·세수·금융·투자 등 중요분야의 개혁 강화 방침을 누차 밝혔을 뿐 눈에 띄는 거시경제 조정 정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13일 경제 부양 정책과 정부의 직접투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시장화를 통한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를 위해 시중의 유통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6월 8일 리 총리는 "현재 시중의 여신이 실물경제로 유입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의 추가적 자금방출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급기야 19일 국무원 회의에서 리 총리는 다시 한번 금융당국의 개입은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3일 분기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확인한 '적시 적당한 정도, 사전 미세조정' 이란 통화운영 방침도 리커창의 이런 경제운영 철학을 밑바탕으로 한 것이다. 인민은행은 국내외 경제 금융동향과 국제 자본흐름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온건한 통화정책과 보유자금의 적재적소 효율적 활용에 중점을 둘 것이라는 통화 운용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중국 언론과 경제계 안팎에서는 리커창이 추구하는 이런 경제운영 철학과 경제 정책의 큰 방향을 일컬어 '리커창 경제학'이라 칭하면서 금융및 산업 구조조정과 경제 성장 구조의 개혁을 최우선시하는 그의 경제논리 아래에서 중앙은행은 더는 시장의 값싼 '구원투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방 분권에 강한 실천의지 보여
리커창 총리 취임 후 또 다른 큰 변화는 중앙정부의 권력분배 작업이다. 중국 정부는 12차 전인대에서 '국무원기구개혁 및 직능개혁 방안'을 통과하고, 올해 6월 말까지 국무원의 주요직책과 내부기구, 인사배치에 관한 조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국의 새 지도부는 중앙의 각종 심사 및 인허가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하는 등 중앙정보의 역할 줄이기에 적극적이다. 리커창 총리는 특히 시장화에 역점을 두고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시장이 담당해야 할 상당수 역할을 정부가 대행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는 것이 리 총리의 견해다.
그는 "개혁과 시장화에는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며 확고한 개혁의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리 총리는 개혁의 강도뿐만 아니라 임무완성 기한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그는 각 부서에 개혁임무 완성시기를 제출하도록 해 개혁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했다.
예를 들어, 4월 24일 국무원의 71개 인허가 사항을 취소, 5월 6일과 6월 19일 각각 61개와 32개의 인허가 권한을 취소 혹은 지방에 이양했다.
리 총리 취임 후 90여 일간 총 164개의 인허가 사항이 취소 혹은 지방이양 됐다. 리 총리가 600여 개 인허가 권한 취소 및 지방이양을 약속했던 것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30%의 목표량을 달성한 셈이다.
◇산업 경쟁력 보호에는 '총대'
2012년 유럽연합(EU)이 중국 태양광 제품에 대한 반덤핑과 반보조금 조사를 시행하면서 리커창 총리는 자국 태양광 업체 보호에 발벗고 나섰다.
올해 5월 하순 총리 신분으로는 처음 스위스와 독일을 방문한 리커창은 독일 메르켈 총리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메르켈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 태양광 제품에 영구적 관세를 징수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
유럽에서 귀국하자마자 6월 3일에는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과 전화 통화에서 리커창 총리는 유럽이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제재 조치를 강행할 경우 중국도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중국 정부 고위층 인사가 처음으로 EU의 중국 무역제재 조치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4일 EU집행위원회는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기존의 47.6%에서 11.8%로 낮게 책정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협상에서 얻기 어려운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로부터 3일 후 리커창 총리는 허베이(河北)성의 한단(邯鄲), 싱타이(邢臺), 스자좡(石家莊) 등지를 방문했다. 이들 지역은 올해들어 심각한 스모그가 발생했던 곳으로 환경부에서 발표한 1분기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10개 도시에 포함됐던 곳이다.
리 총리는 이들 지역의 환경을 꼼꼼히 살펴보는 동시에 싱타이의 한 태양광 업체를 직접 방문해 격려의 말은 전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리 총리는 또 "국제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수 시장을 활성화해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우선 국내에서 소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베이성 순방을 마치고 지난 14일 리 총리는 자신이 주관한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태양광 산업을 지지하는 6가지 관련 정책과 더불어 대기오염 방지 관련 10가지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농업현대화, 신형 도시화 추진의 밑거름
리커창 총리는 농업 현대화를 기반으로 한 신형 도시화 추진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단순히 식량안보와 농민 소득 증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 농업 기초를 공공히 해 도시화 내수 잠재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27일 리커창은 총리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장쑤(江蘇)성 장인(江陰)시 신챠오(新橋)진을 방문, 소도시 규획 건설과 농업 현대화를 위한 본격적인 시찰에 나섰다.
신챠오는 면적 19.3㎢, 인구가 채 6만명도 안되는 장인시에서 가장 작은 진(鎮)이지만 장인시, 나아가서는 장쑤성 도시화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 지역 농민 80% 이상이 현대식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되게 하는 것이 리 총리의 도시화 사업 구상이다.
리 총리는 진정한 의미의 도시화는 산업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도시에 진입한 농민들이 취업과 창업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확보해야 비로소 도시화의 기본이 튼튼하게 마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튼튼한 도시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산업 기초 중의 하나가 현대화 농업인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지분 협력, 가정 농장 등 여러가지 형태의 현대식 농업 발전이 향후 농업의 새 트렌드라며 적절한 규모 경영이 신형 도시화를 추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무원은 헤이룽장(黑龍江)을 농업현대화의 시범지로 삼아 농업생산경영시스템 혁신, 토지관리제도 개혁, 농촌금융서비스 혁신, 도시화와 신농촌의 조화로운 발전 모델 탐색 등 9가지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마련했다.
◇부패 쳑결로 '경제 민주화'
리커창 총리는 취임 후 청렴한 정부 구현을 통해 인민의 신뢰를 얻겠다며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4월 18일 발표된 삼공경비(공무집행비) 예산이 작년보다 1억2600만 위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5월달에는 국무원 판공청이 각 지방정부와 정부 부처에 긴급 통지문을 발송, 정부 사무실과 강당을 비롯한 호텔 및 초대소를 새로 짓거나 확장하는 행위를 엄중 단속한다고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6월 17일에 리 총리는 회계감사기구인 심계서를 시찰하면서 관계자들에게 각 지방정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의 삼공경비 사용 현황에 대한 회계 감사를 강화해 위법 행위를 근절토록 지시했다.
◇친 서민 행보 잰걸음
총리에 취임한 지 한달이 될 즈음 리커창은 큰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4월 20일 쓰촨(四川)성 루산(蘆山)에 강도 7.0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
리 총리는 지진 발생 5시간 만에 재난 지역에 도착해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 했으며 재난 피해자들을 만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부가 여러분들 하나하나 책임지고 신경 쓸 것입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쓰촨성 지진 피해 현장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리 총리는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방지 작업에 뛰어들었으며, 중국의 어린이날인 6월 1일에는 영유아 분유 품질 문제 개선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울러 리커창 총리는 교육과 의료, 양로보험(연금), 주택 등 서민들의 민생 보장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월 17일 심계서 시찰 시 리 총리는 서민들의 기본 생활 보장을 위한 돈이 부정과 부패에 유용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